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 경선 결과 손학규 후보와 2위 다툼… 야권 주자 중 박근혜 후보와 가장 대척점

 

민주통합당 대선 예비후보 합동 토론회장에서의 김두관. 중앙 여의도식 정치에 익숙지 않은 점이 그의 약점으로 꼽힌다.what is the generic for bystolic   bystolic coupon 2013
민주통합당 대선 예비후보 합동 토론회장에서의 김두관. 중앙 여의도식 정치에 익숙지 않은 점이 그의 약점으로 꼽힌다.
what is the generic for bystolic bystolic coupon 2013
ⓒ김두관 캠프 제공
제주, 울산에 이어 8월 28일 현재 강원까지 마친 민주통합당 경선 결과, 문재인 후보가 50% 이상의 지지율로 1위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2위 자리를 놓고 손학규 후보와 분투 중인 김두관(54) 전 경남지사. 경선 중반을 넘어 광주, 전남, 부산, 대구, 경북, 수도권 등 판세를 뒤엎을 수 있는 유리한 지역이 줄줄이 남아 있어 막판 경선에 돌풍이 불지 않을 것이라 쉽사리 단정지을 수 없는 상황이다.

김두관이 당의 다크호스로 급부상한 것은 4·11 총선을 기점으로 해서다. 한명숙 전 대표를 전면에 내세우고 문재인 당시 고문이 실질적 영향력을 발휘했던 4·11 총선은 기대했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이 틈새를 비집고 새로운 대안, 새로운 인물이 절실히 필요했고, 김두관이 그 수혜자가 됐다는 데는 별 이견이 없다. 게다가 그에겐 유권자가 좋아할 만한 역경 극복과 감동의 스토리가 있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전문대 졸업… “이장 출신 대통령 후보”

김두관의 최대 경쟁력은 ‘비기득권’ 이미지로 꼽힌다. 그는 이를 십분 활용해 자신의 홍보 포스터에 “서민이 아닌 대통령은 결국 서민을 배신합니다”라는 도발적 문구를 집어넣었다. 그의 경선 캠프 명도 ‘국민아래’다. ‘김두관 유일 대안론’을 일찍이 설파한 시사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현재의 김두관의 지지도나 인지도는 별 문제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김종인 박근혜 후보 전 대선 경선캠프 공동 선대위원장의 “김두관이 야권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란 말이 시사하듯 김두관은 ‘공주’ 이미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가장 대척점에 선 후보이기 때문이다. ‘이장 출신 대통령 후보’란 말로 요약되는 그의 삶의 이력이 그 증거다.

경남 남해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김두관은 “운동화를 신고 바닷가를 달리는 게 소원”이었을 정도로 어려운 성장기를 거쳐 4년제 대학에 합격하고도 등록금이 없어 포기해야 했다. 그가 대선 주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전문대(경북영주전문대) 출신인 이유다(2년 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로 편입). 가족사도 여기서 별로 어긋나지 않는다. 6남매 중 시민운동가 출신으로 4·11 총선에 도전했던 막내 동생 김두수 전 민주당 제2사무부총장을 빼고는 서독 파견 광부였던 큰형, 택시기사인 둘째 형, 서울 대림시장에서 40년째 생선 장사를 하는 셋째 누나, 회사 경비원인 넷째 형이 그렇다.

김두관과 민주진영과의 인연은 제대 후 1986년 민족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부설 민족학교를 다니면서 시작됐다. 당시 고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눈에 들어 이 여사가 딸 전순덕씨의 사위로 점찍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민통련 활동은 그의 인생에 전환기를 마련해줬다. 그는 간사로 일하며 개헌추진본부 충북지구 결성대회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돼 3개월간 옥살이를 하게 되는데, 이때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에 헌신하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이후 남해로 돌아와 ‘남해농민회’를 만들고 농민운동을 펼치다가 1988년 남해군 고현면 이어리의 이장으로 뽑히게 된다. 29세의 나이였다. 그리고 1995년 여당의 텃밭이던 남해에서 무소속으로 출마, 36세의 나이로 남해군수에 당선돼 최연소 기초자치단체장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이목을 집중시킨다. 독일인 마을, 여러 나라의 국가대표 전지훈련장이 된 스포츠파크 등이 당시 그의 업적으로 평가된다. 군수실 벽 한쪽을 유리로 만들어 ‘투명 행정’을 상징화한다거나 남해대교에서 번지점프를 하는 등 특이한 행동으로 관심을 모았고, 1999년엔 MBC 다큐 ‘성공시대’에도 등장해 호응을 얻었다. 1998년 남해군수 재선에 성공한  여세를 몰아 2002년 무소속으로 경남도지사에 도전했던 그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권유로 새천년민주당에 입당, 후에 노 전 대통령에 의해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파격 발탁된다. 노 전 대통령은 평소 그에 대해 “모범적인 지방행정가” “키워주고 싶은 인물”이란 말을 해왔고, 이런 연유로 ‘리틀 노무현’으로 불리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계속된 시련 속에서도 7전8기 정신으로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곤 하는 그의 정치적 이력도 긍정적인 효과를 주고 있다.

한나라당의 거센 해임 요구로 장관직을 전격 사퇴했던 김두관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경남 남해군·하동군 지역에 출마하는가 하면 2006년 경남도지사에 재도전하기도 했다. 18대 총선에서까지 낙선, 암울한 상황에서 2010년 경남도지사 선거에 세 번째로 도전, 결국 성공하면서 개인적 뚝심을 넘어 “지역주의를 무너뜨린” 성과로 인정받았다. 당내에선 2005년 열린우리당 의장선거 낙선,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경선 컷오프 탈락의 아픔을 맛보았다.

과격한 모병제·탈핵 공약 득일까 실일까

 

김두관은 고향인 남해로 낙향, 농민운동에 뛰어들면서 지방자치 이력을 쌓아간다. 바로 여기서 ‘이장 대통령 후보’란 독특한 스토리텔링이 시작된다.cialis coupon free   cialis trial coupon
김두관은 고향인 남해로 낙향, 농민운동에 뛰어들면서 지방자치 이력을 쌓아간다. 바로 여기서 ‘이장 대통령 후보’란 독특한 스토리텔링이 시작된다.
cialis coupon free cialis trial coupon
ⓒ김두관 캠프 제공
반면 다소 과격해 좌클릭 행보로 읽히거나 ‘서민’ 이미지의 일관성에서 벗어나거나 다소 논리가 빈약해 보이는 듯한 정책 콘텐츠들은 마이너스 요소로 평가되고 있다.

최근 논쟁을 일으켰던 징병제 폐지를 전제로 한 ‘모병제’가 대표적 사례다. 국민 전체가 아닌 일정 연령의 청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데다가 국민 대다수가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김두관의 논리는 현대 전쟁의 승패는 병력 수가 아닌 첨단기술과 무기이기에 경쟁력과 세계적 추세 면에서 모병제가 대안이라는 것이다. 김두관은 현재 65만 명의 군인 수를 30만 명까지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모병제로의 전환은 이에 더해 양질의 일자리 20만 개를 만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는다. 여기에 징병제 유지에 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연간 12조원인데, 모병제로 전환 시 국내총생산(GDP)이 35조원까지 상승한다고도 내다보았다. 국방력 약화 우려나 재원 마련에 대해선 상당히 낙관적일 수밖에 없다. 모병제 도입을 위해 선대위 내에 ‘국방혁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등 불붙은 이슈에 발 빠르게 대응 중인 김두관은 “종북으로 몰려 표가 떨어지더라도 국방 개혁을 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또 하나는 탈핵 국가에 대한 급진적 공약. 김두관은 다른 후보들이 현재 건설 중인 원자력발전소까지 포함해 원전 수명이 다하는 2060년까지를 탈핵 국가 목표 시점으로 잡고 있는 데 반해 이를 20년이나 앞당긴 2040년을 완전 탈핵 국가 원년의 해로 공약했다. 8월 19일 열린 대선 예비후보 초청 시민사회 연속 토론회에서 김혜정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 위원장이 원전 중단에 따른 산업구조의 급격한 개혁 문제나 원자력계의 극심한 반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김두관의 답은 “공권력 뒀다 어디 쓰겠느냐”는 것이었다. 탈핵에 대한 강력한 의지의 피력으로 읽히는 반면 좀 더 섬세한 정책 손질이 필요함을 시사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김두관의 약점으로 꼽히는 것 중 하나는 아직은 중앙정치 무대에 미숙하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6월 열린 고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 계열의 모임인 민주평화국민연대 초청 간담회에서 “스토리는 풍부한데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은 것. 그는 한 패널의 평이한 질문에 “잘 모른다”는 솔직한 답변을 하기도 했는데, 다른 후보들에 비해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모면하거나 에둘러 말하는 것에 약해 공격도 많이 받고 허점도 자주 노출한다는 게 중평이다. 7월 열린 관훈클럽 토론회에선 그의 학력을 들어 “글로벌 시대 정상들과 토론을 벌일 수 있겠느냐”는 질문까지 나왔다. 이에 대한 그의 답변은 “꾸준히 노력하고 공부해 당당하게 정상외교에 임하겠다”는 원칙 수준에 그쳤다.

중앙 정치무대에선 아직 ‘신인’… 돌발 발언 생뚱맞기도

성공적인 지자체장 이력으로 ‘청렴’ 이미지를 구축한 그이지만, 경선캠프 홈페이지에 게재된 그의 청렴 동기는 좀 어설프다. 남해신문 재직 시 취재원이 식사나 하라며 건넨 촌지에 대해 촌지를 받으면 안 되는 보도 준칙을 자세히 설명한 뒤 이를 거절하고 짜릿한 희열을 느꼈다는데, 이어지는 “돈의 유혹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는 거창한 고백은 왠지 어색해 보인다.

8월 19일 시민사회 연속 토론회에서도 이정자 여성정치포럼 대표의 “역대 대통령들의 전철을 밟지 않고 차별화한 국정 운영을 잘할 자신이 있느냐”는 질문에 김두관은 대통령 5년 단임제가 너무나 문제가 많다고 전제하고 “당선 후 곧바로 헌법개정위원회를 만들어 국민 동의하에 분권형 대통령제를 하고 싶다”고 답했다. 실질적으로 국방·외교 등은 대통령이, 내치·경제 등은 총리에게 맡기겠다는 말끝에 그는 “일주일 중 5일 정도 쉬고 2일 정도 일하면서 우리 민족의 맥을 짚는 문제에 크게 고민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 대통령도 좀 쉬고 싶다”고 말했다. 좋게 보면 통 큰 대통령, 부정적으로 보면 책임 회피로도 읽힐 수 있는 부분이다.

지난 8월 김두관 캠프에 합류한 김재윤·민병두 민주통합당 의원은 김두관을 정치적으로 분석한 ‘김두관의 정정당당’을 출간하면서 “지금껏 우리는 권력을 잡는 순

m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