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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울리는 전화 벨소리에 오전부터 분주한 '서울여성의전화

' 사무실. 그 가운데 이문자 회장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오랜

상담 경험을 말해 주는 듯 넉넉한 인상이다.

'서울여성의전화' 회장 취임 1년째를 맞고 있는 이문자 회장(56).

그는 여느 단체장과는 달리 자원봉사 상담원으로 시작, 단체의 장을

맡게 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97년 '한국여성의전화'가 '한국여성의전화연합'으로 새롭게 조

직이 개편되고, 그 이듬해 마침 '서울여성의전화' 초대 이상덕 회

장이 여성특위 조정관으로 가게 되면서 갑작스럽게 회장을 맡게 됐

어요. 회장 자격이 안 되는데 오랫동안 상담일을 해오고, 나이가 많

다는 이유로 된 거죠.”

겸손하게 말하지만, 이문자 회장은 10년 넘은 상담경력과 실무능력

을 갖춘 인물이다. 91년부터 '서울여성의전화' 부설 매맞는 여성들

을 위한 쉼터 관장을 맡아 여성들과 숙식을 같이 하며 동고동락했

다.

‘여성의전화’와 인연

“'여성의전화'에서 일하는 후배가 있어서 우연히 알게 됐어요. 88

년도 11기 상담원교육을 받고 시작한 상담 자원봉사가 '여성의전화

'와의 인연이 된 셈이죠. 2년간 상담원 자원봉사를 하고 난 후 상근

자로 본격적으로 실무를 담당했어요. 뭐 여성운동을 하겠다라는 차

원보다는 그때 제가 혼자였고, 시간이 많았고, 제 에너지를 투자할

곳이 거기밖에 없었으니까 자연스런 일이었죠.”

모든 여성들이 자신의 문제로부터 출발하듯이, 그 역시 자신이 겪

은 이혼경험에서 여성들의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는 83년 이

혼으로 두 아들과도 떨어져 혼자 살고 있다.

66년 이화여자대학교 도서관학과를 졸업한 후 그는 TBC(동양방송)

음악부에서 근무를 하다 서른이 넘어 늦은 결혼을 했다. 당시 홀어

머니에 외아들이라는 조건 때문에 주위에서 다들 말리는 결혼이었지

만, ‘나만 잘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흔히들 말하는 고부간의 갈등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단순히 시

어머니와 며느리라는 두 여자의 갈등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것들이

죠. 그래서‘고부갈등’이라는 말보다는 ‘시집갈등’이라는 말을

쓰고 있어요. 그땐 내가 ‘시어머니를 잘못 만났구나, 왜 나만 이렇

게 힘들까’하고 생각했지 그런 것들을 여성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

어요. 저희 시어머니의 경우 일찍부터 혼자서 아들을 키우면서 강하

게 살아왔기 때문에, 돈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이었어요.

전 그와는 정반대였죠. 돈에 대해 잘 모르고, 말하자면 무능한 사람

이었죠. 그래서 적응도 어려웠고 충돌이 많았지만, 남편의 개입은 전

혀 없었지요. 시집이라는 것이 남편이라는 한 남성에 의해 관계맺게

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남자들은 거기서 한발짝 물러나 있는 게

문제예요. 남편이 없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은 있을 수 없거든

요. 그래서 ‘고부갈등’이 아니라 ‘시집갈등’이라는 말이 옳은

말이죠.”

7년의 결혼생활을 정리하고 혼자된 지 17년째를 맞고 있다. 이젠 마

음의 안정도 찾았고, 시어머니도 돌아가셨다. 하지만 그간의 세월은

이미 장성한 두 아들과도 깊은 골을 만들어 놓았다. 오랜 동안 왕래

도 할 수 없었고, 엄마와의 거리는 멀어질 대로 멀어진 상태. ‘세월

이 약’이라는 말처럼 그는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두려고

한다.

현재 그는 이혼한 여성들과 이혼적응그룹을 함께 하고 있다.

“많은 여성에게 이혼이라는 건 아직도 두려운 일이에요. 혼자 살

수 있는 자신이 있어야지 가능한 거죠. 젊은 사람들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어떻게든 살려고 노력하는 경우가 많지만, 나이든 사람의 경

우는 정말 어렵거든요. 그래도 황혼이혼이라는 것을 하려는 분들은

정말 힘든 결심을 한 거라고 할 수 있죠.”

“이혼문제로 저도 가정법률상담소를 찾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여

성의전화'에서 매맞는 여성들에 대한 상담일을 하자고 마음먹은 거

예요. 교육을 받으면서 내 문제가 나만의 개인적인 문제라기보다 바

로 여성문제라는 걸 알았고, 그때부터 적극적으로 여성들과 상담을

했어요. 전문적인 상담기법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과 같이

분노하고 같이 억울해 하면서 내담자와 함께 방법을 찾는 식의 상담

을 하려고 노력했지요.”

내담자와 동고동락 10년

처음 그가 상담을 시작할 때 많은 한계를 느꼈단다.

“상담해 오는 여성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방법이 안 보였기 때문이

에요. 남편에게 매맞는 여성들의 고통을 들어주고 위로해 주는 차원

에서 상담을 한다면 가정폭력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는 걸 알았죠. 그래서 개인의 차원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전체 사회

의 변화로까지 이어져야 한다, 바로 ‘그것이 운동이구나’라고 깨

닫게 됐죠.

가령 가정폭력만 해도 그것이 가정내 문제가 아니라 범죄행위라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없이는 해결될 수 없다라는 것, 그렇기 때문

에 법적으로 개입해 처벌할 수 있는 법 제정을 주장하는 것이 필요

하다는 거죠. 남편 외도 문제의 경우도, 여성에게 외모에 신경써라,

밤에 야한 잠옷을 입어라라고 할 것이 아니라 전체 사회의 성문화를

문제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로 근본적인 문제해결 방법이고,

그것이 여성운동이라는 거죠.”

이제 그는 운동 없이는 몇 천 건씩 들어오는 내담자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는 데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됐다. 97년 다른 여성단

체들과 결속해 가정폭력방지법을 이끌어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

다.

“'여성의전화' 창립 15년 만에 가정폭력법이 제정됐지만, 법이 제

대로 시행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어요. 검찰, 경찰의 인식이 따라주

지 않기 때문이죠. 법이 있으니까 나를 도와줄 거라고 믿는 많은 여

성들이 기대에 못 미치는 현실로 인해 오히려 원망을 할 때가 많아

요.”

법적 처리 문제뿐만 아니라 피해여성들과 함께 피해를 당하는 아동

문제, 여성들의 자립문제 등도 남은 문제다. 이렇게 가정폭력만 해도

할 일 이 많지만, '서울여성의전화'에선 성폭력과 여성인권에 대한

활동들을 하고 있다. 7명 상근자로 그 많은 일을 하다 보니 힘에 부

칠 때가 많다고.

10여년간 수많은 상담을 하면서 가슴아픈 사연들도 많았을 터. 그

런데 최근 남편의 폭력을 피해 아파트 탈출을 시도하다 추락사를 당

한 임명지 씨 사건이 그에겐 특히 안타깝다.

“만성적으로 구타당하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렇지만, 그의 경우도

30년이상 폭력으로 인해 ‘학습된 무기력증’에 빠져있었어요. 그야

말로 폭력에 길들여져 가해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거죠. 처음

우리한테 찾아왔을 때도 너무 형편없이 폭력을 당해서 왔어요. 쉼터

에서 하루 만에 돌아가겠다는 걸 1주일 동안 쉬게 했는데 본인의 의

사에 따라 결국 보낼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돌아간 지 15일 만에

폭력의 공포 속에서 죽음을 맞은 거예요. 좀더 우리가 설득해서 무

기력증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교육하고, 도와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지금도 너무 가슴이 아파요.”

현재 쉼터의 정원은 15명이다. 그곳에서 최고 4-5개월까지 숙식하

는 여성들도 있다. 그림 치료, 상담, 의료지원, 법률자문 등으로 돕고

있지만, 대부분 여성들이 집을 나오고 다시 들어가는 행위를 반복하

는 처지. 쉼터에 온 여성들이 더 이상 발전적인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적 여건 때문이라고.

새로 시작한 공부

그는 상담할 때 그저 편안하게 품기보단 야단칠 때는 야단치는 냉

정한 조언자다.

“원래 말이 없고, 무난한 성격이라 남의 말을 듣는 걸 좋아했어요.

6남매 중 중간에 낀 넷째딸이라 한마디로 특징이 없는 아이였죠. 아

주 내성적인 성격이었는데 그래도 '여성의 전화'에서 일하면서 많

이 바뀐 편이에요.”

그는 자신이 변한 것처럼 다른 여성들도 '여성의전화'에서의 자원

봉사 경험이 많은 변화를 가져올 거라고 말한다.

“남편, 아이들만 바라보고 살다가 중년에 ‘빈둥지증후군’에 시달

리는 여성들이 많아요. 여성의 삶을 너무 좁게만 보고, 그것이 행복

이라고 생각했다가 내가 지금까지 뭐였나 싶은 생각들에 허무해 지

죠. ‘나’를 찾는 삶, ‘나’를 존중하는 삶을 살아야죠. 한 가지라

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게 중요해요. 특히 고학력 중

산층 여성의 경우, 경제적으로 안정됐잖아요. 남을 생각하는 데 조금

만 시선을 돌리면 그런 빈둥지증후군을 느끼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남을 돕는 일 중에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을 돕는 일에 신경을 써준

다면 좋은 거죠.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고요.”

현재 29기 상담교육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교육생은 1천여명이 넘

지만 현재 '여성의전화' 상담원으로 일하는 사람은 70명 정도. 순

수한 무보수 자원봉사기 때문에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고, 타

기관에서 가정폭력 상담교육을 받으러 오는 경우도 많다고.

주부의 경우, 갑자기 집안일로 상담일정에 차질을 빚는 수가 많다.

상담이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때문에 항상 상담원의 기근 속에 있다

고. 이전까지는 상담이 밤 9시까지로 한정돼 직장여성들의 참여가

어려웠지만, 이젠 24시간 1366 여성 위기전화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

에 직장여성들을 대상으로 야간상담교육도 실시중이다.

전국 총 19개 지부를 총괄하는 '한국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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