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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단체 무료법률상담과 여성문제 관련 소송 변론을 맡는 변호사

명단에서 자주 눈에 띄는 친숙한 이름이 있다. 바로 최은순(33) 변호

사다. 그는 93년‘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사건’에 이어, 97년 경남

사천 신용협동조합 ‘김두선씨 승진차별 사건’, 98년‘제대군인 지

원에 관한 법률과 시행령’의 헌법소원심판 청구, 현재 호주제 철폐

를 위한 헌법소원 준비 등을 여성단체들과 함께 했다.

이런 여러 사건들 중 그에게 가장 인상이 남는 사건은 아무래도 우

조교 성희롱 사건이다.

“우조교사건을 계기로 여성운동단체들과 인연을 맺게 됐지요. 워

낙 중요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건보다도 심혈을 기울였고, 그

래서 애착도 많았던 사건이었어요.”

지금 벌써 6년째 접어들고 있는 우조교 성희롱 사건은 현재 종결이

안 된 상태다. 대법원 판결 이후 고등법원으로 환송돼 재판이 1년

넘게 지연되고 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성희롱에 대한 제도

적, 법률적 개선 효과를 가져왔고, 어느 정도 사회적 성과도 거뒀다.

그래서 지난해 최 변호사는 이 사건의 공동변호인으로 박원순, 이종

걸 변호사와 함께 한국여성단체연합 선정 '올해의 여성상'의 주인

공이 됐다.

성희롱문제 전문 변호사답게, 올해 '남녀차별 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이 통과된 후 최 변호사는 더 바빠졌다. 기업들과 여성단체 등

에서 실시하는 직장내 성희롱예방 강연들을 다니고 있기 때문.

대학시절 여학생회 만들어

그의‘여성의식’은 변호사가 되고부터 발휘된 게 아니다. 대학시

절 이미 ‘행동’으로 보여주기까지 했다. 85학번인 그는 84학번 선

배들과 함께 그때까지 남학생들 중심이었던 총학생회와는 별도로 총

여학생회를 만들었고, 법대 여학생회도 만들어 초대 회장을 맡았다.

“그즈음 여성적인 관점에서 세계를 보자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

죠. 그리고 그 시도로 고려대에 총여학생회를 만들었어요. 또 친한

친구 3명과 함께 법학과에도 여학생회를 처음 만들었죠. 법학과에

300명 정원 중 여학생이 12명밖에 안됐기 때문에 과대표 선출에서부

터 학교 행사 등에서 여학생들은 배제되는 상황이었거든요. 사실 여

성문제는 스폰지처럼 저에게 흡수가 잘 되고 현실적으로 많이 와닿

았어요. 바로 내 문제였기 때문이었죠. 지금 저의 여성적인 관점, 가

치관이 그때 많이 형성됐다고 봐요.”

그는 살면서 차별을 크게 당한 적은 없지만, 엄마의 삶, 그리고 학

교 다닐 적 작은 경험들에서 조금씩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대

해 깨닫게 됐다고.

“어려서 꼭 반장은 남자애를 시키고 여자는 부반장을 시키고 했잖

아요. 그리고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게, 초등학교때 반장을 하던 남자

애보다 늘 성적이 잘 나왔는데 담임이 반아이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반장의 뺨을 때렸어요. 남자애가 왜 여자애한테 졌냐는 거죠. 그땐

참 충격이었어요. 그런 뿌리깊은 차별 관행들이 있었죠.”

최은순 변호사는 어려서 변호사가 되겠다는 꿈을 갖거나 하지는 않

았단다. 고등학교때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아 대학진학때 사회과학의

정수라고 생각한 법학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는 대학시절 386세대들

이 그렇듯, 뭔가 대의나 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된

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딱 중간인 386세댄데, 그땐 수업보다는 민주주의, 반독재투쟁에 모

두 참여하는 분위기였고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죠. 대학 3학년인 87

년에 대선투쟁으로 수업도 거의 못 들어갔고, 길거리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그해 12월 대통령선거때 고향인 경북 영천에 내려가 투표감

시단활동도 했지만 헛수고였어요. 바라던 정권교체가 이뤄지지 않아

선거 후 모두들 허탈해 했고, 우왕좌왕하던 시기가 있었죠. 4학년을

앞두고 과연 난 무엇을 할 것인가, 법학도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 뭘까 고민했었죠. 공부를 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는데 집안형편상

좀 어려웠어요. 그래서 변호사가 좋겠다라는 생각에 사법고시를 봤

죠.

법대 과목 책을 들여다 본 게 1년 만이었어요. 사회과학 서적만 보

다가 막상 시험 준비를 하려고 도서관에 처음 앉았는데, 책 한 페이

지 읽는 데 한 시간이 걸리더라구요. 2학년때 열심히 공부하지도 않

았는데 시험성적이 좋게 나와서 300명 중 5등 안에 들었던 적이 있

었는데, 그 정도로 법학과목이 적성엔 맞았던 것 같아요. 그런 경험

에 힘입어 시험을 준비했죠. 적응하는데 한 달 걸렸지만, 그때 좀 독

하게 공부를 했던 것 같아요.”

그는 이듬해 5월 1차 시험에 합격을 했다. 공부를 시작한 지 불과

4-5개월 만에 뜻밖의 합격이었다. 그는 기쁨도 잠시 2차 시험이 걱

정됐단다.

“2차 시험과목이 8과목이었는데, 1차시험과목이랑 중복되는 걸 제

외하고는 거의 지식이 전무한 상태였어요. 2차 시험은 2번의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그해는 포기한 후, 그 다음해 2차 시험에 응시해서

합격했어요. 굉장한 행운이었죠.”

5개월 공부, 사시합격 비법

사실 그의 말처럼 그는 행운아였다. 같은 해에 1,2차에 합격하는 경

우는 오랫동안 공부를 해온 노장그룹 외에는 거의 드문 경우였고,

그처럼 1차시험을 재수하지 않고 한번에 붙는다는 게 어려운 일이었

다. 물론 그의 노력이 뒷받침됐겠지만, 그가 말하는 자신만의 비법이

있다.

“대학 1학년 때부터 사시준비한다고 도서관에 틀어박혀 있는다고

사시에 붙는 게 아니에요. 제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

중에 지쳐서 다들 떨어져나가죠. 특히 1,2학년 같은 경우는 고등학교

때 입시에만 매달리느라 교양적인 측면, 자기 인생에 대해 사고할

겨를이 없었잖아요. 여러 다방면의 분야를 접해 보면서 자기 인생의

폭을 넓히고, 사회제반현상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그런

과정이 필요해요. 장기적으로 봤을 때 결코 그런 시간들이 낭비가

아니에요. 그런 경험들을 한 사람과 안 한 사람과는 나중에 법서를

읽어낼 때 이해의 수준에서 차이가 나요. 법이라는 것도 사회현상

중 하나기 때문에 현실을 모르면 이론을 이해할 수 없고, 사건사례

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 점에서 제가 대학

시절 활동하며 보냈던 시간이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공동체생활, 사회생활을 대학시절 경험해 보지 않으면, 나중에 변호

사가 된 후에도 다른 사람과의 의사소통과 설득에서 문제가 드러나

기도 하구요.”

그는 89년 사시합격, 사법연수를 거쳐 92년에 변호사 개업을 했다.

개업년수로 따지면 이제 8년차다. 그는 요즘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

해 생각이 많다.

“변호사 욕들 많이 하잖아요.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존재로까지 말

하죠. 제 생각엔 변호사들한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변호사도 자

영업자라 영리적인 측면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변호사와 같이 사회

에서 지위를 인정받는 사람들의 경우엔 공익적인 환원을 해야 한다

고 생각해요. 그런데 변호사들 경우 특권계층으로서 그런 부분은 도

외시한 부분이 있죠.”

공익적 측면에서 그가 존경하는 선배 변호사가 있다.

“변호사가 되겠다라고 생각하고 난 후, 주위에 변호사들의 활동을

주위깊게 보게 됐는데, 그때 마침 조영래 변호사가 열심히 활동하고

계셨어요. 직접적으로 만나 뵌 적은 없고, 돌아가신 후 글들을 통해

만났죠. 변호사일을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생기는 특권의식 같은

걸 깨기 힘든데 그 분은 변호사라는 직업 자체를 다른 사회활동에

녹여 버려서 그야말로 사회봉사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과연 내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죠.

지금 현재 활동하고 계신 변호사 중에는 박원순 변호사를 존경해

요. 민변에 함께 소속돼 있었는데, 우조교 성희롱 사건을 통해 알게

됐죠. 참여연대 활동도 박원순 변호사 때문에 하게 됐어요.”

사실 최은순 변호사는 오히려 공익적인 일에 너무 많이 참여하고

있어 돈 벌 기회도 적다.

“운동단체에서 하는 소송 등에는 돈을 기대하지도 않지만, 만약 받

는다고 해도 다시 단체에 기부하게 되죠. 애정을 갖고 단체들과 일

할 때 가끔 드는 생각이 변호사들을 너무 기능적으로만 결합시킨다

는 거예요. 어떤 단체에서 사건소송이 있으면 어떤 의미에서 이런

활동을 하는지에 대한 공유보다는 단순히 소송만 의뢰를 한다든지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럴 땐 좀 서운하죠. 단순결합이 아니라, 그

영역에 관심을 갖는 변호사들을 키워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아

요.”

그는 여성문제뿐만 아니라 소비자보호·권리에도 관심이 많다. 요

즘 소비자보호단체협의회 실무자 교육, YMCA 시민중개실에서 급발

진문제나 담배소송에 관한 기획 등을 돕고 있다. 또 최근엔 참여연

대에서‘투명한 사회 만들기운동’의 일환으로 '정보공개청구사업

단' 활동을 하고 있다.

여권변호,‘평생’할 일

그는 94년에 결혼해 21개월 된 딸 다영이가 있다. 남편 이경주 씨

는 대학 1년 선배다. 현재 경북대에서 헌법 전임강사를 하고 있다.

그 덕분에 두 사람은 주말부부다. 주로 남편이 주말에 올라오는 편

이지만, 아이를 혼자 책임져야 한다는 점에선 힘든 부분이 많다. 수

입이 남편보다 많긴 하지만, 두 집 살림이라 여느 집보다는 훨씬 돈

이 많이 들어간단다. 친정에서 4녀 2남 중 셋째 딸인 그는 장남노릇

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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