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범죄예방디자인프로젝트(CPTED) 실시 한 달
여성 주민들 만족도 높은 편, 블로거들 인증샷 찍으러 와
CCTV 관제소 12월 초 공사 시작, 재개발 지역 투자 한계
11월 25일부터 12월 10일까지는 ‘세계여성폭력 추방주간’이다. 1961년 도미니카공화국의 세 자매가 독재에 항거하다 숨진 것을 기념하기 위해 1981년부터 11월 25일을 ‘세계여성폭력 추방의 날’로 기념하기 시작했고, 세계인권선언일인 12월 10일까지를 ‘세계여성폭력 추방주간’으로 정해 전 세계에서 여성폭력 추방을 위한 행사를 진행한다. 한국에서는 1991년부터 여성단체들이 기념행사를 시작했고, 정부 차원에서는 지난해부터 이 기간을 ‘성폭력 추방주간’으로 지정해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세계여성폭력 추방주간’을 맞아 여성 안전을 위한 서울시의 ‘범죄 예방 디자인 프로젝트’ 시범지역인 마포구 염리동을 직접 탐방하고 주민들의 안전 체감도를 들어봤다. 이와 함께 각 여성단체와 지자체의 행사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1호 지킴이집의 여성 세입자는 한 달 전 ‘소금길’이 만들어진 후 집 앞 환경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소금길 쉼터’로 지정된 이곳은 불량한 아이들이 밤 늦게까지 모여들던 우범지대였다. 너무 시끄러워 공터에 있던 벤치도 민원을 넣어 없앴다. 벤치를 없앤 후에는 공터 앞 집 대문 문턱에 앉아 아이들이 담배를 피우곤 했었는데 집 주인이 비키라는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했다고 한다. 한 달 전 소금길 조성과 함께 지킴이집으로 선정되면서 대문을 노란색으로 색칠하고 ‘지킴이 집’이라는 표지판과 함께 폐쇄회로TV(CCTV)를 설치하고 나자 시끄럽게 굴던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이 동네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22세 김세나씨는 “골목이 밝아지고 아기자기해져서 안심이 된다”고 이야기했다. “이전에는 무섭고 음침하고 냄새나는 골목이었는데 가로등이랑 담장에 색칠을 해서 웃으면서 지나다닐 수 있게 됐어요. 그리고 블로거들이 소금길에 일부러 찾아와서 인증샷 찍는 걸 보면서 숫자 달린 전봇대가 위급 시 자기 위치를 알리는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런 기능도 하는구나 생각했어요.”
30년 염리동 주민인 미용실 원장(53) A씨는 “원주민은 많이 떠나고 외지인들이 몰려다녀서 무서웠는데 CCTV가 달려 있으니까 치안이 좋아졌다”며 소금길 조성을 반가워했다.
지난달 서울시는 마포구 염리동을 ‘범죄 예방 디자인 프로젝트’ 시범 사업지로 선정해 범죄에 취약한 이 지역 골목 1.7㎞를 주민들이 운동과 모임을 할 수 있는 ‘소금길’로 재정비했다. ‘범죄 예방 디자인(CPTED·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은 디자인과 환경 정비를 통해 범죄율을 낮추고 주민들의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감소시키는 방법으로, 염리동처럼 기존 시가지에 적용한 사례는 처음이다.
프로젝트 실시 한 달, 염리동 주민들이 체감하는 안전도는 어떨까? 소금길을 따라 직접 걸으며 주민들을 만나보았다. 기자가 만난 주민들 대부분이 ‘불안감이 덜해졌다’ ‘안심된다’ ‘든든하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바닥 놀이터를 지나니 드디어 노란색 대문이 나타난다. 소금길 ‘지킴이집’이다. ‘지킴이집’이라고 쓰인 노란색 상자가 대문 높이 달려 있고 그 아래에는 빨간색 비상벨이 달려 있다. ‘CCTV 촬영중’이라는 표지판은 붙어 있었지만 카메라는 아직 설치되지 않았다. CCTV 관제실 역할을 할 ‘소금나루’가 12월 초나 중순부터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라 그 이후에나 CCTV는 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소금나루’는 24시간 초소 역할과 주민공동체의 거점 공간으로 카페, 마을문고, 택배수령서비스, 비상약 구비 등의 기능을 할 예정으로 주민공동체가 자체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서울시 프로젝트 담당자는 “이 프로젝트는 아직 진행 중이며, 내년 1월까지 설치를 완료할 것”이라고 말했다.
6호 지킴이집 주인인 김영자(70)씨는 소금길 조성 이후 안심이 된다고 말한다. “이전에는 이 길이 아가씨들이 다니기 좀 무서웠는데, 지금은 안심이 돼요. 문을 열어놓고 살 수는 없지만, 벨이 울리면 워낙 소리가 크니까 우리도 나와 볼 수 있지요.”
55번과 59번 사이에는 ‘사색의 길’이란 이름의 골목이 나온다. 한 사람이 지나갈 정도의 좁은 골목길은 높은 담장 사이에 있어 해가 지기 전에도 매우 어두워 음침했다. 골목 입구에 55번 전봇대가 불을 밝히고 있었지만 별다른 도움이 되질 못했다. 해가 지고 난 뒤 다시 찾은 ‘사색의 길’은 공포영화에 나올 정도로 음산했다.
이 동네에서 40여 년을 살며 문구점을 운영하고 있는 주민 B씨도 “취지는 좋지만 재개발 때문에 사람들 마음이 많이 떠나 있다”며 “곧 떠날 동네에 뭣하러 이런 걸 만드나 하는 반응도 있다”고 전했다.
강은영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범죄예방디자인이 범죄와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감소시키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한계점도 명확하다고 지적한다. 범죄예방디자인은 범죄자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할 것이라는 가정에 기초하는데, 사이코패스 등 범죄자 중 일부가 합리적 선택을 하지 않는 경우 이 디자인은 무력해진다는 것이다. 또한 가정폭력이나 가정 내 혹은 옥내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등에 대해서도 범죄 예방 효과가 크지 않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