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슭의 생(生) (1)
성옥은 비행기에 오른 이후 외톨이 같았다. Y가 두 개의 가방을 짐칸에 얹는 동안 성옥은 오직 혼자라는 듯 창가 자리에 앉자마자 안전벨트를 맸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직각의 등받이에 댄 허리를 곧고, 두 손은 아랫배쯤에 붙인 채였다. 옆자리에 앉으며 Y가 부러 눈썹이 닿을 정도로 이마를 붙였지만 성옥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너랑은 이제 끝이야, 흡사 이런 상상을 해도 좋다는 태도 같았다. 비행기가 안정적으로 비행을 하게 되고 이곳저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곧 간단한 음료와 빵 한 개로 나온 기내식에도 손을 대지 않았다. 고단하겠지. Y는 말을 걸지 않고 이런 생각을 했다. 더군다나 이른 아침 집을 나서, 공항 출국장에서 만난 두 사람은 햄버거와 커피로 간단한 요기를 하긴 했었다.
1시간 45분은 금방 지나갔다. 비행기가 곧 착륙한다고 승무원이 말했다. Y는 성옥을 바라보았다. 그때 비로소 성옥이 눈을 떴다. 순간 Y는 너무도 강렬한 망연함에 놀랐다. 성옥의 눈 속에서 비춰 보이던 삭막함, 서늘함, 혹은 그와 흡사한 느낌들 때문이었다. 내가… 가혹했나? 순간 Y는 자신의 친절이 실수가 아니었을까, 생각됐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Y는 올해 안에 써야 할 휴가가 있었다. 여름휴가철을 그는 설계도면에 빠져 살았었다. 휴가라면 최소 일주일은 쓸 수 있었다.
두 사람은 Y의 어머니를 만난 이후 결혼이니 어머니니 하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래도 더 싫어지거나 더 좋아진 것도 아니었다. 일하는 틈틈이 연락이 닿고 맘이 끌리면 성옥은 Y의 집에 와서 주말을 묵곤 했다.
지난달이었다.
“외국 여행 갈 수 있지?”
저녁을 먹다 말고 Y가 문득 물었다. 순간 성옥의 얼굴이 어둡게 일그러졌다. 실망을 넘어 절망한 표정을 보며 Y는 두 손을 마주쳤다.
“아, 미안해! 내가 정신이 없어. 요즘 한국에는 30대에도 치매가 온단다. 내가 그래!”
Y는 성옥의 두 손을 잡으며 절절하게 사과했다. 그러나 한 번 베어진 맘은 잘 여며지지 않았다.
“괜찮아요. 다 그래요. 어떤 사람은 주민등록증을 보여달라고 해요.”
성옥은 너무 까칠해서 불량스레 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성옥은 Y가 자신을 이방인, 혹은 외국인, 북한 사람으로 여기리라곤 상상도 못했었다.
“미안해. 모지항을 까맣게 잊었었네!”
Y는 수저를 놓은 채 어쩔 줄 몰라 했다.
“괜찮아요. 사실이니까요. 습관이 되었어요.”
성옥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나를 좀 때려줘라.”
Y가 자신의 뺨을 후려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성옥은 고개를 들고 안쓰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정말 미안해요?”
성옥이가 물었다. Y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성옥이가 웃었다.
“그럼 됐어요. 그걸로 끝이에요. 이해해요.”
성옥이가 말했다. Y는 곧 기분이 풀어져서 말했다.
“캄보디아 가볼까? 하노이도 좋은데. 개방되기 직전에 가본 친구가 그러는데 평양 같았다던데.”
“평양요? 평양은 아름다운 도시예요!”
성옥이가 펄쩍 뛰고 이내 후회하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평양에 가 본 적이 없었다. 영화와 화보와 뉴스에서 본 것이 전부였다. Y는 아무렇지 않았다.
“압록강에 가보자! 어때?”
그가 중요한 것을 발견한 사람처럼 흥분해서 소리쳤다. 성옥이가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압 록 강이오?”
읊조리듯 단음절로 뱉었다.
“그립지?”
Y가 나직이 물었다. 성옥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이 흐른 뒤에 성옥은 좋다, 가자, 이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돌아가서 전공교수에게 부탁해 수업시간을 조절했다.
여행은 이랬고, 방금 비행기는 둔하고 격렬하게 바퀴를 땅에 박았다. 그리고 동체는 요란하게 몸을 떨며 달리기 시작했다.
“심양이다!”
성옥이가 낮게 소리쳤다. Y가 눈을 반짝 뜨고 성옥을 바라보았다. 성옥은 입을 뗀 적이 없다는 듯 짐짓 꼭 다물고 있었다.
“뭐라고?”
Y가 물었다. 지금껏 침묵하던 것보단 그래도 맘이 놓였다
“아, 금방이네요.”
성옥이가 그의 눈길을 피한 채 낮은 소리로 말했다. 말끝이 나락으로 떨어지듯 작아졌는데 마치 눈물 속으로 곤두박이는 것 같았다. Y의 마음도 함께 따라서 곤두박였고 그 순간 그는 불현듯 깨달았다. 아직은… 편안하지 않다는 걸.
아이 셋을 낳도록 기다렸다가 날개옷을 주었어야 했던 나무꾼처럼 그도 그랬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기다리고 기다렸다가 성옥이가 참을 수 없어서 ‘압록강이 그대로일까?’ 독백하거나 ‘한번 가보고 싶어요’ 할 때가 올지 몰랐다.
Y는 앞서가는 성옥의 뒤를 따라가며 이런 생각을 했다. 미안하고 미안했다. 혹시 성옥에게 늘 이러지 않았던가?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러느라 성옥이 택시 정류장 쪽을 가로질러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뒤에 줄서는 것도 알지 못했다.
“택시 안 타고?”
그가 황망히 물었다. 돈은 넉넉히 가져왔는데. 이 말은 목에 걸려 있었다. 성옥이가 뒤를 돌아보며 생긋 웃더니 버스가 더 빠르다고 먼저 말했기 때문이다.
버스는 만석에 통로까지 빼곡이 사람을 싣고야 움직였다. 중국말은 바닥에서부터 천장까지 차오르거나 물결 같은 이랑을 이루며 이어졌다. 처음엔 모두 다투는 줄 알았다.
“호떡집에 불난 거 같단 말이 맞지?”
Y가 웃자고 한 말이었다. 그러나 성옥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웃어 보였다. 그래도 버스는 달리고 가끔 서고 내리는 사람보다 타는 사람이 더 많았다. 운전기사는 언제나 차에서 내려 승객의 짐을 짐칸에서 찾아주거나 실어주었다.
“여기 와 봤다고 그랬나?”
Y가 성옥에게 물었다. 성옥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방금 성옥은 청도를 생각하고 있었다. 팔려간 집에서 만난 탈북자 언니, 그를 따라 도망쳐서 왔던 곳. 그곳의 노래방에서 소박한 인정이라도 붙잡을 수 있었다면… 아니면… 북경이나 상해에서 살길을 찾았을까. 아직도 굶어 죽을지 모른다는 어머니가 강둑에 와서 성옥을 찾고 돈을 바라지 않았다면… 버는 돈보다 보내야 할 돈이 더 많았다. 농사가 잘되면 북조선에 돈을 보내주겠다, 쌀을 보내주겠다던 늙은 한족 남자, 또 다른 조선족 남자. 아무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미 북조선에선 죽은 자로 정리된 성옥. 반역자로도 돌아갈 수 없는 신분.
탈북자를 우대해 준다는 남조선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엔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길밖에 길이 없게 되었을 때 성옥은 말이 안 통하는 중국보다는 말이 통하는 남조선이 나을 것 같았다. 어차피 돈을 위해 강을 건넌 운명이므로, 반역자로 돌아갈 수 없다면 안전하게 돈을 벌 수 있는 땅, 남조선으로 가야 했다.
장백현으로 떠나는 버스는 방금 출발해서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성옥은 남루하거나 소박한 차림의 중국 여행자들 사이에 Y를 세워두고 버스표를 사러 갔다. Y에게 성옥은 거의 한 시간 만에 돌아온 것 같았다. 돌아온 성옥의 손엔 찢어질 것 같은 주황색 비닐봉투에 물과 옥수수가 담겨 있었다. 화장실도 다녀오라고 말해줬다. 아주 오래도록 가야 한다고 그랬다.
버스가 도시를 벗어나자 중국의 농촌 마을들이 나타났다. 옥수수 철이어서 집집마다 노란 옥수수가 가득가득 쌓여 있었다.
“옥수수가 많네.”
Y가 말했다. 창가의 성옥은 언제부턴가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 사람들은 옥수수만 먹나?”
다시 Y가 물었다. 그제야 성옥이 Y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막연하고 아득한 눈길이 Y의 눈길을 더듬고 창가로 돌아갔다.
“저 옥 수 수….”
성옥이가 이렇게 중얼거린 건 좀 지나서였다. Y는 성옥이 편으로 몸을 바짝 붙였다.
“저 옥수수 한 배낭 얻어 가려고….”
다시 성옥이가 중얼거렸다. Y는 성옥이가 아랫입술을 깨문 걸 보지 못했다.
아득한 옛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성옥은 생각했다. 옥수수 한 배낭은 없던 일 같았는데.
성옥은 바로 엊그제 일처럼 떠오르는 그맘때가 기억나서 속이 울렁거렸다. 토할 것 같았다. 손가락 끝이 차디차졌다. 성옥은 엄지와 검지 사이의 사관 합곡혈을 자꾸 눌렀다. 평생을 맏아들의 원망의 그물에 갇혀 살았던 할아버지는 가족이나 이웃이 채했을 때, 이렇게 응급처치를 했었다.
옥수수 한 배낭의 허술한 운명. 강을 건널 때 본 시신들. 함께 건너다 사라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언니. 그리고 지워지지 않는 거리의 시체와 기차역의 죽어가던 얼굴들, 멀건 똥물을 흐리며 그림자처럼 걸어가던 소년, 기차 지붕 위에서 낙엽처럼 떨어지던 사람들, 어떻게든 살아남아라, 그것이 애국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