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지 아니어서 신고나 상담 꺼려
관광지에 성희롱 신고센터 의무화해야

A씨(49)는 지난달 여행지에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경험을 했다. 제주 중문단지 근처 승마장에 가족과 승마 체험을 하러 갔다가 승마장 직원에게 성추행을 당한 것이다.

A씨에 따르면 키가 큰 말에 오를 때 디딜 수 있는 받침대 같은 것은 없었고, 오로지 사람이 잡아서 올려주는데 당시 자신을 도와주던 남성이 가랑이 사이에 손을 넣고 성기에 밀착시켜 말에 올려주었다고 한다. A씨는 순간 너무 당황했지만 자신이 소리를 지르면 말이 놀라 이미 말에 타고 있던 조카들(6세, 10세)이 위험해질까봐 참았다. 어쩔 수 없이 코스를 돌고 돌아와 가해자에게 강력히 항의했고, 여성긴급전화 1366과 경찰에 신고해 가해자를 성추행으로 고소했다.

A씨는 성추행을 당한 후 신속하게 대응했으면서도 다음 날 서울로 돌아와야 했기에 사건 처리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한다. 여행지에서는 여성들이 성추행·성희롱 피해를 당하더라도 곧 그곳을 떠나야 하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하거나 상담소에 상담 의뢰를 하기 어렵다. 제주여성인권연대 부설 제주여성상담소 고명희 소장은 외부인들의 경우 “거주 지역으로 돌아가서 사건 접수를 하는 경우가 많아 사건 해결이 어렵다”며 “여행지에서 직접 상담소를 찾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제주 올레길에서는 지난 7월 여성 관광객이 살해되고, 지난달 말에는 여성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강도 사건이 일어나 올레길 치안 문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또한 울릉도·독도 탐험 중 인솔대장이 여학생을 성추행해 구속된 일도 있었다. 이처럼 여행지에서의 여성 대상 범죄가 잇따르자 정부 당국은 폐쇄회로 TV설치, ‘원터치 SOS’ 단말기 대여 등 안전대책들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여행지에서의 치안은 외진 곳의 안전 확보뿐만 아니라 A씨의 경우처럼 관광지 내 체험 프로그램이나 놀이시설 등에서 일어날 수 있는 성희롱·성추행 범죄에 대한 예방 대책도 시급히 마련돼야 할 것이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정하경주 활동가는 비단 여행지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다 안전해져야 한다”며 “관광지의 놀이기구나 체험 프로그램 안내인들에 대한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성희롱·성추행 사례 수집과 불만 신고 창구 마련 등 여행지에서 돌아와서도 신고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