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감수성 찾기 어려운 야권 단일 후보 보며 난감했던 여성주의자들

지난 대선에서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고, 곧 열리게 될 취임식에는 세계 곳곳에서 여성 정치리더들이 참석한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일상을 살고 있는 여성들의 삶이 너무나도 고단하기에, 그리고 혹시라도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여자라서’라는 꼬리표가 달릴 것이 쉽게 예상되기에 개인적으로 지지했느냐의 여부를 떠나 진심으로 박근혜 당선인이 대통령직을 제대로 잘 수행해주길 소망한다.

자유민주주의 선거제도 아래서 ‘대표(representative)’란 언제나 보편과 특수라는 이중적인 위치를 넘나든다. 하지만 특정한 소수의 이해관계가 아닌 시민들의 보편적인 이해관계인 공공성을 지향하는 정치를 펼치는 ‘약속은 꼭 지키는’ 분이길 믿고 싶다.

18대 대선은 “사회적 성역할의 권력관계인 젠더를 보수정치가 도용해 정치적 이해관계가 마치 젠더의 이해관계인 것처럼 포장”됐고, 가족주의에 기반한 가부장적 태도는 선거 국면에서 성별 갈등을 주변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각자의 관점에서 18대 대선 결과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제기됐지만, 박근혜 당선인의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 선거 과정에서 어떻게 작동했고 대선 결과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에 관한 세밀한 분석은 아직 정리되지 못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여성의 눈으로 본 18대 대선 평가와 전망’ 토론회 자리에서도 다양한 논의가 진행됐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남성 중심적 가부장성을 강조한 방식에 대한 비판에는 참석자 대부분의 목소리가 모아졌지만 여성 유권자들의 투표 결과에 대한 분석은 좀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단순 수치로 보면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거나 ‘여성은 여성을 찍지 않는다’는 왜곡된 가설이 잘못된 것임을 입증하려는 듯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박근혜 후보를 더 많이 선택했고, 확실히 이전의 선거에 비해 성별 득표율 격차가 상당했다. 그렇다면 과연 박근혜 당선인의 ‘준비된 여성 대통령’은 선거 결과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까. 여성들의 표심을 결정한 1차적 요인이 과연 성별이었는지, 또 여성의 투표 성향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 기존의 이념이나 세대, 소득, 학력에 관한 전제나 가설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칼 슈미트는 ‘정치’를 적과 아의 구분이라 말한다. 지난 1987년 이후 한국 사회가 규정한 프레임은 ‘민주화’였고 18대 대선은 그 끝자락에 치러진 보수-진보 대결 구도였다. 보수정당 여성 후보가 ‘준비된 여성 대통령’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다른 한편 다수 여성 대선 후보가 출마한 상황에서, 젠더감수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야권 단일 후보를 바라보는 여성운동가와 여성주의자들의 속내는 실로 복잡하고 난감했다.

‘여성’으로 하나 되는 연대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여전한 가운데 “진보-보수의 경계를 유지하면서 가능한 한 가장 포괄적인 공통의 정치적 목적으로 연대하되 각자의 차이에 따른 정체성을 잃지 않는 포용적 연대의 정치학으로 이동”이 구체적인 여성운동의 현장에서 어떻게 실천될 수 있을까. 새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다양한 사회운동과 어떻게 소통과 연대를 통해 공통의 정치적 기획을 제시할 수 있을까. 여성운동의 ‘새롭지만 오래된’ 고민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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