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4분기 동안 스페인 자본시장에서 빠져나간 돈은 141조원에 이른다. 이는 지난 한 해 동안 스페인에서 빠져나간 금액에 육박하고 스페인 국내총생산(GDP)의 8%에 이르는 액수다. 스페인의 경제 규모는 그리스의 4배 이상으로 스페인마저 무너지면 유럽 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전 세계가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2007년까지만 해도 국가부채 비율이 GDP의 36.3%로 독일 65.2%, 프랑스 64.2%보다 훨씬 낮았던 스페인이 5년도 채 안 돼 재정 파탄에 이른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지 못하면 국가부도 상황까지도 갈 수 있는 지경으로 몰린 이면에는 지방정부의 막대한 부채와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저축은행들의 파산이 있었다.

스페인 지방정부들은 60% 이상을 중앙정부에 의지하는 열악한 재정자립도에도 불구하고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을 골자로 한 선심성 정책을 마구 도입하고 경제성 없는 공항과 병원 등의 시설을 무분별하게 유치했다. 2008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대부분이 부실화됐고 중앙정부가 그 뒷감당을 할 수밖에 없게 되자 막대한 재정적자로 이어졌다. 저축은행들은 전체 대출에서 주택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70%까지 상승하도록 운용했지만 주택시장이 침체되기 시작하면서 파산으로 몰리게 됐고 중앙정부가 구제자금을 쏟아 부으면서 국가부채가 급속하게 늘어나게 된 것이다.

최근 발생주의 방식으로 집계한 지난해 말 한국의 국가부채는 774조원으로 발표됐다. 발생주의 방식이란 당장 현금 거래가 없더라도 미래에 상환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까지 포함하는 방식이다. 현금주의에 따르면 국가부채는 420조원이지만 잠재부채로 잡히는 군인연금과 공무원연금이 342조원이나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공공기관과 공기업 부채 463조원까지 고려한다면 우리의 국가부채는 1255조원에 이르게 된다. 법적으로 정부에 지급 책임이 없다고 하여 빠진 국민연금과 사학연금까지 포함한다면 국가부채 규모는 더 늘어나게 된다.

1인당 소득과 인구 규모가 우리와 비슷한 스페인의 재정위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스페인의 급격한 재정 악화의 이유를 보면 마치 우리 경제의 현실을 묘사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복지성 지출은 한 번 늘어나면 사실상 줄이기는 불가능하다. 재정건전성은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게 아니다. 만시지탄이 되지 않도록 정부와 정치권은 과도한 재정지출을 자제하고 지출의 효율적 집행을 감시해야 한다. 차제에 방만한 공기업과 공공기업의 과감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빚이 그냥 없어지는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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