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작가 “소소한 일상에서 빛나는 순간을 발견합니다”

작가 개인에게나 우리 문학계에나 근래 가장 의미 있는 성과로 꼽히는 것 중 하나는 신경숙(50·사진) 작가의 밀리언셀러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을 비롯해 33개국에서 판권이 계약되고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내며 한국의 문학세계도 세계인과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사건일 것이다. 작가는 지난 4월 3일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으로 도약하는 데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는 평과 함께 호암재단(이사장 이현재 전 국무총리)이 수여하는 호암상 예술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엄마를 부탁해’에 대한 그의 첫 마디는 “그 작품 덕에 한국어 안에만 갇혀 있던 한계에서 문을 열고 다른 세상으로 나간 것 같다”는 소회였다. 더구나 최근 단편소설집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문학동네)가 출간되자마자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1위를 점하고 예스24, 교보문고 등의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곧장 위로 뻗어나가는 등 독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고 있다.

“초점이 마음에 맞춰져 있어 그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끊임없이 갈등하고 반추하며 무엇인가를 말하려는 존재”인 화자들을 통한 내밀한 내적 묘사로 이야기를 엮어가던 작가의 기존 스타일과 상당히 다른데도 의외의 결과다. 침잠하듯 독자를 내면의 세계로 끌고 들어가 깊은 여운을 남기곤 했던 기존의 스타일에서 유쾌 상쾌 감성으로 급격히 이동한 파격적 시도라 주목을 하지만 사실 작가가 이 짧은 얘기들을 써내려간 때는 이미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0년 2월까지 26개월간 지금은 폐간된 월간 도서평론지 ‘북새통’에 연재한 26편을 이번에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같은 시기, 한편으론 ‘엄마를 부탁해’ ‘리진’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세 편의 장편 작업도 병행하고 있던 차였다. 

작가의 길로 들어선 첫 순간부터 지금까지 28년간 “나의 문학 모티브는 언제나 나와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그를 서울 평창동의 한 한적한 카페에서 만나 작가가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과 그들이 사는 세상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매달 1편씩 썼는데, 마감 날이 다가오면 어떤 얘기를 쓸까, 이걸 선별하는 게 더 힘들었을 정도였다. 한 달간 가장 나를 밝고 환하게 만들어 준 생각, 그 순간을 포착해 글로 써내려갔다. 뉴스를 통해 상상도 할 수 없는 얘기들을 접하며(그가 단편 작업을 할 당시엔 노무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자살, 광우병 파동 등 사회적으로 결코 평온한 시기가 아니었다) 때론 ‘아, 내가 인간인 게 싫다’ 이런 실망을 하게 될 때, 그리고 깊은 좌절감을 느낄 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익명의 일상 속에 스며 있는 밝은 힘과 사랑, 거기에 웃음 지으면서도 나중엔 짠하게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순간들을 그냥 사라져버리게 하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그 전 소설들이 나를 슬픔에 잠기게 하고 서럽게 하거나 비참하고 고독하게 한 일들에 초점을 맞춰 써내려 간 경우와는 좀 대조적이긴 하다. 그래서인지 한번 쓰기 시작하면 반나절을 책상에 앉아 원고를 송고하는 그 순간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고 끝낼 정도로 즐겁게 열중했다.

일상을 함께 한다는 게 참 별일 아닌 것 같지만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일상 때문에 시간이 계속 이어지고 흘러가고 그런 귀함이 있는데, 다들 잊고 지낸다. 소소한 웃음을 주며 열심히 사는 이들을 글로 풀어내면서 내가 그들과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에 위로받고 기뻤다.”

책 제목을 처음 보며 언뜻 떠오른 궁금증, ‘왜 달이어야 할까’는 그의 설명을 듣고 금세 풀렸다. 작가는 “달은 해와 달라 바로 바라볼 수 있고, 달을 응시하다 보면 얘기를 하고 싶어진다. 때론 사색하게 하고 자성도 하게 해주는, 거울과 같은 존재”라며 “소설 속에 나오는 이들을 모두 일종의 ‘달’이라 생각했고, 지극히 평범한 이들의 빛나는 순간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사실 ‘엄마를 부탁해’는 각각의 에피소드, 음식 묘사에 이르기까지 지극히 한국적인 문화권 안에서의 얘기지만, 이를 뚫고 그 밑에 깔린 인간적인 친밀감은 세계 공통의 정서와 통한다고 생각한다. ‘현대인’이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상실해버린 그 무엇을 ‘엄마’로 표현했다. 그 무엇, 즉 엄마를 잃고 방황하는 가족들에게서 현대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봤기 때문에 그런 호응이 온 것 아닐까, 혼자 생각해본다.

인간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혼자 성장할 수 없는 존재다. 그 디딤돌이 되는 것이 바로 ‘엄마’다. 아무리 나쁜 엄마일지라도. 누구에게나 삶의 첫 시작은 엄마 냄새를 맡는 데서 시작되고 이를 통해 자신이 인간임을 배운다. 작가에게도 엄마란 존재는 무한한 메타포인데, 소설을 집필하면서 장편소설에서 엄마 소재가 별로 없다는 게 오히려 놀라웠다. ‘엄마’는 굉장히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소재이면서도 가장 쓰기 어려운 소재인 것 같다.”

작가로서 바라본 ‘엄마’라는 존재는 “읽어도 읽어도 여전히 읽을 페이지가 남아 있는 아주 두꺼운 책”이다. 그는 ‘엄마를 부탁해’를 썼던 때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엄마와 많은 얘기를 나누고 가장 많이 생각했던 시기라 회상한다. 결론은, “어렸을 때, 소녀였을 때, 그리고 30·40대를 지나 지금 바라본, 혹은 내가 아는 엄마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다 알지 못할 존재, 비밀이 너무 많은 존재”인 엄마로 인해 그는 “그래서 엄마가 그랬구나” 하는 뒤늦은 이해를 하며 삶을 통찰하게 된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 뒤늦은 깨달음은 앞으로도 계속, 살아 있는 그날까지 늘 일어날 것이란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디다 고정시켜 놓을 수 없는 삶을 사는 이가 바로 ‘엄마’다. 엄마는 언제나 힘이 세고 강한 존재, 거목처럼 고정돼 있는 존재로 남아 있길 바라는 게 인간의 마음이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다. 점점 내가 강해져 가는 반면 엄마는 점점 힘이 빠져 누군가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홀로 지낼 수 없는 빈 고둥 같은 상태로 돌아가고 있는데…. 이런 현실을 계속 목도하면서 글을 더 쓰기가 힘들더라. 그리고 이후 온 깨달음, 내 인생에도 언젠가는 누군가를 보살피는 역할, 즉 ‘엄마’의 역할로 전환되는 시점이 있을 텐데, 과연 엄마처럼 할 수 있을까, 두렵고 선뜻 받아들이기가 힘들 것 같다.”

“아버지가 왜 그런 성품이신지 세월이 많이 흐른 후에야 이해하게 됐다. 한국전쟁 전후 사회에서 너무나 큰일을 많이 겪고 보면서, 말 한마디로 한 인간의 삶, 공동체의 삶 전체가 무너지는 꼴을 숱하게 목도했기에 말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됐을 것이다. 지금은 팔순이 넘으셨지만, 언젠가 병원에 입원하신 아버지가 무의식적으로 발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에게도 너무나 많은 상처가 있었음을 뒤늦게 알게 됐다.”

최근 방한했던 하버드대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장 파우스트 총장이 농촌 출신(전북 정읍)으로 열여섯 살에 상경해 공장 일을 하면서도 야학으로 학업을 계속해 대학에 진학하고 결국 세계적인 작가가 된 그를 가리켜 “여성 교육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라 인용했다. 그 또한 이를 알고 있었다. 고향에서 중농으로 그렇게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여섯 형제 모두 대학에 가야 해서” 가난할 수밖에 없었고, 그 와중에 제일 큰오빠와 자신이 가장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고 덧붙였다.

“우리 부모는 두 분의 인생을 자식을 교육하는 데 다 바친 분들이다. 지금도 고향집에 가면 방에 학사모 쓴 여섯 형제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는데, 그게 바로 우리 집의 풍경이다. 엄마는 나를 중학교에 보내기 위해 손가락에 끼었던 유일한 장신구인 반지를 기꺼이 팔아 등록금을 댔다. 그래서 내가 돈이란 걸 벌고 처음 한 일이 바로 엄마에게 반지를 사주는 것이었다. 엄마가 늘 신조처럼 하시던 말씀은 ‘많이 배우고 읽고 그래야 제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