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수 화백의 예술적 동반자로 살아

구상과 추상을 한 화면에 결합한 ‘하모니즘 회화’로 유명한 원로화가 김흥수(93) 화백의 부인 장수현(50) 김흥수미술관장이 지난 13일 별세했다. 고인은 1980년대 김 화백의 문하생으로 그림을 배우다 1992년 43살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결혼해 화제를 모았다. 필자는 개인적인 인연으로 당시부터 두 예술가 부부의 인연을 지켜봐 왔다. 고인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도 평창동 자택을 찾았다. 집을 나서며 보니 1992년 결혼할 때 구입한 20년 된 자가용이 나타나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며 서 있었다.

그녀는 그림을 무척 사랑했다. 미술대학 1학년 재학 중에 운명적으로 김 화백을 만났고, 김 화백 작품에 대한 확신을 갖고 세계 화단계에 알리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학생과 교수의 만남, 43살의 나이 차가 학교와 사회에 물의를 빚게 되어 화백은 교단을 떠났다. 만난 지 8년 만인 1992년에 정식 결혼을 하고, 장수현은 파리로 공부를 떠난다. 주위에서는 김 화백이 젊은 아내의 내조를 받으며 편하게 지낼 것이라 생각했지만, 식을 올리자마자 유학 보내 의아하게 생각했다. 김 화백은 “창창한 앞날이 있고, 공부를 해야 할 시기”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던 중 파리와 룩셈부르크에서 김 화백의 중요한 전시 일정이 잡힌다. 장수현은 공부를 중단하고 김 화백을 위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일을 거들고, 해외 전시를 위해 함께 떠난다. 당시 김 화백은 하얀 두루마기와 까만 갓모자를 쓰고, 장수현도 하얀 한복에 빨간 노리개를 걸치고 전시장 입구에서 관람객들을 맞았다. 전시는 현지에서 큰 반응을 얻어 TV 뉴스에도 소개됐다. 이후 푸시킨 미술관,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미르타슈 미술관 등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김 화백의 초대전을 열 때 장수현은 그림자같이 항상 화백 곁에서 힘을 주었다.

작품 보관과 전시 장소를 위한 공간 확보 때문에 평창동에 이사 온 이후로 김 화백은 암으로 기력이 쇠약해졌다.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를 타고 말도 잘 못하게 되자 아내 장수현의 할 일은 더 많아졌다. 그러던 중 고인에게도 암이 발병한다. 노화백을 보필하던 고인은 항암치료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또다시 선생의 그림을 보존·전시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추진하는 등 열정적으로 일했다. 2006년 제주현대미술관에 800호짜리 대장 등 20여 점을 기증해 김흥수 화백 영구 상설관을 설치할 수 있게 하기도 했다. 고인은 처음 만남부터 마지막 떠나는 날까지 오로지 하모니즘과 김 화백에 매료되어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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