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판 곳곳에서 여성들이 움직인다”
여성리더십 다루는 ‘아테네영화제’ 창시
여성 감독 40명 인터뷰한
‘여성의 목소리’ 출간
-‘여성과 할리우드’가 여성주의적 영화 평론 웹사이트로 세계적 평가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할리우드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나.
“사람들은 여성 주제에 별로 관심이 없어 인기 분야는 아니다. 아카데미 시상식 즈음 등 영화 관련 특정 시기에 좀 더 주목을 받는 정도라고나 할까. 그러나 영화 제작을 하거나 공부를 하는 젊은 여성들이 매일 보내오는 이메일을 보면서 우리의 주장이 하나의 담론으로 되고 있고, 할리우드도 이전에 비해 젠더에 대해 좀 더 많이 얘기하고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 ‘여성의 목소리: 여성 감독이 연출을 말하다’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유수의 영화제 담당자들에게 왜 여성 감독의 영화는 안 보이느냐고 물으면 여성이 만든 작품을 볼 수 없어 그렇다고 으레 말하곤 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고 반박하고자 했다. 영화판 곳곳에서 여성들이 이렇게 열심히 뛰고 있지 않은가 하고. 더불어 영화산업에서의 여성 이미지와 역할을 제대로 바로잡고 싶어서다. 인터뷰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은 어린아이들에게조차도 ‘영화감독’의 이미지는 야구모자를 눌러 쓴 남성의 모습, 가령 스필버그 감독 같은 모습으로 정형화돼 있다는 것이다.”
-할리우드 대표 영화제작사 워너브라더스의 소유주가 “여성 감독이 만드는 영화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한 것을 신랄히 비판했다.
“할리우드의 생리는 기본적으로 여성은 절대 성공할 수 없게 만드는 그런 구조다. 기본 히트 공식은 남성과 아이언맨·배트맨 등의 슈퍼 히어로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들려면 어마어마한 예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할리우드에선 이런 엄청난 예산으로 영화를 만들 사람은 당연히 남성이 돼야 한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한다. 성공을 평가하는 기준은 첫 개봉 시 4000개 영화관에서의 상영, 이런 식이다. 이 구조 탓에 엄청난 마케팅비를 들인 액션물, 어드벤처물이 돈을 벌어들이게 된다. 그러나 여성 감독 대부분은 이런 주제에 별 관심이 없다. 그들이 원하는 스토리는 핵폭탄을 펑펑 터뜨리는 그런 얘기가 아니라 여성 자신에 대한 얘기들이다. 그래서 대부분 저예산 영화들이다. 여성이 영화의 중심으로 주인공이 되는 영화는 인기가 없다는 통념이 강하다. 그러나 한 여성 감독이 200만 달러를 들여 만든 영화가 1000만 달러 수입을 올린다면 수입과 비용 면에서 블록버스터 못잖게 성공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여성감독은 여성 얘기를 원한다
-올해 아카데미상 시상식(85회)에서도 여성은 주류에서 여전히 배제됐다.
“핵심 중 핵심인 감독상 부문에서 여성이 후보에 오른 건 총 4회고, 수상은 1회에 그쳤다. 감독상을 여성이 수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리더로서의 비전과 역할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제로 다크 서티’를 감독한 캐서린 비글로가 감독상 부문에서 탈락한 것은 특별히 실망스럽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2010년 우리가 여자인 네게 감독상을 한 번 줬으니 이제는 됐다’란 말인가.”
-비글로가 할리우드 주류에서 활동하는 유일한 여성 감독인 만큼 기대도 클 것 같다.
“비글로는 원래 액션영화를 많이 만들었고, 주로 남성 얘기를 많이 해온 감독이다. 할리우드에서 변화를 일으킬 만한 그리고 롤 모델이 될 만한 훌륭한 인물인데, 젠더 문제는 얘기하지 않고 그저 영화만 만들고 싶어 하는 인상이어서 아쉽다. 이번 ‘제로 다크 서티’를 통해 오랜만에 여성 얘기를 했는데, 이것도 아카데미 탈락 요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아테네영화제를 만들고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영화제의 의미는.
“벌서 내년 열릴 네 번째 영화제를 준비 중인데, 감독의 성별을 따지지 않고 여성리더십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소개한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주제도 스포츠, 음악, 정치, 경제, 섹슈얼리티, 일자리 등 다양하다. 일관된 것은 이들 주제를 통해 여성과 소녀들이 어떻게 지도자가 되는 과정을 밟아가는지, 그 리더십은 무엇인지 조명한다. ‘여성과 할리우드’, 버나드여대의 리더십 센터와 연계해 공동 주최하고 있고, 지난해엔 유엔여성(UN Women)과 함께 영화제에 소개된 단편영화들을 전 세계를 순회하며 상영하기도 했다. 영화를 매개로 해 기존 사회에 강력한 변화를 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큰 비전 가진 여성들, 영화에 진출하길
그는 뉴욕에서 여성운동가들과 활발한 교류를 하며 여성주의 관점에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활동 초기 ‘여성을 위한 여성재단’ 최고 책임자로 교육·보육·출산권리 등 여성의 권익 신장을 위해 일했고, 백악관 프로젝트를 만들어 여성의 정치진출을 지원했다. 정작 그 자신은 싱글 여성이지만 ‘우리의 딸을 근무 현장에 데려가자’는 공익적 캠페인을 전개하기도 했다. 소녀들에게 미래 롤 모델을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게 해주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이 캠페인은 대중화에 성공,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단, 캐치프레이즈는 조금 변형됐다. ‘아들’이 첨가된 것.
“1980년대 초반 십대 시절에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엔틀’(Yentl)을 보고 영화 관련 일이 바로 내 평생 직업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영화의 엔딩 크래디트에서 스트라이샌드가 여성으로서 시나리오를 쓰고 제작 감독을 한 데다 주연까지 1인 다역을 했다는 것을 알고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이제는 여성들의 이야기도 남성들의 이야기만큼 중요하고 가치 있으며, 특히 영화를 만드는 이들 중엔 여성도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내 책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