박인비 LPGA 메이저 2연속 우승… 시즌 4승, 통산 6승
박인비(25·KB금융그룹)의 상승세가 예사롭지 않다.
세계랭킹 1위 박인비가 10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주 피츠퍼드의 로커스트힐 골프클럽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웨그먼스 LPGA 챔피언십(총상금 220만 달러)에서 최종 합계 5언더파 283타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카트리오나 매튜(43·스코틀랜드)와 동타를 이룬 뒤 3차 연장 접전 끝에 올린 승리라 더욱 극적이었다.
2라운드를 공동 2위로 끝낸 박인비는 3라운드에서 4타를 줄이며 단숨에 선두로 치고 올라갔다. 하지만 4라운드는 다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며 매슈에 1타 차로 추격을 당했고, 마지막 18홀에서 보기를 기록해 연장전에 돌입했다. 두 선수는 연장 1, 2번 홀은 모두 파를 기록하며 무승부를 기록했다. 박인비는 앞서 실수했던 운명의 18번홀에서 버디를 잡아내며 연장 승부의 마침표를 찍었다.
박인비는 우승 직후 “우승해서 무척 기쁘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오늘의 승리는 기적이다”라고 LPGA 공식 트위터를 통해 우승 소감을 전했다. 박인비는 이날 우승으로 크라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에 이어 메이저대회를 2연속 제패했다. LPGA 투어에서 시즌 메이저대회 백투백 우승(연승)을 달성한 것은 지난 2005년 안니카 소렘스탐(스웨덴) 이후 만 8년 만이다. 시즌 우승은 혼다 타일랜드 클래식과 노스텍사스 슛아웃을 포함해 4승을 거두며 LPGA 투어에서 가장 많은 우승을 쌓았다. 통산 7승, 메이저대회는 3승째다.
박인비는 이번 대회 우승으로 상금 33만5000달러를 추가, 총 상금 122만1827달러로 상금 랭킹 1위를 차지했다. 동시에 시즌 첫 상금 100만 달러를 돌파했다. 올해의 선수 포인트와 세계랭킹 1위도 9주째 굳건히 지켜냈다. 이 기세라면 ‘올해의 선수상’도 가능할 전망이다. 아울러 박세리가 보유하고 있는 한국인 한 시즌 최다승 기록인 5승(2001년, 2002년)에도 1승 차로 다가섰고, 박세리·청야니가 갖고 있는 아시아 선수 메이저 최다승(5승) 기록 경신도 가능하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박세리 키드’에서 박세리 전성기도 넘어서는 선수로 성장 중
1998년은 박세리(36·KDB금융그룹)가 US여자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한 해다. 당시만 해도 한국은 세계 골프계의 변방이었다. 갓 스무 살을 넘긴 박세리는 이 대회에서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며 우승한다. 18홀 연장 라운드에서 공이 연못 턱에 걸린다. 절망적인 상황. 박세리는 공을 치기 위해 양말을 벗어던지고 연못에 들어간다. 새까맣게 그을린 다리와 대조적으로 그의 발은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이 담대한 샷은 공을 그린에 안착시키며 박세리에게 우승컵을 안긴다. ‘IMF 맨발 신화’로 유명한 이 장면은 국가 부도위기로 시름하던 온 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후 박세리는 LPGA를 평정해 나갔다.
박인비는 ‘박세리 키드’다. 박세리의 맹활약을 지켜보며 ‘제2의 박세리’를 꿈꾸던 세대다. 신지애, 최나연 등도 대표적인 박세리 키드다. 박인비는 1998년 열 살 때 골프에 입문한다. 2001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주니어아마추어선수권에서 32강, 그 이듬해 14세의 나이로 우승을 거두며 주목받기 시작한다. 2002년 US여자주니어골프선수권대회에서 첫 우승을 이뤘다. 이후 2006년 프로로 전향해 2007년 퓨처스투어 상금 순위 3위에 오르며 LPGA 출전권을 따냈다. 이후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오던 박인비는 올해 절정의 퍼팅 감각으로 최고의 한 해를 보내고 있다.
박인비의 올해 성적만 놓고 보더라도 박세리의 전성기를 넘어설 수 있다는 예상이 가능하다. 박세리는 2001년 브리티시 여자오픈, 2002년 LPGA 챔피언십, 2006년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 등 총 5회 메이저대회를 제패했다. 한국 여자골프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지만, ‘그랜드슬램’과 ‘커리어 그랜드슬램’은 아직까지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랜드슬램은 1년 동안 개최되는 4개의 메이저 대회(나비스코 챔피언십, LPGA 챔피언십, US여자오픈, 브리티시오픈)에서 모두 우승하는 것을 말한다. 골프 역사상 그랜드 슬램을 이룬 선수는 아직 아무도 없다. 커리어 그랜드슬램은 시즌에 상관없이 4대 메이저 대회를 모두 우승하는 것을 뜻한다. 박인비는 대기록 작성에 가장 근접한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
박인비는 시즌 우승 횟수에서도 박세리의 기록을 위협하고 있다. 현재 박세리가 2001, 2002년 남긴 5승에 1승만을 남겨둔 상황. 박인비는 시즌 전체 일정의 절반가량인 13개 대회 만에 4승을 기록했다. 역대 선수 중 가장 속도가 빠르다. 이런 활약대로라면 박인비가 목표하는 ‘올해의 선수상’도 가능하다. LPGA 투어에서 현재까지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한국 선수는 없다. 박세리도 명예의 전당에는 입성했지만, 올해의 선수상은 받지 못했다.
박인비는 “어릴 때 우상이던 박세리 선배를 요즘 만나면 ‘내가 꿈을 이뤘구나’라는 뿌듯함을 느끼곤 한다”며 “선배님이 워낙 대단한 기록을 세웠기에 그걸 깨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다만 대회마다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는 좋을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