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에서 여성주의의 태동은 프랑스 대혁명을 기점으로 한다. 물론 그 이전에도 힐데가르트 폰 빙엔(Hildegard von Bingen)과 같은 여성주의적 시각을 가진 여성들이 더러 있었으나 노골적으로 여성의 평등한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 대혁명을 전후해서 나타났다. 대혁명의 와중에 올랭프 드 구주(Olympe de Gouges)라는 여성은 ‘여성의 권리’라는 팸플릿을 파리의 길거리에서 배부하다가 나중에 단두대에서  처형되기도 했으며,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는 1792년 1월 3일 ‘여성의 권리에 대한 옹호’라는 역사상 최초의 여성주의 이론서를 출판하기도 했다. 그 이후 여성주의자들의 여성의 권리, 성평등을 향한 노력과 헌신과 희생은 눈물겨운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들이 보여준 헌신적 노력의 달콤한 열매를 맛보는 사람들은 그렇게 목숨을 버리고 희생하고 노력한 여성주의자들이 아니었다. 물론 여성주의자들도 남녀평등이 실현되는 만큼 사회에서 평등한 권리를 보장받기는 했지만 여성주의에 반하는 태도를 지닌 여성들이 여성주의자들 못지않게, 아니 오히려 더 큰 수혜를 입었다. 단적인 예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여성의 권리 신장이 없었다면 여전히 이등시민, 남성들의 수발을 드는 보조적 존재로 살았어야 할 터임에도 여성주의자들의 노력에 의해 닦인 여성들의 사회진출 가능성으로 인해 영국이라는, 한때 해가 지지 않는다는 나라의 총리가 된 것이다. 대처 전 총리뿐만 아니라 여성주의에 관심이 없거나 반여성주의적 여성이 사회적으로 출세하고 권력을 잡는 예는 수도 없이 많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여성주의에 관심이 없다거나 심지어 여성주의를 반대한다는 여성도 종종 눈에 띈다. 마치 여성이 여성주의를 반대하는 것은 쿨한 모습이라고 착각하는 듯한 태도를 목격한다. 바로 그 여성주의 덕분에 불과 50여 년 전과는 비교가 안 되는 권리를 누리고 살면서 말이다.

박근혜 18대 대통령 당선인 역시 과거 여성주의자들의 목숨을 건 노력 덕분에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만약 대통령 선거가 30년 전에 치러졌다면 박근혜 후보가 당선될 수 있었을까. 아니 대통령 후보가 될 수나 있었을까 자문해본다면 그 답은 명백하다. 지난 30여 년 사이 여성주의적 변화 덕분에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었고 당선도 되었지만 그러나 지금까지 박근혜 당선인의 정치활동에서 여성들을 위한 특별한 정책을 제안하거나 입법활동을 한 경우가 눈에 띄지 않는다. 이 땅의 진보적 가치를 발전시키기 위해 진보적 여성들이 많은 희생을 감수했지만 정작 그 수혜는 가장 보수적인 여성 중 한 사람인 박근혜 당선인이 가져갔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다분한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박근혜 차기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 그녀가 얼마나 성평등을 위한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하여 5년 후 우리나라 여성들의 위상과 삶의 질이 얼마나 달라지느냐의 여부가 그녀가 여성주의의 열매만 따먹고 오히려 여성들을 배반한, 무늬만 여성 지도자가 되느냐 아니면 명실상부한 여성 지도자로서 역사에 남느냐를 판가름할 것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여성들이 표를 준 것으로 안다. 이들 여성을 실망시키지 않는 대통령이 되기를 진심으로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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