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작가는 쌍용자동차 해고 문제를 한정된 의자를 놓고 서로를 밀쳐내는 ‘의자놀이’에 빗대어 책을 썼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심각성으로만 보면 ‘의자놀이’라기보다 ‘의자 빼앗기’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의자 빼앗기 게임’은 한 회사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어릴 때부터 내가 앉기 위해 누군가를 밀쳐내야 하는 경쟁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이 경쟁 사회에서 불안한 부모들은 자신의 역할을 내 아이를 먼저 의자에 앉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방법을 하나같이 공부에서 찾습니다.

어떻게든 남보다 빨리 그리고 많은 공부를 시키기 위해 어릴 때부터 설득, 강요, 비난, 회유, 거래 등을 드러내놓고 벌입니다. 나름 원칙이 있는 부모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공부 습관을 들여놓지 않으면 안 된다” “옆집 아이들은 이렇게 한다더라” “영어는 중학교 때까지 끝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믿고 기다린다는 것’이 아이를 방치하거나 시대착오적인 것 같은 느낌에 원칙은 무너져 내리기 쉽습니다.

경쟁과 불안은 부모와 자녀의 신뢰관계를 근본적으로 위협합니다. 가장 믿음에 기초해야 할 관계가 어릴 때부터 불신과 갈등으로 치닫습니다. 공부 문제로 상담을 하는 부모들은 흔히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이를 믿고 싶은데 행동을 보면 믿음이 안 가요.” “공부 약속을 지키지 않는데 어떻게 믿어요?”

그렇기에 얼마나 공부하는지 계속 확인하고 또 확인합니다. 그러나 부모가 말하는 지켜야 하는 약속이란 사실 일방적인 약속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부모가 아이를 못 믿고 확인하려고 할수록 아이들은 점점 더 공부할 마음을 잃어갑니다. 시켜야만 공부한다고 믿는 부모 아래에서 스스로 공부하는 자녀들이 나올 리 만무합니다. 결국 부모의 불신처럼 아이들은 점점 자기 스스로를 못 믿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엇나가거나 시키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타율적인 존재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백혈구 같은 면역세포가 신체적 면역력의 핵심이라면 ‘자기 신뢰’는 정신적 면역력의 핵심입니다. 자신을 믿지 못하고서는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법입니다. 그러나 자기 신뢰의 바탕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부모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부모란 모름지기 어떤 상황에서든 자녀를 믿어줄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먼저 믿게끔 해줘야 믿음을 보내주는 거래가 아니라 먼저 진심으로 믿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입니다. 부모와 자식의 사랑을 ‘내리사랑’이라고 하는 것처럼 부모가 자식을 믿어주는 ‘내리믿음’이 있어야 자기 신뢰가 형성됩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부모로부터 내리믿음을 받은 아이들은 설사 방황하더라도 다시 돌아오기 마련이고, 공부가 아니더라도 자기 몫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줄 최고의 선물은 ‘내리믿음’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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