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한 모임에서 아들만 둘인 내게 지인이 건넨 말이 충격이었다. “시어머니는 나쁜 시어머니와 더 나쁜 시어머니 두 부류래요.” 지난해 시집을 ‘시월드’로 표현해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 모습을 극화해 공전의 히트를 친 모 방송사의 주말 드라마가 아니었어도 고부 갈등 이야기는 누구나 공감하지만 최근 들어 점점 도가 넘어서는 것 같아 씁쓸하다. 요즘에도 TV만 틀면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이 드라마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고 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를 강자와 약자로 인식하는 순간 갑과 을의 관계로 전락해 비대칭적이고 불균형적인 역학관계가 형성된다. 이러한 관계는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해 대다수 조직 관계에서 정형화돼 나타나고 있다. 특히 대기업과 하청기업 관계뿐 아니라 프랜차이즈 발주 기업과 가맹점 관계에서 극명히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불균형한 역학 관계를 다소나마 진정시키고 갈등을 완화할 수 있는 제도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란 고의적으로 이뤄진 손해에 대해 피해자에게 보상하는 배상 외에 피해자에게 입증된 재산상 손해에 따른 원금과 이자뿐만 아니라 징벌적 요소가 포함된 금액을 추가적으로 배상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1760년대 영국의 인쇄공 허클이 제기한 소송에서 영국 법원이 판결문에 징벌적 배상이라는 표현을 쓴 데서 비롯됐다. 1994년 미국에서 뜨거운 맥도널드 커피가 쏟아져서 화상을 입은 할머니가 맥도널드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맥도널드는 286만 달러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아내 승리한 사건을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의 에린 역으로 2001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줄리아 로버츠가 ‘힝클리 주민 vs PG & E 사건’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액 3억3300만 달러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아낸 것 역시 대표 사례다.

2008년 러시아가 2배수 징벌배상을 민법에 도입하고 2010년 중국은 자신에게 손해를 입힌 기업을 대상으로 무한 징계성 배상을 요구하는 권리를 담은 침권책임법을 제정해 시행하는 등 징벌적 배상 제도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기업의 ‘납품 단가 후려치기’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강화하는 내용을 포함한 하도급법 개정안이 지난달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시행될 수 있게 됐다. 하도급법 개정안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포함해 부당한 발주 취소, 부당 반품, 부당한 단가 후려치기 등이 발생할 경우 피해액의 3배 내에서 배상하도록 했다.

양찬회 중소기업중앙회 동반성장실장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야말로 대기업들의 부당 하도급 거래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밝혔다. 박치영 중소기업청 대변인도 “단가 후려치기야말로 중소기업인들이 가장 큰 고통을 느꼈던 하도급상의 문제”라며 “앞으로 중소기업들이 납품 수지를 맞추기 위해 고민할 일이 줄게 되는 것만으로도 진일보한 개정안”이라고 평가했다.

드라마 ‘백년의 유산’에서 며느리 민채원이 시어머니 방 회장에게 징벌적 배상제도를 도입해 그동안의 피해를 요구할 수 있게 된다면 시월드가 조금 더 편안해지고 더 이상 고부 갈등이 소재로 등장하는 드라마를 시청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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