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총선에서 모 정당이 결혼이주 여성을 비례대표로 공천한 이후 2010년 지방선거에서도 몇몇 광역자치구에서 이주 여성을 비례대표로 내세웠다. 실제 경기도에서는 몽골출신의 이주 여성이 비례대표로 당선되기도 했다. 올해 4·11 총선에서도 다문화 가족이나 북한이탈 주민 등에 대한 영입 얘기가 오고가는 모양이다. 

2011년 기준 한국에는 혼인 귀화자를 포함한 결혼이주민 21만여 명과 그 자녀 12만6000명이 있다. 총 체류 외국인은 작년에 이미 140만 명을 넘어섰다. 결혼이주민은 전체 외국인을 대변하는 것처럼 인식되기 때문에 이들을 공천하는 것은 140만의 소수자를 정치에 끌어들이는 효과를 낳는다. 이는 당연히 정치권에서 관심을 가질 만하다. 구색도 맞고 그림도 그럴 듯하다. 더군다나 결혼이주민은 여성이 절대다수이기 때문에 여성 배려의 측면이 강하기도 하다. 

한 지역구에서 한 명만 뽑는 국회의원 선거는 아무래도 큰 정당에 유리하고, 또한 사회적으로 상층에 속한 사람이 뽑힐 가능성이 높아 소수자의 목소리는 정치로부터 배제되기 쉽다. 비례대표는 제한적으로 이를 보정한다. 다문화 가족 또한 대표돼야 하는 한국 사회의 소수자이므로 이들이 주요 정당의 비례대표가 되는 것은 그 자체로 비판받을 일은 아니다.

문제는 관점이다. 우리 정부는 2000년대 중반부터 다소 호들갑스럽다 싶을 정도로 다문화정책을 시행해 오고 있다. 그러나 다문화정책은 이름과는 달리 결혼이주민을 한국 사람으로 만들어내고자 하는 동화정책과 다르지 않다. 거주 외국인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이주노동자들은 관리와 통제의 대상일 뿐 다문화정책의 대상에서조차 빠져 있다. 그렇다 보니 정책의 대개는 ‘가난하고 소외된 다문화 가족’을 시혜의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에 맞춰져 있다. 비례대표 공천도 온정적 시혜의 관점과 그리 먼 거리에 있는 것은 아니다. 시혜는 주는 쪽 사정에 따라 언제든지 번복될 수 있다는 한계를 가진다.

이주민을 단순히 도와주어야 할 비루한 대상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당당한 주체로 인정하고, 이들이 당연히 가져야 할 권리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이주민의 정치참여가 도모될 필요가 있다. 다른 다문화 국가의 사례와 같이 이주민을 대표할 수 있는 조직 구성을 지원하고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제기하고 주류와 협상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는 것이 마땅한 정치참여의 방식이다.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다문화주의의 이상을 지향하고자 한다면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처럼 이주민 2세 혹은 3세가 정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들이 권력자원을 나누어 가질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고 이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주 여성 한두 명이 국회에 들어가는 것이 급격한 외국인 증가가 한국 사회에 던지는 커다란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는 없다. 그들의 주체성을 배제하는 한갓 시혜는 이주민이 올곧게 정치에 참여할 시기를 늦출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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