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자식 안 굶기는 어머니 마음”으로 국민행복시대 열라
우선 꼽히는 요인은 새 정부 출범이란 호재를 타고 ‘안타’를 날릴 수 있는 참신한 인재 기용, 특히 여성 인재 발탁엔 소극적인 반면, 무난할 듯 예견됐던 1·2차 인선 과정에서 파생된 논란과 이로 인한 국민의 실망감일 것이다. 2월 첫주인 4~7일 사이 한국갤럽이 전국의 성인 121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박 당선인의 직무수행 평가 조사에선 긍정적 반응이 48%에 그쳤다. 바로 전주에 비해 4%포인트 하락해 50% 아래로 내려간 충격적인 수치로, 잘못된 인사가 주요인으로 꼽혔다. 문제는 이를 돌파할 파격적 인사 기용, 특히 여성 발탁의 움직임이 현재까지도 감지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 초기 역대 최다인 여성 장관 4명을 기용하고, 여성 첫 법무장관, 여성 첫 대법관, 여성 첫 국무총리로 이어지는 새로운 여성 리더십을 시험한 것과 굳이 비교하진 않더라도 인수위 구성 단계에서부터 최근의 내각과 청와대 인선에 이르기까지 여성은 하마평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것은 의외다. 이대로라면 가부장적 전통이 강한 반면 지구상 그 어느 곳보다 역동적인 발전을 보여주고 있는 대한민국의 ‘첫’ 여성 대통령이기에 충분히 가능한 남녀 동수 내각은 고사하고 여성 비율이 10%나 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박 당선인이 대선 기간 동안 강조했던 여성 인재 중용의 ‘구두’ 공약이 그야말로 말로만 그칠 가능성이 커졌다.
다음으론, 박 당선인의 ‘여성’ 구호에 걸맞은 여성감동 약속이 뚜렷하게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새로 출범할 박근혜 정부에 대한 긍정적 기대가 상대적으로 높았던(78.4%) KBS와 미디어리서치의 신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첫 ‘여성 대통령’으로 한층 강화할 정책 분야는 ‘집값·물가 등의 서민경제’(35.8%), ‘성범죄 엄벌 등 사회안전망’(22.6%), ‘아동보육 등 복지정책’(21.6%)이다. 복지국가의 롤 모델인 스웨덴의 실례를 보더라도 국민의 이 같은 기대는 지금이 복지국가로의 전환기이고, 여기에 성 평등을 기조로 ‘여성’과 ‘가족’을 중심에 놓아야 함을 시사한다. 스웨덴이 성평등 가족정책을 경제에 앞서 그 어떤 현안보다 최우선 순위에 두고 추진해나감으로써 성공했다는 점을 생각할 때 박근혜 정부의 새 사람들 중 여성· 가족 정책 전문가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 우려스럽다.
인수위 여성문화분과 위원인 김현숙 의원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는 임기 내 꼭 지켜야 할 여성공약 과제를 8개 부처에 걸쳐 대략 19개로 꼽았다. 구체적으론 일·가정 양립과 양성평등 실현·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체계 구축·안전한 사회 만들기 등 3대 목표를 중심으로 여성인재 10만 양성 프로젝트, 적극적 고용제도 정착을 통한 여성고용 확대, 임신기간 내 근로시간 단축제 도입, 아빠의 달 도입, 0~5세 보육 및 육아교육 국가완전책임제 실현, 한부모 가정 지원 강화, 성폭력 피해자 치료 지원 강화 등의 공약을 실천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문제는 수차례 지적돼 왔듯이 공약을 통한 박근혜 정부의 여성정책 과제가 저출산 탈출용 공약과 그 외 공약으로 이분화돼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급격한 사회변화와 함께 대두되고 있는 새로운 여성인권 분야나 여성 소외계층의 문제, 양성평등 교육의 체계적 도입, 국공립 기관부터 모범적으로 실시하는 한시적 여성할당제 등 근본적이고 다양한 문제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 보인다.
임신기간 내 근로시간 단축제나 아빠의 달 도입 등의 참신한 세부 조치는 눈에 띄나 모성보호 조치를 위반한 사업장에 대해선 어떤 제재를 가해 모성보호권을 현실적으로 보장할지 불투명해 보인다. 얼마나 다양하게 여성 현장을 탐색하고 여성 전문가와 소통했는지 회의적이다.
대선 직전 여성신문 여성정책공약평가단은 18대 대통령의 핵심 전략과제로 정책 전반에 성주류화 정책을 추동해낼 수 있는 조정 및 평가 권한을 가진 전담기구 설치와 남녀 동수내각 구성을 제시했다.
1월 28일 주요 여성단체들은 인수위에 “노동과 복지 영역의 차별적 구조를 해소하고 남녀노소 누구나 사회안전망에서 배제되지 않는 성평등 복지국가를 만드는 데 최우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모두 박 당선인이 대선 기간 내내 강조해온 “열 자식 안 굶기는 어머니의 마음”과 통하는 메시지다. “어머니의 마음”은 여성 특유의 모성리더십을 십분 발휘해 삶의 질을 높일 복지정책을 강화하고, 특히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읽히기 때문이다.
메리 로빈슨 아일랜드 첫 여성 대통령은 영국과의 평화적인 관계 속에 수년에 걸쳐 90%에 육박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 임기 중간쯤 이미 지지율 90%를 넘어섰다. 미국의 첫 여성 대통령으로 강력히 점쳐지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1월 31일 퇴임식에서도 “여성이 남성과 똑같이 존중받고 권리와 기회가 보장된다면 정치·경제적 발전도 이뤄질 것”이라며 성평등 사회 실현을 아직 끝나지 않은 21세기의 과업이란 말로 여권론자로서의 일관된 소신을 표했고, 전 세계인의 갈채를 받았다. 박 당선인도 1월 24일 ‘2013 여성 신년 인사회’를 통해 “여성행복·국민행복의 새 시대를 열어가는 것이 첫 여성 대통령으로 제게 주어진 막중한 책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대선 당시 박 당선인을 지지했든 안 했든 이젠 모두 과거사다. 여성들은 박 당선인의 “여성행복·국민행복의 새 시대”를 향한 의지와 진정성을 믿는다. 그리고 힘껏 응원하고 싶다. 박 당선인은 국민의 선택을 받은 ‘준비된 여성 대통령’ 슬로건을 다시 환기하고 한층 강력하고 실효성 있는 양성평등 국정철학과 그 구체적 방안을 확고히 제시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