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와 이상의 발가벗은 인간적 모습을 선보입니다”
극본과 주역 두 마리 토끼 쫓는 열혈 연극인
“고흐와 이상의 예술이 아닌 그들의 먹고사는 일과 사랑 같은 현실을 다루고 싶었어요. 예술가는 꿈을 가졌다는 이유로 일생을 비루한 현실 속에 살다가 죽은 다음에야 그 가치를 인정받아요. 꿈을 가져볼 기회도 박탈당하는 요즘 시대의 청춘들에게 직업에 맞춰 꿈을 선택하고, 알바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잔인한 현실의 모순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라도 주고 싶었던 거죠.”
작품은 ‘광기의 화가 고흐와 요절한 천재 작가 이상이 만난다면?’이란 독특한 발상이 연극을 끌어가는 주된 모티브다. 아이디어는 고원씨의 꿈에서 “우연히, 그러나 운명처럼” 나왔다. 그는 “꿈에서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는 버스에 올라탔는데, 제 앞뒤에 두 예술가가 앉아 있었다”며 “마치 영혼 결혼식처럼 생전에 불우했던 천재 예술가들을 한 공간에서 만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절절해져 펜을 들었다”고 작품의 기획 의도를 밝혔다.
작품은 고흐와 이상이 동시대를 산 친구 사이라고 가정하고, 실제와 허구를 넘나드는 드라마를 재구성한 팩션(fact+fiction) 극이다. 그림이 팔리지 않아 생활고에 시달리는 고흐의 광기 어린 절규와 이상의 죽음을 앞둔 두려움과 외로움이 무대 위에 고스란히 재현되면서, ‘위대한 예술가’라는 칭송 뒤에 가려진 발가벗은 인간적인 모습들이 드러난다.
대학에서 문예창작과를 다니다 자퇴한 고원씨는 이후 독립영화계에서 각본과 조연출을 거쳐 인디밴드 보컬, 연극배우 및 극작가 등 문화 전 방위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고흐와 이상, 두 예술가의 고뇌는 극작가인 고씨 자신의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작품은 더 생생한 리얼리티와 섬세한 구체성을 가진다.
그는 “폐결핵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간 이상이 남긴 글들이 실제로 병약했던 고등학생 시절 내 일기장에 적힌 글들과 너무나도 비슷해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먹고살려면 뭐든지 팔아야지. 밑천 없이 팔 수 있는 게 몸뚱아리뿐.” 극중 고원씨가 열연한 고흐의 연인 창녀 시엥의 대사다. 밑바닥 인생의 절절함을 고씨는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훌륭히 표현해냈다. 시엥은 고흐가 가장으로서 처자식을 돌봐야 하는 책임감과 예술인으로서의 창작열 사이에서 고민하게 하는 극의 가장 중요한 갈등 요소로 작용한다.
“‘사람 할 짓이 아니다’라고 주변 모든 분들이 말리던 창작극을 무대에 올리는 일을 해낸 것만으로도 뿌듯합니다. 그러나 첫 작품의 초연인 탓에 아직은 부족한 것이 많지만, 차차 수정해 나가면서 더 좋은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 목표입니다. 20대 때는 소극적으로 눈치 보느라 못했던 일들을 점점 더 ‘핫’해지는 30대의 지금 하나하나 해나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