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전 위원장이 당내 갈등 해결 못한 채
폐쇄적이고 독선적인 리더십 보인다면 결코 미래는 보장되지 않아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 룰을 둘러싸고 새누리당 내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당 지도부는 정몽준 전 대표와 이재오 의원, 김문수 경기지사 등 비박 주자들의 완전국민경선제(오픈 프라이머리) 도입 요구를 묵살하고 경선관리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에 대해 이들 3인은 “대선주자 간 합의에 따른 경선 룰 확정 없이는 후보 등록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친박과 당 지도부가 오픈프라이머리 요구를 끝내 거부하고 현행 룰대로 경선을 강행할 경우 경선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압박으로 보인다. 이재오 의원은 한 발 더 나아가 탈당과 정계 개편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경선관리위원회는 첫 회의에서 14일부터 대선 예비후보 등록을 접수한다고 밝혔다. 경선 룰 변경 없이 현행 당헌·당규대로 8월 21일까지 대선 후보를 선출하려면 6월 25일까지는 예비후보 등록을 해야 실무 준비를 할 수 있다는 논리에 따른 것이다.
친박과 비박 양측의 입장이 너무 완강하기 때문에 파국을 막고 12월 대선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하려면 어떻게든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 열쇠는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이 쥐고 있다. 현재까지 박 전 위원장은 “선수가 룰을 바꿔서는 안 된다”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더구나 오픈프라이머리는 치명적인 역선택 문제로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친박의 핵심 인사는 “새누리당에서 오픈프라이머리를 한다면 민주당, 통합진보당, ‘정봉주와 미래권력들’(미권스), 전교조, 민주노총 등이 박 전 위원장 상대 후보를 찍기 위해 모두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2년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측에서 당시 박근혜 부총재가 요구했던 국민참여경선제를 비판할 때 논리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다. 한나라당이 국민참여경선제를 채택하면 노사모가 총동원돼 이 총재를 떨어뜨리고 상대하기 쉬운 박근혜를 당선시킬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당시에 박 부총재는 경선 룰을 둘러싸고 이 총재 측과 공방을 벌일 때 “국민참여경선에 대해 부작용을 우려해 시도도 해보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고, “이회창 총재가 여론에 떠밀려 개혁의 시늉만 내고 결국은 프리미엄을 갖고 경선에 나서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부총재는 “경선에 들러리를 서지 않겠다는 입장은 확고하다”고까지 말했다. 결국 박 부총재는 이 총재의 제왕적 당 운영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탈당했다.
탈당 기자회견에서는 “1인 지배 체제 극복이 정당 개혁의 기본인데, 한나라당은 후보 뽑는 모양만 다르게 했을 뿐이다”면서 이 총재에 직격탄을 날렸다. 역사에 가정은 의미가 없다. 하지만 만약 2002년에 이회창 총재가 보다 열린 마음으로 박 부총재의 요구를 받아들여 멋있는 경선을 치렀다면 대선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박 부총재가 탈당하자 많은 국민은 이 총재가 대세론에 도취되어 변화와 개혁을 거부하는 수구적 인물이 됐다고 비판했다. 그것이 바로 낡은 정치 청산을 기치로 내건 노무현 후보에게 일격을 당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박 전 위원장이 10년 전 이회창 총재의 실패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통 큰 결단을 내려야 한다. ‘박근혜식 6·29 선언’이라도 해야 한다. 지난 1987년 노태우 민정당 대선 후보가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국민이 원하는 대통령직선제를 전격 받아들임으로써 대선 주도권을 장악하지 않았는가. 박 전 위원장이 당내 경선 룰을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채 끝내 폐쇄적이고 독선적인 리더십을 보인다면 결코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 당내 갈등도 해결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국민 통합을 이뤄낼 수 있겠는가. 박 전 위원장은 2001년 12월 18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내 이름의 영문 이니셜이 GH인데, 나는 이를 대화합(Great Harmony)이란 뜻으로 새기고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이 진정 재집권을 원한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대화합의 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