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게 ‘새로운 감동’을 보여줄 수 있느냐가 더 중요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이제 석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맞이하는 추석 민심은 대선의 향배를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역대 대선을 보면 추석 민심이 대선 초반 판도를 결정짓는 변곡점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분명 추석은 정보 교환과 자유토론 등을 통해 여론이 다져지고 공유될 수 있는 기간이다.

이번 추석엔 최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안철수 후보의 파괴력과 지속성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특히 박근혜-문재인-안철수 후보가 팽팽한 3각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가운데 향후의 여론 흐름이 이번 대선의 최대 변수로 꼽히는 야권 단일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돼 주목된다. 더욱이 “5·16, 유신, 인혁당사건은 헌법 가치를 훼손하고 정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박근혜 후보의 과거사 사과 발언이 과연 추석 민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역대 대선에서도 추석 전 제3 후보의 등장은 선거 지형을 크게 흔들었다. 1997년 이인제 후보는 추석을 사흘 앞둔 9월 13일 신한국당을 탈당했다. 그는 “세대교체만이 30년의 낡고 병든 3김 정치구조를 청산하고 깨끗하고 신뢰받는 생산적 정치의 틀을 창조할 수 있다”고 했다. 탈당 직후 한국갤럽의 대선 후보 지지도 조사(9월 17일) 결과, 김대중 34.3%, 이인제 25.3%, 이회창 22.6%였다. 추석 후인 9월 26일 조사에서도 김대중 34.9%, 이인제 25.0%, 이회창 22.7%로 큰 변화가 없었다. 중요한 것은 이인제의 탈당으로 정권이 교체됐다는 점이다.

2002년에는 추석 나흘 전인 9월 17일에 무소속 정몽준 후보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정 후보는 “여태껏 말뿐이었던 정치 개혁에 몸을 던져야겠다는 소명의식에서 출마를 결심했다”고 밝히면서 “상식의 정치를 여는 새 시대의 중심에 서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 후보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자마자 대선판은 크게 요동쳤다. 당시 추석 연휴 전후 여론조사 추이를 살펴보면, 야당인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정체, 무소속 정몽준 후보 상승세, 여당인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하락세를 보였다. 하지만 추석 이후 ‘1강(이회창) 2중(노무현·정몽준)’ 구도가 만들어졌고, 이를 타파하기 위해 노·정 후보 단일화(11월 15일)가 성사됐으며, 최종적으로 집권 여당이 재집권에 성공했다.

역대 대선에서 드러난 추석 민심의 특징은 한마디로 유권자들이 추석 연휴 중 지지 후보를 거의 바꾸지 않았으며 추석 직후 일정 기간 이런 지지구조가 유지됐다는 점이다. 과거의 이런 추석 민심 패턴이 이번에도 재현된다면 추석 연휴 이전에 형성된 ‘박근혜 하락세, 문재인·안철수 상승세’라는 지지 구조가 추석 직후에도 일정 기간 유지될지 모른다. 그러나 역대 대선에서 보듯이 10월과 11월에 접어들면서 후보 지지도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제3 후보의 지지율이 서서히 하락하는 양상을 보이면서 선거구도가 여야 양강 구도로 재편됐다. 그 이유는 여전히 여야 후보에 대한 고정층이 견고히 자리 잡고 있고 향후 국정 운영의 안정성 문제가 적극 제기되면서 제3 후보가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분명 이번 대선에서 제3 후보는 과거와는 다르다. 출발부터 후보 단일화가 전면에 부상됐고, 단일화 대상과는 동질적인 가치를 갖고 있다. 이렇기 때문에 최근 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문재인·안철수의 지지도가 동반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과거에는 제3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하면 여야 후보 중 한 사람의 지지가 하락하는 ‘제로 섬(zero sum) 게임’ 구조를 보였다면 이번 대선에서는 반새누리당 후보들 간에 ‘협조적 게임’의 성격을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추석 민심이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추석 이후 어느 후보가 국민에게 ‘새로운 감동’을 보여줄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추석 이후 각 후보는 지지율을 더 끌어올릴 수 있는 회심의 카드를 마련하고 예상치 못한 각종 변수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하며 실수를 하지 않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추석 민심만 믿고 미래로 나아가는 것을 게을리하는 후보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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