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이시형처럼 살아라’ 펴내고
30년 젊게 사는 뇌과학 원리 설파
우리나라의 대표적 정신과 전문의이자 뇌과학자로 힐링 문화를 이끌고 있는 이시형(78·사진) 박사. 최근 자신의 체험을 담아 100세 시대에도 꽃중년처럼 살 수 있는 ‘희망’을 담은 ‘이시형처럼 살아라’를 펴내 특유의 건강법을 설파 중이다. 10월 17일 출판 기념 강연회에 앞서 만난 자리에서 “자신처럼 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현실과 용기가 부럽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대뜸 “원래는 40대 중반에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던 내 체험을 들어 ‘이시형처럼 살지 말아라’고 하고 싶었는데, 출판 과정에서 제목이 바뀌었다”고 털어놓는다. 팔순이 가까운 나이에 이번 책이 무려 68권째 저서로 다음 69번째 책을 이미 기획해 집필에 들어갔다는 그의 열정을 보면서 시행착오와 슬럼프로 인생의 황금률을 터득한 그의 행운, 아니 능력이 새삼 부러워졌다.
“원래는 ‘이시형처럼 살지 말아라’로 하고 싶었다”
“대구 촌놈이 의대를 졸업하고 당시 달나라 가기보다도 힘들다는 예일대에서 유학하기까지 야심가처럼 뛰어만 왔다. 교사인 아버지가 당뇨병으로 쓰러지시자 고등학생 때인 6·25 즈음부터 실질적인 가장으로 미군 부대에서 하우스 보이 노릇도 해봤다. 무리에 무리를 하고 살아와 늘 심장이 마라토너처럼 뛰곤 했다. 경희대 교수 시절, 전국교수대회에 나가면 1등을 할 정도로 테니스를 즐겼는데, 파트너였던 정형외과 전문의 교수가 시합을 끝내곤 ‘더이상 테니스 치면 안 되겠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나로선 ‘종신형’을 선고받은 꼴이었는데, 70년대 말 40대 중반 나이에 허리 디스크에 퇴행성관절염이 겹쳐 수술 권고를 받았다. 병에 걸린 의사는 의사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 수술을 거부하고 지팡이에 의존해 (생활 반경인) 여의도를 돌아다녔다. 그러면서 세상을 달리 보게 됐다. ‘내가 왜 이렇게 아프게 됐을까’를 성찰했다. 아프다는 것은 스스로의 생활을 되돌아보라는 뜻이니 병 걸린 것이 내겐 축복이 된 셈이다.”
그가 본 것은 무엇일까. 인간과 자연에 대한 한국 사회의 무례함,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무례함이었다. 이 새롭게 눈뜨게 된 것들을 소재로 해 ‘배짱으로 삽시다’를 일주일 만에 써냈다. 지금까지 170만 부가 팔려나갔다는 이 스테디셀러 이후에도 못 다한 말들을 하기 위해 계속 저술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당시 그의 병원엔 전국에서 배짱 없기로 소문난(?) 소심증 환자들이 몰려들어 정신과에만 특별 경비를 세우고 질서를 다잡을 정도였다. 환자 선고를 받은 이후 누워만 있어 90㎏ 가까이까지 체중이 불어나면서 “병을 고치는 게 아니라 병을 만들고 있다”는 자각이 그의 삶의 터닝포인트를 만들어냈다. 그는 세계 최고의 돌연사 국가인 한국에서 “‘돌연사’란 없다”고 단언한다. 환자 자신만 야금야금 병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몰랐을 뿐이라는 것. 그는 생활습관을 고치지 않고는 영원히 병을 고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뇌과학자였기에 이 사실은 한층 탄탄한 근거를 가지고 그에게 다가왔다.
“뇌과학은 멀리 있지 않다. 이를 이해하면 생활습관을 고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뇌과학을 이해하지 못하면 정치·문화·패션·인문학에도 능통할 수 없다. 100년이 가도 200년이 가도 미국 명문대들의 기초과목은 별 변화가 없지만 최근 들어 뇌과학이 많이 강조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에서만이라도 의대생이 아니어도 교양 과목으로 뇌과학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고, 내가 끊임없이 책을 쓰는 이유도 뇌과학의 원리를 좀 더 대중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다.”
그는 대웅제약, 풀무원 등 건강 기업들의 공동 투자를 받아 강원도 홍천 산자락에 ‘자연 치유’의 개념을 투영해 힐리언스 선마을을 건립하고 촌장으로 활동하면서 2009년엔 세로토닌문화원을 만들었다. 그의 소신인 ‘건강한 생활습관과 생활환경’을 향한 전진기지인 셈이다. ‘세로토닌’은 뇌의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로, 정서적이거나 감정적인 행위, 수면이나 기억, 식욕 조절에 관여해 심신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는 기능을 한다.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우울증에 걸리기 쉽고 자극이나 통증에 민감해진다. 세로토닌의 최대 미덕은 공격적인 노르아드레날린이나 중독성의 엔도르핀이 과잉 분비될 때 이를 조절해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는 것. “세로토닌이 우리 몸을 건강체로 만들고 자기 조절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 그의 세로토닌 이론이다. 그는 “세로토닌의 기본은 ‘슬로(slow)’ ‘심플(simple)’ ‘스몰(small)’로 천천히, 욕심 부리지 않고, 필요한 것만 갖고, 간단하고 여유 있게 살자는 것”이라며 “힐링의 트렌드 자체가 세로토닌적”이라고 말한다.
요즘 여성들의 화병 원인은 ‘일·가정 양립하라는 슈퍼우먼 요구’
“세로토닌은 폭력 조절 기능이 있어 폭력성을 조절 못 하고 극단으로 가는 현상이 심한 한국인에게 특히 필수적인 존재다. 예전에 이상구 박사가 엔도르핀을 얘기하자마자 호응이 열렬했는데, 난 세로토닌을 3년 내내 얘기하고 다녀도 잘 몰라준다(웃음). 엔도르핀은 강력한 쾌감 효과가 있어 과다 분비되면 중독 증상까지 생기는데, 이 세로토닌은 차분하게, 극단적으로 가지 말고 몸도 마음도 예쁘고 얌전하게 다듬어 조절하며 가자는 것이니 매력이 덜한가. 한국인 자살률이 세계 최고라는데 이 또한 세로토닌 부족 현상에서 생기는 후유증이라 생각한다.”
5년 전 그가 힐리언스 선마을을 만들었을 때만 해도 암, 고혈압, 당뇨병 등 성인병이 생활습관에서 생긴 병이란 이해가 부족했다. 의사들까지도 ‘생활습관 개선소’란 개념을 낯설어했다고 한다.
“이젠 교통사고 같은 사고만 당하지 않으면 의학적으로 100세, 아니 120세까지 얼마든지 장수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런데 (망가진 생활습관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기는) 바로 40대다. 그래서 우리 선마을은 일명 ‘40대 남성 보호소’로 불리기도 한다. 기업과 가정의 기둥인 40대를 걱정해주는 곳은 아무 곳도 없다. 또 회식문화는 어떤가. 걸핏하면 숯불구이집에 가는데, 이것이 바로 폐암에 걸리는 지름길이다. 그래서 삼성 측에 ‘제발 삼성만이라도 숯불구이 회식문화를 없애달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삼성이 기업 중 1호로 숯불구이 회식문화를 개선해 준 것을 지금도 고맙게 생각한다.
선마을의 최대 매력은 바로 ‘재미없다’는 것이다. 그냥 와서 가만히 조용히 있다가 밥 먹고 산행하고 명상한다. 휴대전화, TV, 라디오, 인터넷 다 불통이다. 과학기술문명 중독증에서 완전히 행방시키는 공간이라고나 할까. 선마을에 한 번 다녀가면 으레 단골이 되는데, 이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처음엔 (문명의 이기가 없는 것이) 아쉬웠지만 후엔 그게 없는 것이 정말 좋더라’고 말하더라. 일부러 불편하고 재미없게 만든 배경엔 사람들을 가둬놓고 ‘(건강) 세뇌’를 하고자 한 의도가 숨어 있다. 외부 자극이 있다면 일단 세뇌는 실패다.”
40대 남성에 집중하는 그는 여성에게 주로 흔히 있는, 그러나 실체가 없다고 여겨지던 화병(火病)을 세계 정신의학계에 ‘Hwa-byung’이란 정식 용어로 등단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요즘 여성들에게 내재돼 있는 화병은 과연 무엇일까.
“예전에 화병은 시어머니의 구박에서 비롯된 게 많았는데, 근래엔 화병의 원인이 달라졌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한 데 비례해 우리 사회가 슈퍼우먼을 요구하는 강도가 그만큼 세졌고, 그러니 직장 일도, 집안일도 잘하라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된다. 게다가 임금은 남성에 비해 낮고 육아 인프라는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으니 여성들이 죽을 지경 아닌가. 크게 보면, 배려 정신의 부족이 모두를 괴롭게 만든다. 배려야말로 건강 사회를 위한 핵심이다. 어릴 때부터의 배려 교육도 절실하다.”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배려’”
그가 쓰는 다음 책은 자연이 주는 치유 효과에 관한 것이다. 특히 ‘산’은 우리에게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제대로 성찰해볼 생각이다.
“5년 전 세계 최초로 산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