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본래 기능인 ‘축제’ 기능 복원하고
‘교통 혼잡’ 피해 가족별 이동 시기 분산해야

우리나라 최대 명절인 설이 다가온다. 어린 시절엔 설이 다가오면 마음이 설레더니 지금은 온갖 걱정과 스트레스가 앞서는 것은 단지 나이 때문일까. 70년대만 해도 설과 추석은 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른들의 축제였다. 아침에 조상님들께 차례를 지내고 나면 낮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각종 민속놀이나 게임을 하며 즐기고 저녁에는 젊은이들의 재기 어린 연극 공연을 관람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던 기억이 난다.

설과 추석은 조상 숭배하는 날이라기보다는 축제의 날이었다. 축제를 벌이기 전에 치르는 개막식 의례가 차례였던 것이다. 그러나 70년대 이후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명절은 축제의 성격을 잃어가고 조상을 섬기는 날로 바뀌었다. 농촌에서는 젊은이들이 모두 도시로 떠나고 핵가족화가 심화되면서 명절의 풍속이 바뀌게 된 것이다.

축제의 날이 조상 숭배의 날로 바뀌었다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조상 숭배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이를 위해 치러야 하는 고통이 너무도 크다는 사실이 문제다. 매번 명절 때마다 겪는 교통 대란과 가족 간 갈등이 명절 스트레스의 대표적인 사례임은 구태여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명절을 계속 유지할 것인가? 명절의 축제 부분은 생활 여건의 변화에 따라 쉽게 바뀌었지만, 조상 숭배의 부분은 예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쉽게 바꾸지 못하는 것 같다. 명절날 즐겁게 놀지 않는다고 하여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없지만, 조상님께 차례를 안 지내는 것은 손가락질 당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라고 불변하는 것은 아니다. 공자는, 예는 덕을 표현하는 제도이므로 덕은 시대에 따라 변하지 않으나 동일한 덕을 표현하는 예법은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한다고 보았다. 시대가 변하여 전통적인 예법이 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면 대략 500년을 주기로 성인이 나타나서 예법을 바꾸게 된다고 하였다. 지금 우리의 명절은 본래의 기능인 축제의 성격도 잃어버렸고, 조상 숭배의 덕도 제대로 구현을 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에는 공자와 같은 성인이 나타나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지혜로운 사회적 공론을 통해 명절 문화를 바꿔야 한다.

설과 추석 명절이 문제가 된 가장 큰 이유는 전 국민의 동시적 대 이동에 따른 교통의 혼잡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모두가 이동하지 말든가, 이동 시기를 가족별로 연중 분산하는 것이다. 따라서 명절의 내용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이웃 모두가 함께 즐겨야 하는 축제는 이동하지 말고 삶의 현장에서 치르고, 공간 이동이 불가피한 조상 숭배는 각 가족 또는 문중별로 형편에 따라 별도의 조상의 날을 정하여 시행하면 명절의 두 가지 성격을 모두 충실하게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삶에는 축제가 너무 부족하다. 설과 추석의 사라진 전통 축제를 복원하고 새로운 축제 문화를 접목하여 민속 대축제로 명절을 쇤다면 삶을 윤택하게 하는 즐거운 행사가 될 뿐 아니라, 민속예술을 계승 발전시켜 새로운 한류 문화를 창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조상숭배의 날은 이미 일부 가족에서 시행하고 있는 일가 친목의 날과 시제를 접목하는 방식으로 하여 차례도 지내고 흩어진 가족 간의 유대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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