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관 TV 단종 대비한 준비도 강조
백남준의 테크니션이던 이 대표를 1월 29일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린 백남준 선생 6주기 추모식 현장에서 만났다. 6년 전 이날, 고인의 작고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미국 마이애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는 그날을 “참 매서우리만큼 추웠던 날”이라고 회상했다.
“추모식을 한 ‘메모리빌리아’는 뉴욕 백 선생님 자택을 그대로 재현한 공간이에요. 브루클린 체이스 빌딩에 설치한 TV 450대를 가지고 만든 대작도 다 그 집에서 만들었지요. 그런 곳에서 추모행사를 하니 더 뜻깊어요. 고생도 많이 했지만 그만큼 추억도 많이 깃든 소중한 자리니까요.”
경기 양평 출신의 이 대표는 고교 졸업장을 따기도 전 상경해 기술학원을 다니다 군 제대 후 세운상가에 전파상을 차리면서 본격적으로 가전제품 기술자의 길로 들어선다. 이름 없는 기술자였던 그가 백남준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당시 TV를 협찬한 삼성전자가 백남준에게 이 대표를 추천했던 것.
그렇게 예술가 백남준과 기술자 이정성의 환상의 복식조가 탄생했다. ‘전자 초고속도로: 미국대륙’ ‘메가트론’(1995) 등 적게는 80대, 많게는 1000여 대의 TV 수상기가 들어간 백남준의 작품 수십여 점이 그의 손을 거쳤다.
그는 “선생님께 재차 설명을 요구하거나 의문부호를 달아본 적이 없다. 속된 말로 간첩의 난수표에나 쓰일 법한 기호가 적힌 메모를 받아도 걱정이 없었다. 밥을 먹다가도,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다가도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와 계획을 늘 공유했기 때문”이라고 작가와의 교감에 대해 설명했다.
백남준은 국제적인 전위예술 운동 플럭서스의 대표 주자답게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정형화된 것을 거부했다. 이 대표는 “‘TV가 있으면 전깃줄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 않으냐, 숨기려 하지 말고 봬줘라’라며 작품을 전시하고 나면 배선을 감추거나 정리하지도 못하게 하셨다”며 “그런 만큼 보시는 분들도 심오하게 작가의 뜻을 해석하려고 하기보다는 편하게 있는 그대로 즐기는 것이 좋다”고 작품 관람의 팁도 전했다.
“백 선생님 작품을 사랑한다고 입으로만 떠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인터뷰 내내 그가 가장 강조한 말이다. 그는 “비싸고 귀하다고 가만히 모셔만 두면 더 쉽게 고장 난다. 전자기기는 그냥 두면 습기가 차고, 그러다 보면 부식이 돼 수명이 짧아질 수밖에 없다. 점검을 할 겸 주기적으로 틀어주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2~3년 내에 작품에 쓰인 브라운관 TV가 단종되고 나면 더 이상 그의 작품을 원형 그대로 볼 수 없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점도 경고했다. 그는 “여분의 브라운관 TV를 비축하거나, 뼈대는 둔 채 LCD 패널로 교체하는 등의 대안을 마련하는 일이야말로, 작품을 아끼는 방법이자 작품에 대한 투자”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