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1%를 위한 사회는 혼란을 야기한다

지난 6일 한국거래소가 통계자료를 발표했는데요, 10대그룹 시가총액이 673조 3158억 원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금액은 주식시장 전체 시가총액(1236조7533억 원)의 54.4%에 이르는 수치인데요, 보는 사람에 따라 판단기준은 다를 수 있겠지만 저는 좀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10대 그룹이 전체 상장종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20개(우선주 포함)로 전체 상장종목의 6.1%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총액으로 따지면 54%를 넘어서고 있으니 국가 경제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셈입니다. 이 자료는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 걸까요. 우리 사회가 그만큼 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이 재벌공화국이라는 말은 더 이상 상징적인 단어가 아닌 ‘현실 적합한 용어’가 되고 있습니다. ‘재벌공화국’, 더 이상 상징적인 단어 아닌 ‘현실 적합한 용어’ 문제는 10대그룹 시가총액 비중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2007년 말에 10대 그룹 시가총액은 40.75%였는데, 5년 만에 13.65%포인트나 증가했습니다. 사상 최대 수준입니다. 시가총액 비중이 이 정도니 매출이나 다른 부분은 어떨까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실적비교가 가능한 10대그룹 계열 82개 상장사의 지난해 1~3분기 누적 매출액은 471조원이었습니다. 전체 상장사 매출액의 52.27%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절반을 넘긴 셈이죠. 10대 그룹의 경제력 집중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지 않냐, 이런 반론도 가능하겠지요. 물론입니다. 하지만 지나친 격차는 문제구요, 이 격차가 해소되지 않으면 사회가 불안해집니다. 지나친 경제력 집중은 사회의 온전한 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사실 10대 그룹이 아니라 삼성·현대차·LG·SK·롯데 등 5대 그룹으로 좁혀서 얘기를 해보면 문제가 더 심각해집니다. 이들 5대 그룹의 매출비중은 전체 상장기업 중 40%를 넘어섭니다. 30대 그룹까지 합치면 정말로 심각해집니다. 95.2%까지 매출액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재벌그룹이 우리 사회의 생산 전부를 지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격차 자체를 문제시할 순 없지만 대기업이 매출과 자산규모를 독식한다는 건, 중소기업이 갈수록 위축된다는 의미입니다. 정부나 정치권 일각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동반성장 등이 거론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재벌 경제력 집중, 과연 경쟁력 향상에서 비롯됐나 문제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경쟁력 향상에서만 비롯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른바 일감 몰아주기와 담합 등이 경제력 집중에 큰 역할을 했다는 지적도 있고, 재벌들이 각종 사업에 진출하면서 ‘문어발’ 확장을 한 결과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이른바 오너 가족을 동원해 계열사를 차려 일감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재벌들이 부를 확대해왔다는 얘기죠. 실제 경제개혁연구소가 29개 재벌기업집단의 지배주주 일가 190여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이 같은 주장이 타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경제개혁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달성한 부의 증식 규모는 9조9588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간단히 말해 대기업으로의 ‘부당한 경제력 집중’이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라는 얘기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이익을 낸 대기업들이 이젠 순대, 떡볶이 사업까지 진출하면서 이익극대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겁니다. 매출 등에서 엄청난 이익을 낸 대기업들이 영세 상인들의 생존까지 위협하는 게 온당하냐는 비판이 나온 것도 이 때문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익이 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서 사업을 하려는 대기업들이, 정작 벌어들이는 돈에 비해 투자 비중을 줄이고 있습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조사 결과, 15대 재벌의 2010년 매출과 당기순이익은 900조1000억 원과 24조3000억 원으로 2007년에 비해 각각 59.1%와 59.5%의 신장률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설비투자액은 37.5% 증가한 55조4000억 원에 그쳤습니다. 매출액이 늘어난 만큼 투자로 연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대기업들이 늘어난 이익만큼 고용을 늘리는 않고 있다는 겁니다. 지난해와 올해 기업들의 투자·고용 확대 비중을 비교해보면, 투자는 134조8000억 원에서 151조4000억 원으로 12.3%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고용은 12만 명에서 올해 12만3000명으로 2.2% 늘어나는 데 그쳤습니다. 그러면서 대기업들은 입으로는 상생하자고 외칩니다. 모순입니다. 다시 대두되는 ‘재벌개혁’ … 공염불이 되지 않으려면 그래도 최근 재벌개혁 여론이 확산되니까 주요기업들이 신경을 좀 쓰는 눈치입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도 몸을 낮추는 자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경련이 지난 8일 이사회를 열고 결의문을 채택했는데요, ‘생계형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등 서민생활 안정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그런데 여론이 썩 좋지가 않습니다. 최근 재벌개혁 여론이 확산되니까 이 화살을 잠깐 피하기 위한 임시방편이 아니냐는 거죠. 뭐 툭 까놓고 얘기해서 지금까지 강경한 자세를 고집했던 전경련이 갑자기 ‘서민생활 안정’ 운운하는 게 영 어색하기는 합니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재벌개혁 여론을 급등하니까 일단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 - 그래서 ‘쇼’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입니다. 사실 재벌의 지나친 경제력 집중에 따른 문제점은 왜곡된 지배구조 개선과 사업분야별 분리와 같은 정책으로 해결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전경련과 대기업들이 ‘어떻게 하겠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을 통해 제도적으로 이를 제어하는 게 온당하는 얘기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출자총액제한제 부활, 중소기업적합업종 제도 같은 경제력 집중 완화 방안이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물론 정치권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재벌개혁’ 여론에 편승해 ‘하는 척’만 하는 시늉을 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이 분위기를 끝까지 이어가도록 하는 건 시민사회의 몫인 것 같습니다. 이 기회를 잘 살려서 재벌체제를 포괄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법적 준거틀을 마련하도록 계속 정치권을 압박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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