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는 ‘자원’을 무기로 삼성전자와 어깨 나란히

풍경 #1

공유경제(share economy), 협력적 소비(collaborative consumption)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들린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선 이를 연구하는 모임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공유경제와 협력소비만을 사업 아이템으로 설정한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도 등장했다. 이를 목표로 창업한 소셜 서비스에선 아이들 옷(ThredUp)에서부터 책, 자동차(SoCar), 자전거, 심지어 집안 공간(KOZ-AZA)까지 공유된다.

풍경 #2

페이스북은 4~6월께 기업공개(IPO)를 단행한다. 전 세계 수많은 분석가들이 ‘awe-some’을 연발하며 기업가치의 규모를 예측한다. 대략 10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분석이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10조원. 삼성전자의 기업가치(시가총액)는 1369억 달러. 어깨를 나란히할 만한 규모다. 손에 잡히는 제품을 생산하는 것도 아니요, 그것을 내다파는 것도 아닌데, 삼성과 비슷한 기업 규모라니. 입이 떡 벌어질 노릇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체제로서 자본주의는 자원의 희소성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희소적 자원을 어떻게 배분하느냐라는 경제문제를 다루는 게 경제학이다. 보이지 않는 손의 매개로 이 자원이 시장에서 교환는 것이 시장경제의 골간이다. ‘자원의 희소성’이 문제가 되지 않으면 시장경제는 근본이 흔들린다고 경제학 교과서는 설명한다. 또한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희소가치가 있는 신제품을 생산하고 유통하고 내다팔아야만 유지된다. 희소성의 경제이기도 하지만 면밀히 들여다보면 희소성을 제작하는 경제 시스템이기도 하다.

페이스북이 이 근간을 흔들어 놓고 있다. 희소성이 아닌 ‘자원의 풍요’가 무기다. 이른바 프로슈머(Prosumer)라고 불리는 대중이 그들의 지적 결과물들을 기하급수적으로 생산해내고 있다. 자연스럽게 페이스북 경제권에서 희소성은 소멸하고 경제문제도 사라진다. 자본주의의 존재 목적, 작동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기업이 100조원을 상회하는 기업평가를 받는 풍경, 얼마나 모순적인가.

문제는 또 있다. 페이스북 사용자들은 그들이 생산한 가치에 대해 보상을 받지 않고 있다. 시장에서 교환될 희소적 상품을 생산하지만 내다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지난해 32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사용자들이 매일 글 한 건을 쓰고 읽는 것뿐인데. 게다가 협력적 소비라는 이름으로 이미 생산된 자원을 ‘소유’하지 않고 공유한다. 희소 자원의 소유욕, 그에 따른 신제품의 구매에서 비롯되는 시장교환 행위마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비단 페이스북에만 그치지 않는다. 페이스북은 거대한 흐름의 부분집합일 뿐이다. 그 부분집합이 올 4~6월이면 삼성전자와 견줄 만한 규모로 평가받게 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우리의 작은 행위는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의 관점에선 존멸을 고민케 하는 암세포가 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도 비슷한 논쟁은 있었다. 티지아나 테라노바는 2000년대 초 인터넷에서의 ‘공짜 노동’이 디지털 경제에서 자본주의에 통합된 부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혼합된 형태를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라는 반박으로 기각되는 분위기다.

어쨌건 공교롭게도 페이스북 IPO에 즈음해 다보스포럼은 ‘20세기 자본주의는 21세기 사회에서 실패하고 있는가’를 주제로 토론했다. 자본주의 4.0이라는 조어도 등장했다. 역사적 자본주의를 수십 년 동안 분석하며 ‘자본주의의 소멸’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매뉴얼 월러스틴 교수의 예측도 오버랩된다.

페이스북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미래 경제체제(Next Economic System)를 만들어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 세계 8억5000만 명이 사용하는 SNS쯤으로 치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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