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10년차인 H씨는 1년 이상 다닌 직장이 없다. 상사로부터 지적을 받거나 동료들과 마찰이 생기면 회사를 그만두기 때문이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회사나 다른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회사를 벗어나 다른 회사에 가게 되면 새로운 마음으로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 달리 어디를 가도 비슷한 문제로 그만두고 만다. 이번에도 동료와의 마찰로 직장을 그만두고 싶을 만큼 힘들어져서 상담실을 찾았다. 그녀의 첫마디가 인상적이었다. “안 좋은 기억을 깨끗이 없앨 수 있는 약은 없나요?”

‘리셋 증후군’이라는 용어가 있다. 컴퓨터가 오류가 나면 리셋 버튼을 눌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현실에서도 뜻대로 되지 않게 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는 사회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물질적 풍요와 디지털 시대가 가져온 변화라고 볼 수 있다.

고장이 나면 새로 사거나 일회용으로 쓰고 버리는 시대에서 우리는 점점 아껴 쓰거나 수선해서 쓰는 것을 잊게 됐다. 문제가 나타나면 리셋이나 포맷을 통해 시스템이나 프로그램을 초기 상태로 되돌리는 디지털 작동방식으로 인해 우리는 문제를 개선하고 나아가기보다는 자꾸 문제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서 새롭게 시작하기를 바란다.

인간관계도 예외가 아니다. 인간관계가 삐걱거리거나 상대가 마음에 안 들면 이를 풀기보다는 그냥 단절하고 다른 사람과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는 것이다. 즉 리셋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새로운 곳이나, 새로운 시간이나, 새로운 계획이나 새로운 사람과 다시 시작하면 이전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는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 없는 법인데도 이들은 컴퓨터를 오류 이전의 상태로 복원시키듯 사람도 문제 이전의 상태로 원상 복구시킬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력의 향상과 인간관계의 깊이는 오직 오류 수정과 갈등 해결을 통해서만 가능할 따름이다. 결국 이들의 삶에는 수없이 반복되는 ‘처음’만 있을 뿐, 오류와 갈등을 풀어낸 ‘마무리’는 없게 된다. 

새해가 시작된 지 한 달여가 되어간다. 새해마다 계획을 세우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면 그만두고, 다시 또 한 해가 다가오면 새 마음으로 잘해야겠다고 결심을 하는 것도 전형적인 리셋증후군이다.

1년마다 새해가 온다고 우리는 생각하지만 이 역시 인간의 어리석은 ‘원상 복구 환상’에서 비롯된 것일 뿐,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새해란 없다. 시간은 계속 흘러갈 뿐이다. 그러므로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태도는 ‘처음부터 잘해야지’가 아니라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이를 보완해서 나아가는 것이고, 사람들과 부딪힐 때 그 갈등을 풀어가는 것이다. 인생은 리셋이 안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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