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정치문화 운동으로 이어가야

 

19대 국회가 개원하고 12월 대선을 앞둔 현재 우리 사회는 정치적 전환기를 맞고 있다. 정치권은 이제 보다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국가를 바라는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지난 19일 진행된 두 번째 ‘성평등국가포럼’에서는 성평등 국가에 대한 정의부터 성평등 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론과 주체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이어졌다.

◆김은경= 김형준 교수의 발표에서 여성들의 참여와 교육의 중요성을 주장하셨는데 성평등 국가를 만드는 것은 여성이나 남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공동체가 가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 즉 정치인들이 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다. 그런 맥락에서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선 이재오 전 장관과 김문수 도지사의 성평등에 관한 무지한 발언을 들으니 오히려 자괴감에 빠진다.

◆김형준= 제가 말한 교육은 어릴 때부터 정규 교육과정에서 평등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발달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습득하면 의식도 따라서 발전한다. 이재오 전 장관과 김문수 도지사를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유력한 대권 후보인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성평등에 관해 얘기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성평등과 여성 리더십에 대해 열정적으로 강의하는 것과는 상반된다.

우리나라 여성 국회의원 중 성평등을 자신의 신념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느냐 하는 것이다. 정치인이 바뀌어야 된다는 부분에 대해선 동의하면서 여성 국회의원이 먼저 앞장서길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전반적인 인식 부족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신필균= 스웨덴의 양성평등 정책은 복지국가를 이뤄가는 과정에서 불평등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시작됐다. 정책의 기본 정신은 ‘자기 스스로 할 수 없는 문제, 즉 태어난 조건 때문에 생기는 불평등은 국가 차원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바탕이 됐다. 동시에 여성 노인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 문제와 같이 가져갔다. 이제 우리도 여성문제만 보지 말고 사회적 약자문제를 포괄적으로 보는 제도적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

제도 개선보다 국민 공감대 형성이 먼저

◆강선미= 성평등 국가를 논할 때 성평등은 수단이 아닌 중요한 기본 목표여야 한다. 물론 선거용 정책이 아니라 국민적인 합의가 바탕이 돼야 한다. 성평등 정책에 대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것에 대한 논의 없이 마치 아는 것처럼 논의하는 것도 문제다. 또 국가 성평등 정책은 국민이 이해하는 수준보다 외국 이론으로 무장해 앞서간다는 생각이다. 결국 성평등 정책은 화려하게 전시만 될 것이다.

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현재 느끼는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민들에게 무상으로 교육 콘텐츠를 살포해서 중요성을 알리고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김은주= 성평등 국가를 열 단어 이내로 정의하는 식으로 개념을 명확히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성평등 국가를 만들어내는 주체에 대한 논의와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검토해보자.

◆홍승아= 가족정책에 대해 프랑스는 가족이 경제적 어려움 없이 자녀를 잘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스웨덴은 아이를 안전하게 키우는 것과 함께 일·가정 양립을 위해 부모의 취업을 적극 지원하는 것으로 각각 정의한다.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가 다 다르기 때문에 성평등 국가를 정의하기가 쉽지 않지만 ‘성평등 국가는 성평등을 목표로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국가운영체제’라고 답을 내리고 싶다.

◆이영민= 정의를 내리는 방식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성평등 국가라는 개념이 보편적으로 혹은 한국적 특수성을 가지고 내릴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또 하나 목적과 수단에 대한 얘기도 나왔지만 기술적·당위적 지향점이나 가치로 정의할 수 있고, 정의 방식에 있어서도 다른 방식이 나올 것이다. 아직도 이념문제로 이해하고 있는 민주시민교육 또한 지금의 학교교육과 어떻게 접목할 수 있을지 논의가 필요하다.

다음 세대를 위한 걱정과 대안 담겨야

◆김형준=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에서 내놓은 캐치프레이즈는 ‘특권과 차별이 없는 사회’였다. 대한민국 헌법과 이를 종합해 보면 ‘성별 때문에 정치·고용·문화 등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 차별이 없는 국가’가 바로 성평등 국가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

◆신필균= ‘성별 때문에 차별받지 않는다’는 부분에서 남성들은 ‘우린 차별 안 했다’고 하는 것이 문제다. 그들은 ‘차별한 게 아니라 대우했다’고 한다. 이런 논쟁이 붙으면 끝이 없다. 성평등 국가를 조금 더 쉽게 표현해 ‘우리의 아들과 딸들이 평등한 기회를 갖는 사회 혹은 국가’로 정의내리고 싶다. 아무리 보수적인 사람이라도 자신의 딸이 불평등한 기회를 갖는 것은 용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강대인= 김지하 시인은 후천개벽의 상징으로 여성과 어린이가 세상의 중심으로 나오는 시대를 설명하면서 ‘모심(母心)’이라는 표현을 썼다. 농부가 모를 심는 마음, 모심, 살림, 박애, 자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정치와 관련해서는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당장의 선거보다는 다음 세대를 위한 걱정, 대안을 만드는 정치가 필요하다. 여성이 중심이 되고 남성이 울타리가 되는 성평등 정치가 새로운 문화운동으로 발전하면 좋겠다.

◆김원홍= 대안정치는 남성정치의 한계로 인해 나타난다. 대안정치로서 성평등 국가를 세우기 위해서는 패러다임이 바뀌고, 지방자치와 주민자치에 참여하는 등 실천 중심으로 가야 한다.

◆김은경= 발제문에서 성평등 국가를 ‘다분히 인위적이고 선택적인 국가 운영체제’라고 정의내렸다. 물론 인위적인 표현이다. 민주주의 제도도 약자와 강자 간, 빈자와 부자 사이에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문제는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체제였다. 대한민국의 다음 지도자는 현실의 차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평등 국가’라는 체제를 선택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들어간 정의다.

◆강선미= 성평등에 관한 기본 원칙은 있지만 실행에 관계된 차별에 관한 법은 없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다.

◆강남식= 자유와 평등을 모두 소중한 가치로 규정한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보고 굉장히 감동한 적이 있다. 그러나 법은 잘 만들어놓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괴리가 상당하다. 이 차이를 어떻게 메울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추진 주체와 방법론 고민해야

◆김형준= 성평등 국가는 무엇이며, 누가 이끌어가고, 어떻게 이뤄가야 하는지가 맞물려 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정책이 만들어졌을 때 정책 수혜자가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 스웨덴 성평등 정치를 대표하는 ‘두 명당 한 명꼴로 여성을(바르안난 다메르나스·Varannan Damernas)’이라는 용어를 인용해 ‘두 명당 한 명꼴로 남성을’이라는 식으로 여성문제를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들도 정책 대상자라고 체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강선미= 외국에 비해 우리의 정책 변화는 굉장히 빠르다. 이로 인해 정책 도입 이전에 있었던 좋은 정책들이 세상을 너무 삭막하게 만들고 있다. 또 서둘러 제도를 바꾸는 부분에서 피로감까지 느낀다. 제도를 바꾸면 의식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하지만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기계적으로 하는 것 같다. 좋은 마음들이 사라지고 정책이 선진화되면 무슨 소용인가. 그만큼 성평등 국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방법론은 굉장히 중요하다.

◆김은경= 앞으로 성평등국가포럼을 통해 정책상 지향점이 무엇인지 쉽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번 논의가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도 있기 때문에 보다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며 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해 선거에도 영향을 미치는 자리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여성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정치운동의 전초전으로 이어나가는 것도 모색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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