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는 분명히 잊힐 것이다”
“개인의 아픔을 공동체의 아픔으로 바꾸는 것이 문학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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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효식 / 여성신문 사진기자 yesphoto@womennews.co.kr
“나는 유서도 못 쓰고 아팠다 미인은 손으로 내 이마와 자신의 이마를 번갈아 짚었다 ‘뭐야 내가 더 뜨거운 것 같아’ 미인은 웃으면서 목련꽃같이 커다란 귀걸이를 걸고 문을 나섰다” (‘꾀병’ 중에서)

박준 시인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문학동네) 시집에 나오는 시 중 하나다. 유서를 남기고 싶을 만큼 아픈 소년이지만, 그는 스스로의 상태를 ‘꾀병’이라고 부른다. “열꽃이 피”는 “꿈의 길섶”에서도 그리워했던 그 아름다운 얼굴들은 비로소 한 편의 시가 된다. 그래서 소년에게 병이란 시적인 것의 시작이다. 시를 읽기 전 아름답게만 보였던 책의 제목이 이제는 섧다. “이번 생의 장례를 먼저 지내는” 아픔이 생명으로서의 숙명임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지난 4일, 한바탕 폭설이 지나간 늦은 오후 홍대 인근의 한 카페에서 박준(30·사진) 시인을 만났다. 데뷔작으로는 드물게 출간 한 달 만에 2쇄를 찍어낸 기록을 세운 그는 “나도 당신처럼 한번 아름다워보자고 시작한 일이 이렇게나 멀리 흘렀다”고 설명한다. 아름다운 사람들에 대한 찬미, 그 사람 하나하나가 인생의 약(藥)이 된다는 믿음이 그득한 시를 써내는 시인답다.

-2008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후 만 4년이란 긴 시간이 걸려 나온 첫 시집입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발간이 2년 정도 미뤄졌죠.  내 글은 ‘분명히 잊힐 것이다’라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됐을 때에야 시집을 낼 수 있었어요. 꼭 남기거나 기록하겠다는 욕망이 작가 자신을 괴롭히고 작품을 망칠 수 있다는 거죠.”

-‘시인’ 하면 배고픈 직업이라는 인식이 아직도 강합니다.

“생업으로 많은 일을 해왔어요. 마트에서 물건을 배달하고, 경매시장에서 과일을 진열하기도 하고요. 등단하고부터는 글을 써서 돈을 벌었죠.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타인의 자서전도 대신 쓰고, 교정교열도 했죠. 글로 돈을 벌 수 있으면 행복하겠다고 생각해 왔지만, 막상 다른 사람의 글을 보다 보면 내 글을 들여다보기 싫어지는 부작용도 있었어요.”

박 시인의 시는 젊은 시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전위나 그로테스크한 이미지 대신 낯설지 않은 서정으로 무장하고 있다. 일간지 사건사고란에 간략히 보도됐을 법한 이야기들이 젊은 시인의 시적상상과 언어적 감수성을 통해 되살아난다. 쉬이 잊힐 뻔했던 숱한 삶들을 애도한다.

-미용실이나 고시원 화재부터 치매요양시설 노인 이야기까지 서사성이 돋보이는 시들이 눈에 띕니다.

“시가 구태여 고고하게 멀리 있을 필요는 없다고 봐요. 짧은 시 안에도 소설만큼이나 풍부한 이야기들을 담을 수 있어요. 종이 줍는 할머니를 며칠씩 따라다니기도 하고, 고시원에서 실제로 살아보기도 하고, 교통사고 ‘나이롱 환자’(가짜 환자)가 많다는 병원에서 며칠씩 잠복도 해보는 등 타인을 관찰하면서 내 안에서 고갈된 소재들을 채워갔어요.”

-시집 곳곳에서 ‘미인’이라는 표현을 볼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사람을 말하는 거예요. 죽은 누이도 그중 하나예요. 시집 안에서 누이는 ‘미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죠. 개인적으로는 거리를 유지할 수 없겠지만, 시에서는 죽음과 아픔조차 객관화하고 싶었어요. 시인의 비애이자 장점이죠. 감정이 몰아치는 것을 조절하게 되면서부터 ‘시를 쓰기 잘했다’는 생각을 처음 했어요. 개인의 아픔을 공동체의 아픔으로 바꾸는 것이 문학의 힘이겠죠. 섣불리 다른 이를 구제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옆에 가서 함께 울어주는 것 말이에요.”

-용산, 4대강, 강정 등 사회 이슈에도 목소리를 내셨죠.

“사실 문학 하는 사람이 운동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지는 않아요. 운동의 주체는 될 수 없지만, 옆에서 쭈뼛쭈뼛 하면서 위로를 주는 정도는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것이 문학의 본질이라면 ‘몸으로 글을 쓴다’고도 볼 수 있겠죠.”

-앞으로의 계획은요.

“저에게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앞으로 무엇을 쓸 것인가 하는 고민과도 같습니다.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생계문제도 불안한데, 이상하게 느긋한 마음이에요. 오히려 저는 일이 잘 풀릴 때 불안감을 느낍니다. 지지부진함에 안도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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