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에게는 아이가 딸 하나밖에 없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중에 태어난 아이가 그곳에서 초등학교에 들어간 직후였다. 어느 날 아이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리 아이가 몹시 걱정스러워서 전화를 했다고 했다. 아내가 받았는데 선생님 말씀의 요지는 우리 아이가 사내아이와 여자아이를 구분 못 한다는 것이었다. 사내아이에게 ‘she’를 쓰는가 하면 여자아이에게 ‘he’를 쓰기도 한다는 것.
우리는 깜짝 놀라서 아이를 불렀다. 그러고는 he와 she가 어떻게 다른지 물었다. 집에서는 영어를 안 쓰고 한국말만 사용해서 전혀 몰랐는데 정말 he와 she의 차이를 답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또래 남자아이 이름을 대면서 걔가 he이고 여자아이 이름을 대면서 걔가 she라고 설명을 해줬다.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다시 엄마가 she이고 아빠가 he라고 설명하고서 알겠느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에게 he와 she에 대해 설명해보라고 했다. 아이가 답하길, he는 긴 꼬리가 있고 she는 꼬리가 짧은 사람이라고 한다. 우리 부부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 부부는 아이 앞에서 전혀 성별 구분이 안 되게 행동을 해왔다. 가사노동에 있어서도 성별분업이란 건 전혀 없었다. 우리의 가사노동의 원칙은 힘센 남자가 최소한 3분의 2 이상 하는 거였고 실제로 내가 70~80%의 가사노동을 소화하고 있었다.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서로 합의하에 모든 결정을 했고 남편이라고 권위를 내세우거나 아내라고 집안일에 관한 결정의 우월권을 주장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아이의 눈에 남자인 아빠와 여자인 엄마가 서로 다른 어떤 종류(?)의 인간이라는 느낌을 전혀 못 받아서 남자·여자 개념을 가지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던 아이가 학교에 다니면서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먼 파워가 강한 미국에서도 교육 현장에선 여전히 성 역할 고정관념이 강하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의사는 남자, 여자는 간호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부터 시작해서 레드 파워레인저를 좋아하는 우리 아이에게 “너는 핑크 레인저를 좋아해야 해”라고 강요하는 데까지 이르러 사회적 성별 선입견을 심어주는 데 크게 일조를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남녀평등이 엄청나게 진전되었다는 우리 사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회적 성별 구분은 별로 나아진 것 같지 않다. 여전히 여자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예뻐야 하고, 여성스러워야 하고, 남자에게 인생이 달려 있다는 교육을 끊임없이 받는다. 남자아이들은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남자의 가치관을 강요받고 있다. 그 단적인 예가 엄청나게 호황을 누리고 있는 성형외과들이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여성들만큼 성형에 관심을 가지는 여성들이 아마도 드물 것이다. 그로 인해 거리에는 표정 없는 미녀들이 넘쳐나고 ‘자연산’ 미녀라는 거의 엽기적인 신조어까지 생겨나지 않았는가!
물론 남성은 남성성이 제대로 갖춰져야 하고 여성은 여성성을 풍부하게 갖고 있을 때 서로가 행복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그 남성성이 마초성은 아니고 여성성은 성형 미인이 아님은 누구나 잘 알 것이다. 남성과 여성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대접하는 풍토가 조성된다면 토플 강좌 듣는 돈으로 성형수술을 받는 것이 더 빠른 출셋길이라는 블랙코미디 같은 말이 돌진 않을 것이다. 남성성과 여성성이 잘 조화된 개인과 사회에 대한 꿈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