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었던 꿈, 그리웠던 정다움
잊었던 꿈, 그리웠던 정다움
  • 조혜순 / 라이트메네지먼트코리아 이사, 비엔트리경력개발연구소 소장
  • 승인 2012.04.06 11:11
  • 수정 2012-04-06 1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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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무덤에 놓인 기념비.
어머니의 무덤에 놓인 기념비.
베이비부머 세대이자 50대인 나는 50년대와 60년대 가난했지만 인정이 있었던 도시와 시골의 생활을 기억한다. 서울 주택가에서 부모의 학벌이나 재산에 상관없이 동네 아이들 모두와 어두워질 때까지 골목길에서 함께 뛰어놀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1961년부터 1976년까지 세 차례의 경제개발계획이 진행되면서, 도시 주변에 공단이 세워지고 도시 빈민들은 공단으로 이주해 좀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동시대에 농촌에서도 기계화와 합성비료와 농약 농사를 시작했고, 농업의 잉여 인력들도 공장으로 이주했다.

거대 기업들이 늘어나 고소득 화이트칼라도 늘어났고 동시에 노동자와 농민의 소득이 증대됐다. 도시나 농촌이나 이제 우리도 잘살게 됐다는 말을 하게 됐다. 유년기와 10대 때 경제 성장으로 배고픈 사람이 줄고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된 좋은 점을 피부로 체험함과 동시에, 나는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 가진 사람과 덜 가진 사람의 차이가 별로 없었던 종전의 가치관이 사라져 가는 안타까운 느낌 또한 가지며 자라났다. 박완서 선생의 작품 ‘도시의 흉년’은 70년대 말 사회를 그린 것으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안타까움을 설명해 준다.

1980년대 초 한국과학기술원 연구원 시절에 회사의 연구공간인 안산의 한 새로 지은 아파트 앞에서 본 저녁 무렵 풍경이 기억에 생생하다. 신축 아파트에 사는 주부들이 비닐 장바구니 가득 장을 보아 활기차게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물결이 시작되고 있었고 그 물결이 너무도 급속히 밀려온다는 느낌을 받았다. 모두가 더 조금씩 풍요롭게 살게 된 80년대와 90년대 그리고 2000년대를 우리는 살아왔고 이제 서울은, 도시는 거대 첨단 대규모 국제도시가 됐다.

경제·물질·문화 모든 면에서 너무 빠르게 성장해 온 지난 40년보다 이전인 70년대 또는 60년대의 풍경이 그리운 것은 나이 50대의 세대로서 당연한 향수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시골집에 온 그해에 쓴 ‘고향’이라는 시는 50대 세대로서의 유년기의 향수뿐 아니라, 옛것과 새것, 서구와 동양, 도시와 농촌을 함께 수용하고 소통케 하고자 하는 소망을 표현한다.

저녁이면 군불 때는 연기가 여기저기에서 나는 마을에 나는 돌아왔다.

내 인생의 40대에 계획하고

50대에 돌아왔다.

나는 아침에 마을을 산책한다.

친척 아주머니들이 밭일 하시는 모습도 보고 내 엄마의 무덤과 기념비도 만난다.

많은 것이 다시 만나진다.

현대와 탈현대가

첨단과 전통이

몰두함과 통합이

서구와 동양이

부분과 전체가

각론과 총론이

외로움이 동행함을 배우고

많은 것이 다시 찾아진다.

잊었던 꿈이

그리웠던 정다움이

이루고 싶었던 위엄이

넉넉한 수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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