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우선지급 후 구상권 청구 대지급제 도입을”
자녀 복리 침해 인식 약해… 형사처벌 도입 여론

김지은(가명·35)씨는 지난 1998년 홍성욱(가명·37)씨와 결혼해 외동아들을 뒀으나 남편의 무능력과 성격 차이로 재작년 협의이혼 했다. 당시 아들의 친권자와 양육자로 김씨가 지정됐다. 남편은 양육비로 매달 20일에 50만원씩 주기로 ‘양육비부담조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니 능력껏 키워라. 책임감 없는 아빠라고 해라”는 답변만 보낸 채 양육비를 한 푼도 주지 않았다.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아 건강이 나빠진 김씨는 법원에 양육비 채무 이행을 위한 담보제공명령을 신청했다.

자녀 양육비 분쟁이 늘고 있다. 법원에서 양육비 지급 판결을 받고도 ‘나 몰라라’ 하는 통에 여성들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감치나 과태료 등 제재 조치가 있지만 실효성이 약해 양육비 이행을 강제할 수 있는 입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조경희 법률구조부장은 “양육비가 친권·양육권 포기 압박 수단이나 재결합의 무기로 쓰이기도 한다”며 “심한 갈등 끝에 이혼한 부부는 ‘양육비를 줘도 아이에겐 안 쓸 것’이라고 의심한다. 엄마 편을 드는 자식이 꼴 보기 싫다며 양육비를 안 주거나 재혼 가정에서 한두 번 주다 끊는 경우도 흔하다”고 전했다. 양육비를 주지 않으려고 온갖 수법을 동원한다. 월급 압류를 피하려고 다른 회사로 옮기거나 아예 퇴직하는 사례도 있다. 심지어 친·인척 회사에 명의만 빌려줬을 뿐 실제 근무하지 않는다고 버티는 남성도 있다. 이 때문에 이혼의 상처와 홀로 양육하는 부담감, 양육비 부담 등 3중고로 우울증을 앓는 여성들이 적지 않다.

미혼모는 이혼 가정보다 더 양육비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 2일 밝힌 미혼모 가족 양육비 이행 실태 조사에 따르면 만19세 이상 양육 미혼모 213명 중 양육비를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한 경우는 31명(14.6%)에 그쳤다. 특히 최근 한 달간 아이아빠나 그 가족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은 미혼모는 17명으로 8%에 불과했다. 월평균 양육비는 40만원 초과가 32.3%로 가장 많았고 10만원 이하(29.0%), 20만~40만원 이하(25.8%), 10만~20만원 이하(12.9%)가 뒤를 이었다. 조사는 지난해 9월 15일~11월 30일 이뤄졌다. 

양육비 청구액과 판결액 차이도 큰 데다 천편일률적이라는 지적이다.

자녀 1인당 30만원, 50만원 식의 판결이 많다. 부모의 능력이나 아이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엇비슷한 판결이 쏟아져 주먹구구식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가정법원 양육비위원회는 부양 자녀 수와 재산 등 다양한 요소를 반영해 상향 추진하는 양육비 산정기준표 제정을 위해 지난달 시민배심법정을 열었다.

전문가들은 양육비를 손쉽게 받아낼 수 있도록 법적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상용 중앙대 법학과 교수는 “양육비 직접지급 명령제도가 도입돼 봉급생활자는 회사가 직접 양육자의 통장으로 보내주지만 자영업자들에겐 효력이 없다”며 “선진국처럼 국가가 양육비를 우선 지급하고 채무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양육비 대지급제도가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감치제도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여성들도 많다. 양육비 지급 판결 후 안 준다고 버티면 형사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양육비는 채무 1순위로 자녀 복리를 해치는 심각한 범죄라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1000만원 이하 과태료 처벌은 약하다. 재산이 있는데도 양육비를 안 주는 도덕적 해이에 대해 징역형을 도입해 강력히 제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아동양육비 이행을 지원하고 대행하는 기관이 필요하다”며 “미국은 지불 능력이 있는 아이 아빠에게 양육비를 대신 받아다 주는 일종의 에이전시를 운영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중간 개입이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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