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20년 이상 이혼 급증 4년 이하 신혼 이혼 초월
“폭언·폭행, 경제력 독점 문제로 갈등 빚다 남남”
인생 100세 시대가 도래했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젊고 건강한 노인들이 늘어난 것은 축복이지만 그 이면에는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 있다. 인생 100세 시대의 명암을 취재했다.
서울에 사는 70세 여성 김민자씨는 남편의 의처증과 폭력으로 오랜 기간 힘들어하다 이혼을 결심하곤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찾았다. 김씨는 “동갑내기 남편은 수십억 원 재산을 가진 자산가다. 그런데 남편은 내게 이혼하면 맨몸으로 나가라고 한다. 이혼을 원하지만 남편 뜻대로 돈 한 푼 못 받고 나올 수는 없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60대 여성 박순정씨도 70대 남편과 이혼 시 재산 분할이 가능한지 여부를 타진하고 있다. 남편은 결혼 초부터 아내를 무시했고, 다른 여자들과 만나고 다녔다. 폭언과 폭행도 자주 했다. 특히 돈 문제는 일일이 검사하고 보고해야 했다. 박씨는 “40년 동안 가계부를 썼다. 남편은 가계부를 보고 영수증까지 일일이 대조해 검사하고 트집을 잡았다”며 “자신은 월세를 받아 쓰고 싶은 것 다 쓰고 다니면서 내가 병원비라도 조금 쓰면 윽박지른다”며 “10년 전부터는 각 방을 쓰고 있다. 지금이라도 꼭 이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황혼이혼이 급격히 늘고 있다. 통계청의 ‘2012 혼인·이혼통계’에 따르면 결혼한 지 20년 이상 된 부부의 이혼이 전체의 26.4%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20년 이상 된 부부의 이혼은 4년 차 이하 부부의 이혼 건수를 추월한 상태다. 2011년에는 결혼 4년 차 이하 이혼이 3만700건, 20년 차 이상 이혼이 2만8300건으로 4년 차 이하 이혼이 가장 많았으나 2012년 들어 4년 차 이하 2만8200건, 20년 차 이상 3만200건으로 처음으로 수치가 역전됐다. 특히 혼인 기간 30년 이상 부부의 황혼이혼은 8600건으로 전년보다 8.8% 늘어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이재원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고령화로 노령 인구가 절대적으로 늘었고, 평균수명이 늘어나다 보니 지금의 상황을 바꿔보려는 유인이 더욱 커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이혼 상담 5409건 중 여성이 84.6%(4575건), 남성이 15.4%(834건)를 차지했다. 여성들의 이혼 상담을 분석하면 60대 이상 상담은 11.4%(521건)로 전년도 9.2%(402건)보다 늘었다. 남성은 지난해 기준 834건의 상담 중 60대 이상이 175건(21%)에 달한다.
남편의 폭언과 폭행, 학대뿐 아니라 의사소통의 단절, 경제권 문제는 황혼이혼의 주된 사유다. 박소현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법률구조2부장은 “젊어서는 아이를 키우며 참고 살았지만 나이 들어서도 남편이 경제권을 독점하는 데 대해 아내가 반발해 이혼하는 경우도 많다”며 “아내는 평생 같이 노력해서 가정을 일궜는데 남편이 자신이 벌었다는 이유만으로 월세나 연금을 자유롭게 쓰는 것을 도저히 못 참겠다고 한다. 경제권 문제로 황혼이혼을 할 경우 자녀들의 입장도 갈린다”고 말했다.
자녀를 둥지에서 떠나 보낸 후 이혼을 결심하는 데는 여성들의 의식 변화도 영향을 끼쳤다. 지금은 “자식 때문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심리를 가진 여성들이 대다수다. 아내는 남편을 훌훌 떠나 마음 편하게 살고 싶어 한다. 더 이상 자녀가 보호해줄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를 보호한다는 의식도 크다. 특히 외도는 황혼이혼의 주된 사유다. 70대 남성이 바람을 피우면 아내는 “평생 반복된 외도를 더 이상 못 참겠다”고 한다. 고령화 시대가 되면서 70대 노인들 역시 자신의 인생이 ‘끝자락’에 와 있다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황혼이혼 대신 노년이혼으로 불리는 이유다.
요즘 노인들은 딸이나 아들 집에서 사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경향이 있다. 며느리나 사위에게 얹혀사는 게 싫다고 한다. 남편을 무시하고 사는 게 덜 외로운 방법 같은데도 70대 할머니가 전세방을 얻고 혼자 끼니 챙겨 먹고 살겠다고 이혼을 감행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부부가 친밀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녀들에게 가치를 두고 가정을 꾸려나가선 안 된다는 것이다. 박 부장은 “‘부부 간에 말 안 해도 알겠지’ ‘부부니까 믿으며 살겠지’ 하면서 아내가, 혹은 남편만 일방적으로 헌신해야 되는 관계라면 결국 갈등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의사 소통을 잘하고, 마음을 서로 주고받고 가꿔나가야 좋은 부부 관계가 된다.
이혼을 예감할 수 있는 징후도 있다. 이혼 상담을 하는 부부 중 방을 따로 쓴 지 오래됐다는 부부가 적잖다. 스킨십도 하지 않고 대화도 단절된 상태에서 냉담해졌는데 나이가 더 들면 새삼스레 방을 합칠 수도 없는 것이다. 가급적 상대방이 싫어하는 행동은 하지 않되 자신이 절대로 양보하지 못하면 대화를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