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카르마의 바다’, 산문집 ‘문학의 도끼로 내 삶을 깨워라’ 동시 출간

 

전주의 한 택시 기사는 “나의 신 속에 신이 있다 이 먼 길을 내가 걸어오다니”(‘먼 길’)를 땅에서 읊고, 이라크에서 서울로 귀환하는 장병들을 태운 비행기의 기장은 “왜 나는 너를 부를 때마다 이토록 간절해지는 것이며 네 뒷모습에 대고 언제나 기도를 하는 것일까”(‘아들에게’)라는 말을 하늘 위로 올려 보낸다. 취임과 퇴임의 변을 시로 대변했던 한 여성 대법관의 일화를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우리 주위엔 시를 읊조리며 자기 위로의 주술을 거는 이들이 꽤 많다. 앞서의 실례처럼 대중이 애용하는 주술을 가장 많이 만들어내는 시인 중 한 명인 문정희(65·사진) 시인을 가을빛이 화창한 9월 24일 아침 강남 봉은사 그의 집 근처에서 만났다. 1969년 등단, 올해로 ‘정식’ 문학인생(진명여고 시절부터의 화려한 백일장 수상 경력과 여고생 최초의 시집 ‘꽃숨’의 이력까지 합치면 얼추 50년이다) 43년을 맞은 그는 서사시집 ‘아우내의 새’, 시극집을 포함해 최근  ‘카르마의 바다’에 이르기까지 14개의 시집을 펴내고, 또 14년 만에 시인의 심정을 소상히 담은 산문집 ‘문학의 도끼로 내 삶을 깨워라’를 내놓은 참이었다.

천재 소녀 시인 미당의 사랑받아… 물·관능·탐미 탐색

그의 산문집 제목은 문학에 살고 문학에 죽을 것 같은 절박감을 흠씬 풍긴다. 부산의 한 문학 강연에서 “인생에서 무엇을 제일 소중히 생각하느냐”는 여성의 질문에 프랑스의 여성 소설가 조르주 상드의 말을 인용해 “첫째는 자식, 둘째는 나의 일, 셋째는 사랑”이라는 의외의 답변을 했다는 시인. 그의 말대로 인생의 시기에 따라 순위는 얼마든지 앞뒤가 바뀔 수도 있고, 이 절대 순위의 강박관념에서 해방되는 것이 바로 “소녀가 아니라 인생을 이해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는 방증이라는 넉넉한 태도에 부담이 한층 덜어졌다.

시인은 2년 만의 신작 제목에 감연히 ‘업보’라는 뜻의 ‘카르마’를 붙였다. 1993년 발표한 박사학위 논문 ‘서정주의 시 연구- 물의 심상과 상징체계를 중심으로’(서울여대)를 기점으로 그는 ‘물’의 이미지에 천착, ‘물의 시인’으로도 불려왔다. 지난해 가을부터 석 달간  한 작가 초청 프로그램에 참여해 물의 도시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지내면서 원 없이 물을 바라보고 담금질한 내밀하고 관능적인 언어로 ‘카르마의 바다’를 썼다.

“‘카르마’, 이것은 나에 대한 스스로의 선언이자 확신입니다. 그동안 대중과의 소통이 너무 무거워질까봐 이 제목을 망설이며 붙이지 못했죠. 그런데 지금 이 제목을 단호히 선택한 이유는 이제는 대중과의 소통에 그렇게 집착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자기 선언이라고나 할까요? 결국 시는 비밀문서, 연애편지 같은 존재니까요.”

‘카르마의 바다’가 출간 일주일 만에 재판을 찍었다는 것은 그에게 의외의 기쁨과 확신을 주었다. “문학이 본질로 가지 않으면 나도, 문학도, 시대도 같이 죽는다”는.

그는 잘 알려져 있듯이 미당 서정주가 인정한 천재 소녀 시인이었다. 여고생으로 20여 개의 백일장을 석권하며 한 백일장의 심사위원이었던 미당과 만났다. 당시 ‘플랭카드’란 그의 시에 장원을 주저치 않고 준 미당은 그의 등을 두드려주며 “빼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다”고 격려했다(“지금 내 가슴의 순수한 백지는 젖어가고 있다”로 시작되는 ‘플랭카드’엔 여고생의 눈으로 본 4·19 전후의 시대인식이 들어 있다. 시인은 “이제 두 동강이 나서 이젠 지표조차 희미해진 산하에 푸른 풍경화룰 꽂자고, 그리고 서투른 풍금 소리같이 나이 어린 자유여, 민주여, 결코 순백해야만 하는 어머니여”란 시구를 다시 되뇌며 “그 나이에 어떻게 그런 감성이 숨어 있었는지”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 인연으로 미당은 그의 첫 시집 제목으로 ‘아름다운 첫 숨결’이란 뜻의 ‘꽃숨’을 지어주고 이례적으로 여고생 시집의 서문을 써주었다. 미당은 “하늘 아래 네가 있도다”란 말로 그의 존엄성을 일깨우며 그가 주저 없이 문학에 뛰어들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해준 대스승이다. 자연스럽게 그는 미당의 탐미주의와 관능적 시어에 영향을 받았다. 그가 그토록 ‘물’에 집착했던 것도 미당의 영향이다. 미당은 생명의 원형으로서 물의 순환에 주목했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피, 눈물, 오줌 등 몸속 물이 눈물이 돼 빠져나가고, 아내의 정화수 기도가 돼 하늘로 올라가고, 이것이 비가 돼 다시 땅으로 내려와 그 물로 곡식을 길러내고 그걸 인간과 동물이 먹고 산다”는 것. 그의 물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난 그 ‘물’을 여성의 물, 여성의 생명성으로 봅니다. 자궁 속 물, 즉 양수가 그렇죠. 그래서 카르마의 바다는 우리의 시, 운명, 생명으로까지 확장됩니다. 미당에게서 가장 감탄하는 부분은 관능성입니다. 우리 시엔 탐미정신이 좀 부족하죠. 우리말로 관능적인 것을 표현하려다 보면 금세 더러워지는 느낌이고… 나도 부딪치고 또 부딪치는 고통을 겪었어요. 이번 ‘카르마의 바다’에서도 물과 관능을 연결해보려 했는데, 그만 ‘출렁이다 만’ 느낌이에요(웃음). 그러면서 또 실감하죠. 시라는 것을 주무르며 한 여자가 50년을 질주한다는 것이 쉽지 않구나 하는 것을요. 언젠가는 탐미와 관능의 미의식이 충만한 시작을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문학은 재능 99%에 노력 99%의 어울림, 더도 덜도 아니다”

햇살 가득한 대낮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

네가 물었을 때

꽃처럼 피어난

나의 문자(文字)

“응”

 

동그란 해로 너 내 위에 떠있고

동그란 달로 나 네 아래 떠있는

이 눈부신 언어의 체위

-시 ‘응’ 중

그의 시는 관능적이란 평을 많이 받는다. 대표적인 시가 ‘응’이다. 글자의 형태만 봐도 남녀의 성관계를 오묘하게 연상시킨다고도 한다. 그는 여기에 ‘평등’을 강조한다.

“이 시엔 에피소드가 있어요. 샤워를 하고 있는데 문자가 왔어요. 휴대전화를 바꾼 터라 문자 보내기가 쉽지 않았고 급한 마음에, 그리 친근한 사이도 아닌데 ‘응’이란 문자를 보냈죠. 그랬더니, 상대편 왈, 그 문자를 보는 순간 심장이 터질 것 같더래요. 새로운 문자 시대와 매체의 어울림이죠. 구체적인 대답보다는 나의 시 역시 현대적인 매체 위에 둥둥 떠 있다고나 할까요. 누군가는 ‘시가 시인에게 나 하고 싶어, 물으니 시인의 대답이 응’이었다며 시와 시인의 대화같다고도 평했죠. 사실, 속물적 유혹이 올 때마다 시에 물으면 시의 대답은 늘 ‘좋은 시 한 편!’이에요. 그것이 시와 무슨 상관이냐는 거죠. 그래서 샛길로 빠지지 않게 해준 시에 너무나 감사해요.”

그에게 이는 궁금증 중 하나는 ‘천재 시인’의 중압감을 어떻게 극복했을까다. 너무 빨리 알아버린 찬탄의 맛, 잊기도 버리기도 버거웠으리라. 20대 시인으로선 처음으로 현대문학상 수상 기록을 세우기도 했지만, 그리 큰 도움은 못 됐을 것 같다.

“초기엔 등단 때 받은 스포트라이트의 추억을 7~8년간 간직하고 있었는데, 이걸 다 버리면서 중압감을 극복했어요. 그건 나의 젊은 날의 하나의 추억일 뿐, 계속 가지고 있었더라면 문학의 세계로 못 들어갔겠죠. 그 추억 중에 정말 좋은 것 하나만 간직하면 돼요. 문학은 재능 99%에 노력과 연습 99%가 더해지는, 그 외에는 어떤 것도 더 중요하지 않은 존재입니다. 모든 작가는 내가 과연 재능이 있을까, 내내 의심하고 또 고민하죠. 그런데 난 어린 시절 경험을 통해 그냥 자연스럽게 ‘난 재능이 있다’로 결론 내버렸어요. 그래서 소모적 고뇌를 하나 던 셈이죠.”

그는 20대 말 현대문학상을 받은 이후 8년의 긴 공백기를 거쳐서야 새 시집을 내놓았다. 젊고 왕성하고 의욕도 치솟았던 반면 광주항쟁의 후유증도 깊었다. 시대적으로 서정시는 안 되겠다는 절망감도 느꼈다. 다행이라면 1982년부터 2년간 뉴욕대에 다니며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뉴욕 생활을 하며 다양한 문화적 충격, 그중에서도 여성학과 조우한 경험이다. 당시 여성학자 케이트 밀레트, 피임운동을 펼친 마거릿 생어 등 여성해방운동 최전선에 선 여성들의 삶을 접할 수 있었다. 귀국해보니 한국엔 이미 이화여대 여성학과를 중심으로 여성학의 불씨가 타오르고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여성 작가 중에도 여성적 통찰과 시대적 자각이 부족한 상태로 시를 쓰는 이들이 꽤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의 시 중엔 “나는 일찍이 이 땅에 남자로 태어나지 못했네 PK도 아니었고 TK도 아니었고 물론 MK도 아니었지 KS도 못 되었네”로 시작하며 스스로를 남성 중심 세계에서 소외된 왕따로 자각하는 동시에 이를 축복으로 여기는 ‘내가 찾은 골목’이란 시가 있다. 그는 스스로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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