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란재단으로 스포츠 꿈나무 멘토링 사업… IOC 위원 도전 꿈꿔
“최악 속에서 최선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힘을 믿는다”

 

‘로즈란’ 장미란씨가 15년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새로이 시작하는 제2의 삶은 장미란재단을 중심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장씨가 유소년 스포츠 육성에 주력 중인 재단 사무실에서 꿈나무 선수 포스터를 배경으로 서있다.sumatriptan patch http://sumatriptannow.com/patch sumatriptan patchsumatriptan 100 mg sumatriptan 100 mg sumatriptan 100 mg
‘로즈란’ 장미란씨가 15년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새로이 시작하는 제2의 삶은 장미란재단을 중심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장씨가 유소년 스포츠 육성에 주력 중인 재단 사무실에서 꿈나무 선수 포스터를 배경으로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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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효식 / 여성신문 사진기자 yesphoto@womennews.co.kr
시상대에 올라 메달을 목에 거는 순간, 운동선수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맞이한다. 그러나 시상대에서 내려온 후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때의 영광과 아울러 새로운 기대를 받는 선수는 그리 흔치 않다. 그 행복한 선수, 장미란(30)씨를 만났다.

세계 여자역도 사상 ‘장미란’ 같은 선수는 없었다

1월 29일 은퇴 일주일 후 경기 고양시 덕양구에 위치한 장미란체육관에서 만난 그는 호칭 문제를 고민하는 기자에게 “아직은 ‘장 선수’라 불러주는 게 편하고 좋다”고 수줍게 미소지었다. 왜 안 그렇겠는가. 1998년 이후 여자역도의 현 체급 체제 이래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포함, 세계선수권대회 4연패를 이뤄내며 2005년부터 5년 연속 세계 제패를 한 선수는 그가 유일하다. 세계 여자역도의 역사를 새로 써내려간 그에게 국제역도연맹(IWF)은 세계선수권대회 최우수선수(MVP)에 해당하는 ‘베스트 리프터’를 수여한 바 있다. 그 경이로운 기록 못지않게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지난해 런던올림픽에서 바벨에 작별 키스를 하던 그의 모습. 그때 이미 그의 제2의 삶이 곧 시작될 것이란 막연한 예감을 했다. 그리고 은퇴 공식화 이후 본격적으로 드러난 윤곽은 스포츠 꿈나무 육성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장미란재단’이다.

“좋은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나부터 올바르게 가고, 나부터 준비를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포스트 장미란? 전혀 없진 않다고 낙관한다. 비슷한 친구끼리 경쟁하다 보면 그중에 올라가는 선수도 생길 테고, 중요한 것은 유망주를 오래 참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역도의 경우, 비인기 종목이긴 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학교의 권유로 강제적으로 역도를 택하는데서 조금씩 벗어나 본인이 하고 싶다고 찾아오는 아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고양시와 비자카드의 후원으로 발족된 장미란재단은 유소년 스포츠와 사회체육 교육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비인기 종목 선수와 스포츠 꿈나무 지원, 다문화 가정과 한부모 가정 자녀 대상의 스포츠 체험 프로그램 운영 등을 주요 사업으로 한다. 다른 스포츠 스타들의 재단과 확연히 차별되는 점은 멘토링 프로그램이다. 재단 이사장인 그를 비롯해 전상균(역도), 남현희(펜싱), 김재범(유도), 박태환·정다래(수영), 유승민(탁구), 박성현(양궁), 황경선(태권도), 이용대(배드민턴), 조해리·이정수(빙상) 등 일단의 스타 선수들이 멘토로 참여하고 있다.

“여러 종목에서 상징성을 가진 친구들이 멘토 역할을 충분히 할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의 멘토링 시스템은 멘토가 멘티를 직접 추천하는 좀 독특한 방식이다. 멘토와 멘티 간 친밀성과 책임감을 위해서다. 생각해봐라. 꿈나무 선수들에겐 올림픽 스타를 만나는 것 자체가 바로 꿈 아니겠는가. 어린 선수들에 대한 훈련이 이제까지는 강압적으로 반복돼 왔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본인이 열심히 하고자 하는 의지다. 이럴 때 선배 선수들이 직접 대화도 나누고 조언도 해주면 정말 좋은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

재단에서는 3월 2일 스포츠 멘토링 발대식을 가지고 올해 여름·겨울방학 기간 중 캠프를 열고, 스타 선수들과 함께 ‘찾아가는 운동회’도 개최할 계획이다. 최근 그는 KBS의 ‘1박2일’, SBS의 ‘행진’ 등의 촬영을 위해 강원도 등지에서 국토 대장정을 하고 돌아왔다. 특별히 이번에 좀 무리를 해 촬영에 임한 것은 산골두레운동회 개최 등 프로그램 취지와 재단의 사업 방향이 잘 맞았기 때문이다. 역도의 대중화와 함께 유소년 스포츠를 키우기 위해서라면 어디든 달려갈 생각이다.

동기부여 위해 남현희 박태환 등 스타 선수 유소년 스포츠 멘토로

“(15년간 바벨을 들어왔기에) 선수촌에 오래 있다 보니 두루두루 친해졌지만 그래도 선후배, 동료 선수들에게 멘토 참여를 권하는 것은 아직도 힘들고 부담스럽다. 나 자신 선수 생활이 어떤지 잘 알기에 한창 현역에서 활동 중인 선수들은 억지로 안 되는 시간을 쪼개가며 동참하라고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은퇴 혹은 은퇴를 앞둔 선수들을 중심으로 멘토 참여를 권하고 있다. 재단 쪽에만 좋은 일은 장기적으로 결코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멘토링 참여는 재능 기부이기에 마음과 마음이 모이지 않으면 정말 힘들 것이다.”

그는 요즘도 시간이 날 때마다 태릉선수촌에 가서 후배들이 운동 끝내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면서, 또 수요일 저녁마다 열리는 선수촌 예배를 같이 드리면서 말없이 후배들을 격려하고 있다.

오랜 여정을 끝낸 그에게 역도란 무엇이었을까.

“역도가 아니었다면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역도 때문에 꿈을 갖게 됐고, 정말 열심히 살았다. 어떻게 보면 역도를 시작한 것 자체가 내겐 기적이었다.

역도는 전신운동이다. 상체와 하체를 다 움직이는 운동이니 참 여러 가지 조건이 붙는 운동이기도 하다. 순발력만 있어서도 안 되고 지구력만 있어서도 안 되는 운동이다. 이 모든 것이 적절한 조화를 이뤄 최고의 기록을 내는 운동이다.

내가 역도에 빠져든 가장 큰 이유는 역도야말로 기록을 통한 정직한 운동이기 때문이다. 약간의 오차는 있지만 내가 땀 흘린 만큼 시합 때 결과가 나타난다. 훈련량이 절대 거짓말을 안 하는 운동, 심판의 판정 논란이 없는 아주 깔끔한 운동이다.”

그는 자신의 전성기를 20대 중반, 2007년부터 2009년 사이로 회고한다. 20대 초반 때는 뭘 모르면서도 운동만 열심히 한 것 같고, 후반에는 너무나 잘 알아 여러 가지를 참 많이 걱정하곤 했다. 그러나 20대 중반 무렵엔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또 다 아는 것도 아닌” 그 막연한 가능성이 좋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힘들었던 때는?

“지금 생각해보면 선수생활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때는 런던올림픽을 준비할 때였던 것 같다. 도전을 할까 말까 생각이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여러 가지 고민을 했다. 결론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니 도전하자’고 정리했다. 앞으로의 결과에 대한 두려움에도 사로잡히지 말 것이며, 남 탓도 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오로지 최선만 다하자고 결심했다. 바벨 키스? 수십 년 동고동락했으니 ‘그냥 수고했다’는 서로에 대한 격려의 표시였다. 잘했을 때나 못했을 때나 바벨은 늘 내 곁을 지켜왔으니.”

그는 오랫동안 그를 괴롭혀 왔던 교통사고 후유증이나 부상에 대해서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것이 은퇴 이유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정점을 찍으면 그 자리에서 내려오기 싫은 게 당연하겠지만, 그것 역시 하나의 과정이라 본다.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군림할 수도 없고, 나만 최선을 다한 게 아니라고 자연스럽게 생각되더라. 내 성격 중 장점은 좋으나 싫으나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다(웃음). 그래서 특별히 슬럼프를 오래 겪거나 이게 슬럼프라고 생각했던 적이 별로 없다. 선수로서는 행복한 품성을 가졌다고 감사히 생각한다.”

그는 탁구 스타였던 이에리사 국회의원(새누리당), 김성근 고양원더스 감독을 돈독한 멘토로 두고 있다. 특히 김 감독과는 비교적 최근인 2008년에 알게 된 사이지만 40여 년의 나이 차를 뛰어넘어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야구밖에 모르는 분이고, 겉으론 무뚝뚝해 보이지만, 너무나 유머러스하고 크리스마스 선물까지 직접 챙겨 보내주는 한없이 따뜻하고 속정이 깊은” 선배다. 선수들을 이끌고 일본 고치현에서 전지훈련을 지휘하고 있어 그의 은퇴식에 참석하지 못했던 김 감독은 손수 쓴 편지를 보내와 그 아쉬움을 달랬다. “장미란만큼은 영원한 선수라고 생각했는데 아쉽네”라고 편지를 시작한 김 감독은 “이제 여행 갈 때 역기 가져갈 생각하지 마라. 편하게 할 일이 많이 기다리고 있으니 선수 때와 다른 더욱 빛나고 멋있는 금메달을 목표로 갖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15년간 슬럼프 한 번도 없었던 난 행복한 선수”

“고민이 있을 때 찾아뵈면 ‘사람은 누구나 최악 속에서 최선을 만드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 최선을 다하라’고 격려해주시곤 한다. 그 분의 말씀 자체가 도전이고, 매일 봬도 늘 새롭게 배울 것이 많은 지도자다.”

그는 현재 용인대 박사과정(3학기)을 밟고 있다. 박사논문 주제는 트레이닝 방법론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트레이닝엔 정해진 원칙이 있는 게 아니라 나라별 특성에 맞추어야 하며 선수별로 가장 적합한 훈련법을 찾아내고, 이를 지도자와 교감을 통해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이 가장 최고의 훈련법”이라는 게 그가 체득해온 트레이닝 원칙이다. 2009년 열린 고양세계역도선수권대회에서 4연패를 한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그의 어머니 이현자씨는 30세까지는 선수 생활을 하며 대학원에 진학시키고, 은퇴 후엔 박사과정을 시키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뜻을 펼치게 하다가 33세쯤 결혼시켰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했었다. 지금 장미란의 인생 스케줄은 그의 어머니가 수년 전 꿈꿔오던 것과 별반 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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