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인생 60년 맞은 신영희 명창 “소리꾼은 득음을 향해 가다 생을 끝내지…”

10년 전 소리꾼 인생 50주년 기념 공연을 한 데 이어 곧 60주년 기념 공연을 앞두고 있는 그에게 50주년 때에 비해 어떻게 소회가 다른지 우문을 던졌을 때 돌아온 그의 간결한 답이다. 9월 15, 1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자신의 삶을 풀어놓은 드라마와 함께 직접 공연을 선보이는 신영희(71·사진) 명창을 지난 8월 26일 공연 연습이 한창인 신사동의 한 연습장에서 만났다. 기자의 기억에 가장 뚜렷이 남아 있는 그의 모습은 코미디언 김미화·김한국씨가 부부로 출연해 티격태격하는 중에 시원스러운 추임새와 함께 대찬 충고를 넣어 종결자 역할을 했던 ‘쓰리랑 부부’의 고수 역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는 국악 대중화의 선두주자로 인식되곤 하는데, 그 자신도 우리 국악 대중화의 3가지 기폭제로 ‘쓰리랑 부부’와 영화 ‘서편제’의 대히트, 한 의약품 광고를 통해 국민 슬로건이 된 명창 박동진의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를 꼽는다.

조선 말기 고종으로부터 소리꾼으로선 가장 높은 벼슬(정삼품 통정대부)을 제수받은 명창 이동백의 ‘새타령’이 제자들의 청아한 목소리로 연습실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진행된 그와의 인터뷰는 국악의 정겨움과 신비로움을 함께 이해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최고의 명창이 되어라” 아들 제쳐두고 딸에게 올인한 아버지

그는 전남 진도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는 명창 신치선 선생으로, 그의 소리 인생은 아버지를 스승으로 모시고 11세 때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처음부터 순조롭고 자연스러운 과정은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판소리는 대부분 남성들의 전유물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소리꾼의 삶이 얼마나 고달픈지 익히 알았기에 딸이 그 길을 가길 결코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남도민요를 대표하는) 육자배기와 춤사위에 능해 광복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와 함께 공연을 했던 어머니 양순네씨의 생각은 달랐다. “농부의 아내가 되느니 소리를 가르쳐 명창을 만들자”고 끊임없이 아버지를 설득했고, 12세 때는 딸의 소리 인생을 위해 예인들이 모여 있는 목포로 이사를 감행했다. “더할 수 없는 호인이자 법 없이도 살 사람”으로 딸에게 각인된 아버지는 딸에게 “당대 최고의 명창이 돼라”며 가성을 쓰거나 꾀를 부리지 말고 통성을 쓰라는 우직하고 엄한 가르침으로 일관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소리는 “선이 굵고 남성적”이란 평을 듣는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런 만큼 사랑도 한껏 주었다.

“아마 아버지는 내가 당신과 가장 닮았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 쌍꺼풀까지(웃음). 2남2녀 중 셋째인데도, 그 시절이 아들 선호사상이 강한 때인데도 오빠, 남동생 다 제치고 나를 제일 사랑했어. 오죽하면 고등학생인 오빠가 딸밖에 모른다고, 죽으러 간다고 소동까지 벌였을까.”

그러나 그 사랑은 짧았다. 그의 나이 16세 때 국악원에서 한창 공부하던 중 아버지를 여의었고, 이후 그는 실질적으로 소녀 가장 역할을 하며 형제들을 공부시켰다. 교직자였던 그의 오빠(신규종)는 퇴직 후 충남 아산원에서 국악원을 운영 중이고, 남동생(신규식)은 고수로 평생 그와 함께 공연장을 누비고 있다. 명창의 핏줄은 가문 대대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가계도다.

소리꾼의 삶은 득음(得音)에 바쳐지는 일생으로 요약되곤 한다. ‘득음’이란 말 그대로 ‘소리를 얻는다’는 뜻인데, 최동현 교수(군산대 국어국문학과·전북 문화재위원)는 이를 “본래 자신이 가지지 못한 소리를 새로이 ‘얻어야’ 한다”고 해석한다. 그만큼 득음은 양동이 세 통 가득 피를 쏟아낸다거나, 천지연 폭포와 겨뤄 소리 질러도 결코 지지 않을 만큼의 훈련을 거친다거나, 목소리가 터지면 절이 무너지는 소리를 낸다는 등 고통스러운 신화로 가득 찬 과정을 거쳐 얻게 되는 값진 결실이다. 맑은 소리를 아름답다고 하는 서양 음악과 달리 판소리에선 이 득음의 과정을 통해 얻어지는 거칠고 목쉰 소리를 아름답다고 한다. 긴 시간 동안 여러 사람 앞에서 마이크 없이 불러내야 하는 노래 한마당, 장시간 공연으로 목이 쉬어도 공연은 계속돼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에 소리꾼들은 아예 자신의 성대를 이에 맞게 적응시키느라 애초에 목쉰 소리로 만들어버린다. 쉰 목은 그대로 두면 다시 회복되기에 최 교수는 그의 저서 ‘소리꾼’에서 “소리꾼의 수련은 멀쩡한 성대를 영구적인 병적 상태로 만들기 위한 노력에 집중된다”고 말한다. 신 명창 역시 그 숙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득음을 위해 다른 소리꾼들이 하던 모든 행위를 그도 되풀이했다.

“요즘은 마이크 명창이라고 하지만(웃음), 우리 때는 그런 게 어디 있어? 14,15세 때 한창 소리 내느라, 남들처럼 폭포수 밑에서 연습하기도 하고 하니 어혈이 많이 생길 수밖에. 하루 세끼 먹고, 잠자고 화장실 가는 시간 외엔 내내 소리만 했으니… 그땐 약도 없어 똥물도 참 많이 먹었어. 그런데 확실히 효과가 있더라고. 그것 때문에 살았지.”

똥물을 약 삼아 소리 공부… “악보대로 부르는 국악은 서양음악에 불과”

그에게 ‘득음’이란 무엇일까. 당연히 득음을 했을 것으로 예상한 기자의 질문에 그는 단호히 “대한민국에 득음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 그건 참 경솔한 얘기”라고 못 박았다.

“스님이 득도하듯 우리 소리꾼은 계속 득음을 향해 연구하고 연습하는 거지. 득음의 길로 가면서 우리 생도 끝나게 돼 있어… ‘득음’은 우리 자연의 소리, 즉 물소리, 새소리, 천둥소리, 보신각 종소리까지 그대로 똑같이 내는 경지에 이르는 거야. 이러니 우리 음악 같은 것이 세계 어디에 있겠어(유네스코는 2003년 판소리를 ‘인류 구전 및 무형 유산 걸작’으로 선언, 세계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했다). 왜 이동백 선생이 새타령을 부르면 새들이 진짜 자기네들 소리인 줄 알고 선생의 머리에 새똥을 쌌다는 일화도 있잖아. 그에 비하면 중국의 경극도, 일본의 가부키도 단순해. 게다가 다 역할 분담인데, 우리 판소리는 나 혼자 모든 역할을 다 해내는 거잖아. 거기다 소리꾼은 일종의 싱어송 라이터와도 같아. (판소리는 악보라는 기록 없이 기억에 의해 구비전승되는 예술이기에) 악보대로 하면 서양음악이 돼버려. 조상들, 스승들에게 구전받은 것을 내 식대로 해석하는 것이 바로 악보인 셈이지. 소리에 위 상 혹은 아래 하 표시하고 거기 내 식대로 점을 한 개, 두 개 자꾸 찍지. 그래서 끼가 있고 감각이 빨라야 해. 말하자면 1인 멀티플레이어, 종합예술이지.”

그는 안기선, 김준섭, 박봉술, 강도근, 김삼룡 등 당대 명창으로부터 사사했다. 여성 스승은 춤사위, 연기를 전수 받은 경주의 장월중선, ‘춘향가’를 전수 받은 김소희 명창이다. 특히 김 명창과의 만남은 목포 생활을 감연히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와 20여 년을 동고동락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는 스승에게서 완벽한 연습과 완벽한 무대를 체득했고, 고고한 덕을 배웠다고 한다. 스승은 소리 할 때의 절제와 정확한 발음, 그리고 곱게 소리하는 법을 강조하곤 했는데, 이전의 남성 스승들에게서 배운 것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197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김 명창의 전수장학생에 선정됐고, 1992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춘향가) 후보로 지정되는 등 스승의 큰제자로 자리매김한다. 제자를 양성 중인 그는 아마추어는 절대 안 받고 될성부른 인재 30여 명으로 한정하는 기준을 엄격히 지키고 있다. 그렇지만 의외로 제자들에게 “소리보다 먼저 인간이 돼라”고 강조하곤 한다. “아무리 소리 잘하면 뭐 해, 인간이 안 돼 있으면 그 후손까지도 ‘광대 새끼’라 손가락질 받는데”란 그의 말끝엔 예술가로서의 품격에 대한 한없는 자부심이 배어나온다.

20년 흘렀어도 여전히 ‘준’문화재 “김소희 선생님께 송구스러워”

“연극은 판소리에 큰 도움을 줘. ‘어하둥둥 내 사랑아’ 부르다 (대사 부분에서) 갑자기 소리를 낮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