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백성을 아끼는 대통령 나오시길 빕니다”
‘그날’ ‘갈림길’ 등 다큐로 65년 무당 인생 재조명돼… ‘금화당’에서 전통 굿문화 전수
“무당은 가족같이 벽 없는 존재… 통반장부터 상담원 역할까지”
“(무당으로 살아온) 65년 내내 예로부터 들어왔던 ‘만세받이’를 해왔어요. 무엇보다 나라를 위해 늘 기도하죠. 나라가 편안해야 백성이 편안해지기 때문이에요. 올해는 총선과 대선이 있으니 제발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고 경제를 회복시키면서 평화롭게 다스리는 자를 하늘이 내셔서 대통령 되게 하시길 빌고 있어요.”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한 TV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무녀가 두드러지게 부각돼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의 느낌은 어떨까.
“내가 그걸 보면서 ‘저것 좀 보시오, 옛날엔 (무당에게) 지나친 면도 있고 모순도 있었지만 따뜻한 온정이 있지 않았소’ 했어요. 사람을 해치는 것은 안 되는 것이고, 오히려 어려운 이를 구해주고 감싸주는 모습 아닌가요. (무당에겐) 너무 자주 갈 필요도, 또 굳이 멀리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요. 철없이 혹세무민한 무당들이 좀 있어 걱정되긴 하지만, 친척 같고 가족처럼 벽이 없는 존재 아닌가요? 특히나 복잡한 요즘, 만신의 역할은 일종의 중개자인 것 같아요. 통반장부터 상담원, 변호사, 판검사 역할까지 다 하는 셈이에요.”
그는 평안해 보이는 분위기와 달리 험난한 삶을 반복해 살아왔다. 하늘에서 장군칼 한 쌍이 떨어져 어머니의 치마폭에 안기고 뇌성벽력이 치는 중에 청룡과 황룡이 구름을 뚫고 하늘로 승천하는 지극히 장엄하고 화려한 태몽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아들을 고대하던 집에선 절대 환영받지 못할 오남매 중 둘째 딸이었다. 태어나자마자 포대기에 둘둘 말려 방 한쪽으로 밀쳐졌다가 극적으로 어머니의 젖을 물어 생명을 구했고, 외할머니에 의해 (남동생이 어깨 너머로 들여다보고 있다는 뜻의) ‘넘세’로 이름 붙여졌다. 열세 살 때 사촌 형부가 계집애 이름이 그게 뭐냐며 ‘비단 금’에 ‘꽃 화’자를 붙여 ‘금화’라 새롭게 이름을 지어줬다. 그의 집은 산골짜기 자갈밭을 일구어 겨우 끼니를 이어갈 만큼 지독히도 가난해 어린 시절 그의 소망은 밥 한번 실컷 먹어보는 것이었다. 열네 살 때 정신대를 피해 인근 동네로 시집을 갔지만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모진 시어머니의 구박에 견디다 못해 집으로 도망쳐왔다. 그리고 신 내림을 받았다. 어찌 보면 집안 내력이었다. 그의 외할머니도 소문난 큰무당이었기 때문이다. 양반집 며느리로 아들을 점지받으려 기도를 다니다가 신이 내려 무당이 됐다는 외할머니는 전주 이씨 외할아버지의 모진 구타와 장도칼 위협, 인두 지짐을 당하면서도 신기를 주체치 못했다. 무당으로서의 자신의 삶이 자신과 가족에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를 익히 잘 알았기에 신이 내린 17세 외손녀에게 가장 가혹했다. 가까스로 말문이 열린 그는 불면증에 시달리며 비몽사몽 중에 호랑이가 허리를 무는 환상을 자주 겪었는데, 그런 후엔 종일 아프곤 했다. 그러면서 “이게 바로 무당이 되는 것이구나” 실감했다.
“외할머니가 (내 신 내림을) 몹시 싫어해 나에게 못되게 굴었죠. 만신이 뭐냐 무당이 뭐냐면서, 나 하나로 고생하고 말지 하셨죠.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막 하던 끝에 홧김에 날 내쫓았죠. 그런데 당숙모 집에 피신해 있던 나를 어머니가 울면서 새벽에 데리러 왔어요. 천식이 있던 할머니가 거의 숨이 넘어갈 지경이라 해서 집에 갔더니 할머니가 내게 빌면서 ‘미련한 인간이 잘못했습니다. 신명님 감정 푸시고 몸 괴로운 것 낫게 해주세요, 용서해주세요’ 하시는 것 아니겠어요? 차츰 병이 나은 할머니가 ‘어차피 감추고 못 살거니 나와 꼴 좀 보자’ 해서 맴돌고 허리 젖히고 날고뛰고 하니 ‘에구, 할 수 없다. 안 말릴 거다. 신이 영검하시면 큰무당이 되든 뭐가 되든 길 열어주세요’ 하더니 한숨을 쉬고 치마폭으로 눈물을 닦았어요. 체념 어린 허락이었죠. 이후 할머니는 내 첫 신어머니가 되어 어디 가면 춤부터 추지 말고 ‘뵈러 왔소, 뵈러 왔소, 신의 신줄 따라 물줄 따라 신의 원당 뵈러 왔소’라고 해라 가르쳐주시기도 하고, 실습도 많이 시켜줬어요.”
예닐곱 살 때부터 신기 보여 “신 내림 없었으면 벌써 죽었을 것”
“신이 안 내렸으면 병으로 죽었어도 벌써 죽었을 것”이라 단언하는 그는 숱한 생사의 갈림길에 섰지만 신의 딸이기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말한다. 어릴 때부터 위기의 순간마다 자신을 포함해 주변 사람들의 안위를 같이 챙겼던 그가 후에 나라 굿을 많이 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숙명이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은 피란길 배를 탔다 태풍을 만나 배 안에서 구르던 순간이다.
“무작정 배를 탔는데 갑자기 끝도 없는 바다 중심에 배가 들어서니 저기 바람 온다, 태풍 온다 사람들이 웅성댔어요. 순식간에 비바람이 몰아치면서 물결이 들이닥치고 배가 요동쳤죠. 난 ‘천지신명님, 용왕님, 여기 있는 이 사람들 다 도와서 광풍 바람 재워주고 명주처럼 잔잔하게 바닷바람 재워달라 수없이 기도했죠. 서너 시간 밤새 불던 바람이 새벽부터 잦아지면서 날이 훤해 오는데 누군가 중국 바다 가까이 왔다는 소리에 맥이 풀렸죠. 그런데 다시 보니 (인천 앞바다인) 덕적도 방향 아니겠어요?”
그는 정확한 병명 진단도 받지 못한 채 사경을 헤매던 이가 자신을 찾아와 기적같이 살아났을 때, 근심거리가 해결되고 고민에 답을 얻어 기뻐하는 이들의 모습을 볼 때 말로 다 할 수 없는 보람을 만끽하곤 한다. “도와주세요, 믿습니다”며 애절하게 간절히 부탁하는 이들을 보며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낀다. 예닐곱 살 때부터 이질적이고 신비한 행위로 또래 아이들과 동네 사람들에게 외면당했던 아픈 기억에 대한 일종의 치유와 보상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하면서 그가 여느 무당들과 크게 다른 점이 무엇일까 내내 생각했다.
그는 1982년 한·미 수교 100주년 기념 문화사절단으로 첫 해외 공연을 했다. 주최 측의 무속에 대한 편견으로 공연 무산 위기 속에서 마력 같은 힘으로 관객을 다시 불러들여 열광시켰고 이로 인해 예정에도 없던 연장 공연을 석 달간 했다. 이를 기점으로 스페인, 러시아, 오스트리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과 중국, 일본 등 세계 곳곳을 누비며 신비한 우리 전통문화를 알려온 중요무형문화재다. 고향이 서해안에 접해 있어 서해안 배연신굿과 대동굿 최고의 전문가인 그는 공연을 하는 나라마다 한국 알기 열풍을 일으키곤 해 어떤 이는 그를 “애국자”라 치켜세우기도 한다. 일생을 샤머니즘과 문화의 접목을 시도하는 것, 그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그것은 그의 운명이다. 그리고 그 길은 진흙투성이인 그의 삶에 연꽃을 피웠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근원은 바로 그가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던 누구도 꺾지 못할 자긍심이 아니었을까.
“나라만신은 예부터 나랏일을 관장해 제사해 왔어요. 단군 할아버지도 제사장이었죠. 그리고 공주가 무당이기도 한 시절도 있었어요. 신 내린 공주를 임금이 땅을 파고 묻으라 했는데, 방울 소리가 나 다시 파보니 사흘이나 지났는데도 공주가 살아 있었다 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임금은 내치라는 명령을 내렸죠. 옛 노인네들은 나라만신 섰던 자리에 은금 보화가 솟아난다며 경외했죠. 그런데 왜놈들이 들어오면서 그런 말들이 다 사라지고 외래 종교가 밀려왔어요. 자료도 다 없어지고, 참 우리 문화로 봐서도 안타까운 일이죠.”
한·미 수교 백주년 공연 통해 세계에 알려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