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소식 전하는 계간지 ‘임진강’ 발행
생사를 함께했던 두 살배기 아들, 고교생 돼 생물학자 꿈꿔
“정치전략에 말려들지 말아야…엄마 맘으로 북한 품어야 남한도 큰다”

 

기자가 조선작가동맹 시인으로 활동하다 탈북한 최진이(53·사진)씨를 처음 만났을 때 최씨는 자유를 찾아 굶주림과 성폭력까지 불사해야 했던 자신의 처절한 북한 탈출기 ‘국경을 세 번 건넌 여자’를 펴낸 직후였고, 이화여대 여성학과에 재학 중이었다. 그 후 7년, 그 세월 동안 그는 북한의 대표적 페미니스트 여성 시인 렴형미 연구로 여성학과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탈북자 출신의 남자와 결혼해 새 가정을 꾸리면서 2007년 “북녘 내부인들이 만드는” 계간지 ‘임진강’을 창간, 남한 사회에 연착륙했다. 탈북하기 전 지독한 결혼생활 끝에 남편과는 헤어졌지만 당시 두 살배기 아들이 마음에 못내 걸려 세 번이나 두만강을 건너고 일곱 겹 철조망을 뚫고 남쪽으로 전진했던 그. 그 애달프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존 북한 출신들이 만들던 매체와는 다른 방식으로, 다른 목소리를 고수하려 고군분투하고 있다. 19일, 잡지 창간 5주년을 기념해 독자와의 모임 준비에 분주한 그를 ‘임진강’ 편집실에서 만났다. 

책상 서너 개만으로도 꽉 차는 자그마한 사무실에서 마주한 그는 “통일이 급한 건 아니다”라며 운을 뗐다. 1998년 탈북, 이듬해 남한에 정착하며 두 개의 세계를 경험 중인 그는 “북한 사회가 정상 사회로 회복되고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업그레이드 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는 북한에 부는 변화의 바람을 전하면서 “그 한가운데 있는 이들이 바로 남성보다 일찍 시장경제에 눈떠 경제적 자립을 성취해가고 있는 북한 여성들”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들을 남북전쟁 후 폐허가 된 타라(농장)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결코 잃지 않은 스칼렛 오하라(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에 비유하기도 했다.

북한은 67년 이후 ‘자폐’상태

‘꽃제비'란 말 사전에 없어

-‘임진강’은 다른 탈북자들이 만드는 매체와 어떻게 다른가.

“1967년 유일사상체계를 확립한 이후 45년간 북한 사회의 모든 정신적 성장은 멈췄다. 북한 사회에서 오로지 허락된 것은 김일성 사상뿐 외국 등 북한 사회 밖의 모든 지식은 다 삭제돼버렸다. 70년대 김정일 후계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생활총화’를 들고 나오면서 문화예술에 종사하는 이들조차 이틀에 한 번은 자아비판을 해야 했다. 사람들의 심성이 물어뜯고 공격하고 방어하면서 늘 왜곡돼 있어 ‘사람잡이 문화’밖에 없다. 사회해체 상황에서 남북 간 소통매체의 역할을 하려면 정보만 주는 게 아니라 그 정보가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전체 맥락 속에서 말해야 정보의 왜곡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에 반해 대부분 북한 출신들이 만드는 매체에선 자극적이고 인기 끌기 식의 상업적 전략이 엿보인다. 북한 사회가 오랫동안 지식 공백 상태란 점을 인지 못 하고, 냉전시대 사고방식만 가지고 활동하는 것은 위험하다. 최근 토의하며 만드는 ‘시민북한백과’를 내걸고 ‘엔케이페디아’(www.nkpedia.org)를 만든 것도 그래서다.”

-독립 매체를 고수하는 것이 대단하다.

“2006년 여성학과를 졸업하면서부터 잡지 내는 일을 계속 생각해왔다. 당시 1958년부터 10여 년간 태어난 북한의 베이비부머 세대가 부딪치는 결혼, 주택 등의 문제를 중앙 매체들에 기고했는데 어느 것 하나 기사화되지 못했다. 남한 사회에서도 각각의 이해관계에 따라 북한을 보고 싶어 한다고 느꼈다. 우리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그래서 남과 북의 진정한 쌍방향 소통을 이끌어내는 그런 매체를 창간할 마음을 먹게 됐다. 17호까지 내면서 매호 마감할 때마다 잡지가 돼 나오는 게 기적처럼 느껴진다. 한국과 미국의 몇몇 단체로부터 조금씩 지원받고는 있는데, 인건비 문제에 취재부터 마감까지 총괄하다 보니 한 호 내고 나면 암 걸리기 직전 상태까지 간다. 백혈구 수치도 높아지고 황달도 오고.”

-“북 주민이 쓰고 읽고 배우는 잡지”가 슬로건이다.

“중동의 재스민혁명 영향으로 계몽주의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장 자크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등 세계적 사상들을 북한 언어로 번역해 전하는데 의외로 흡수력이 좋다. 북한 실상 취재는 중국과 북한의 접경 지역에서 만나는 북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북한에선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어 남한에서도 국가기관의 보호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북한문제를 너무 안전문제로 보려 하니 부정부패가 생기고 왜곡되는 것 아닌가. 취재하다 생명을 잃어도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임진강’을 통해 북한 실상을 문자화했다는 데 큰 가치를 두고 있다. 해외 공관들에 잡지를 발송하는데, 그렇게 되면 필히 상부가 보고 소각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를 통해 정책 결정권자가 잡지를 접하는 환경이 자연스레 만들어진다.”

500여 부 발행되는 잡지는 주로 해외 주재 북한 대사관과 공관에 공식 발송되고, 북한 내부엔 제3국을 통해 전달된다고 한다. 남한에서는 정기구독 외엔 교보문고에서 판매되고 있다. 

“북한, 로열패밀리만 빼고 빨치산 세력까지 ‘개방’ 갈구”

-잡지를 읽다 보면 남북한 언어 차이가 실감된다.

“북한은 이중 언어의 사회고, 공식 언어는 죽어 있는 사회다. 김일성이 문풍을 확립하겠다며 이를 평양말로 지칭해 방언도 다 없애버린 상태다. 가령 라일락을 ‘수수꽃다리’로 지칭했는데, 이처럼 단어 하나도 스스로를 신이라 생각하는 김일성이 다 간섭해 만들었으니 얼마나 비전문적인가. ‘꽃제비'란 말도 비공식 언어로 간주돼 사전에도 못 올라가 있다. 페미니즘, 휴머니즘, 커뮤니케이션 등 세계에서 빈번히 사용되는 말도 물론 안 쓴다. 그에 비해 민중이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는 민중언어는 얼마나 풍부하고 아름다운지. 일례로 ‘돈사’란 말은 예전엔 돼지우리를 가리켰는데 요즘은 ‘돈으로 농사짓는 것’을 뜻한다. 북한 민중의 살아있는 언어를 발굴하고 알리는 것도 임진강의 주요 역할이다.”

-북한에도 변화의 바람이 부는가.

“김정일 사망 이후 독재로부터 해방됐다는 흥분감이 느껴진다. 김정일 생존 때 북한 주민들이 ‘빨리 통일되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는데, 속뜻은 ‘전쟁이나 콱 일어나 저 정권 무너져라’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정부에서 한동안 ‘통일’이란 말을 못 쓰게 하기도 했다. 지금은 김일성 일가를 중심으로 한 로열패밀리와 빨치산 세력이 약화된 반면 주민들은 시장경제를 통해 돈을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최룡해가 인민군 총정치국장으로 부각되면서 군인들에게 도적질하지 말라는 각서도 받아내고, 연좌제도 폐지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이득을 보아온 로열패밀리만 빼고는 빨치산 세력까지 개방을 서두르는 느낌이다.”

-북한 여성들의 생활력을 높이 사고 있다.

“식량난으로 북한 여성들은 일찍부터 시장에 나가 경제적 기반을 쌓아왔다. 그런데 재능과 기질에 상관없이 다들 장사하다 보니 생활이 안정돼도 기쁘지 않고 ‘돈 벌어 뭐하지’ 하는 생각들을 한다. 자신에 대해 알고 싶은 욕구가 커지다보니 점집에 가는 일까지 자주 생긴다. 제도적으로 학교와 직장에서 여성은 동등한 대우를 받지만 여성의 인권, 권리, 의무 등에 대한 다양한 교육에선 방치돼 있다. 여력만 된다면 북한 여성을 위한 잡지도 따로 발행하고 싶다.”

‘임진강’ 7호에선 ‘3·8부녀절’ 특집을 내면서 시장경제를 주도해가는 북한 여성들을 다루었다. 고위 간부층의 전용 얼음과자였던 ‘에스키모’를 전국에 전파시킨 것도 “녀성들의 장마당 파워”였다며 이윤을 위해 궁리하고 상품을 만들고 조달하고 판매하면서 여성들이 “권력자의 지시 명령으론 도저히 불가능한 기적을 조선에서 일으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탈북 후 ‘위대성 질병’ 고치고 ‘나’를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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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온 지 13년, 가장 선명하게 체감한 것은 무엇인가.

“스스로 자신 삶의 문제를 알아야 사회도 바꿔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 사람들에겐 소위 ‘위대성 질병’이 있다. 김일성·김정일 위대사상에 하도 세뇌되다 보니 욕하면서도 닮아갔다고나 할까. 스스로가 다 수령이고 위대하니 나는 움직이지 않고 외부에서 다 자신을 찾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ls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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