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 생활은 힘들었다. 8남매 집안에서 자란 만큼 단체 생활 적응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선후배 간의 엄한 규율은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선배들의 세탁물, 특히 한겨울에 신발과 유니폼을 손빨래할 때는 손이 시려워 눈물이 날 정도였다. 중학교 때는 식사 당번을 정해 시장에서 직접 장을 본 뒤 아침, 점심, 저녁식사와 훈련 전후 간식을 준비해야 했다.
그래도 참을 만했다. 적응력이 좋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핸드볼에 빠져 있던 시기라 가장 좋아하는 운동을 하며 살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하지만 슬럼프가 없진 않았다. 체벌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그런 일이 생기면 큰일이지만 그때만 해도 체벌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혼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어 억울할 때도 많았다. 볼이 선배 몸에 닿으면 혼났고, 동료 한 명이 경기 중에 실수라도 하면 선배들이 단체로 기합을 준 적도 있다. 감독님이 안 나오신 날, 코치님이 남자 중학교 팀과 돈을 걸고 연습 경기를 시켰다가 경기에서 패해 구타를 당한 경험도 있다.
나는 감독님과 선배들에게 맞는 게 성적이 잘 나오지 않거나 부상을 당하는 것보다 두려웠다. 정당하게 혼날 때는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화가 나서 체육관을 뛰쳐나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그만두면 며칠 안 되어 후회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만두진 않았다. 그럼에도 성적은 꾸준히 잘 나왔다. 6학년 때 서울 대회에 나가 2등을 하고 나서는 그야말로 승승장구했고, 그 중심에 있던 나는 유망주가 됐다. 그 힘으로 버텼다. 체벌을 싫어하는 마음보다 승리했을 때 감독님, 선수들과 누렸던 기쁨의 마음이 더 컸다.
장애물은 하나 더 있었다. 사춘기로 접어든 친구들이 나를 시기하기 시작했다. 항상 베스트 포지션에서 밀리지 않고, 감독·선생님들의 칭찬을 많이 받아 그럴 만도 했다. 그래서 그럴수록 나는 궂은일을 자처하고, 내성적이던 성격도 바꾸려 노력했다.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코트에 남아 있다 보니 어느덧 전국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수로 성장해 있었다. 난 사람들의 관심과 칭찬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스스로 올림픽에 나가기까지는 결코 성공한 것이 아니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올림픽 출전의 꿈을 서서히 꾸기 시작했다.
임오경 감독은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은메달 △2004년 아테네올림픽 은메달 △현재 한국여성스포츠회 이사, 대한핸드볼협회 상임이사, 평창동계올림픽 선수위원. 영화 우리들 생애 최고의 순간(2008, 감독 임순례)의 실제 인물로 유명하다.
*‘임오경의 우생순’ 격주 목요일에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