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는 독서 반대론자였다. 독서의 대상물인 글자는 ‘죽은 담론’이어서 진실에 이르는 길에 ‘침묵’으로만 응답한다고 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기록이 기억을 파괴한다고 믿었다. 기록하는 순간 우리는 기억할 필요를 덜 느끼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대화의 양방향성과도 견주며 독서의 일방향성을 비판했다. 스승 없이 지혜를 얻기는 힘들며, 독서는 개인의 폐쇄된 행위에 가깝다고 독서의 가치를 폄하하기까지 했다. 

구텐베르크 인쇄술 혁명 이후 독서의 시대가 도래했을 땐 반대로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인쇄술에 의한 기록은 소크라테스의 예언대로 암기력과 수사학적 웅변술을 소리 없이 쇠퇴시켰다. 하지만 다른 형태의 새로운 기억과 인지적 자원을 해방시켜줌으로써 인류의 발전에 크나큰 기여를 했다. 

요즘 들어선 ‘디지털 치매’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정보 접근이 쉬울수록 굳이 정보를 기억하려 하지 않는 현대인의 습관에서 파생됐다. 기록된 정보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넘쳐나면서 기억은 디지털화(Digitalization), 외재화됐고 기억력은 퇴화하고 있다는 염려다. 기록이 기억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기록이 기억을 파괴한다’는 소크라테스의 우려가 부활하고 있는 듯하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일상화로 정보량은 무한대로 늘어나고 있다. 2011년 기준으로 전 세계 인류가 2011년 한 해에만 생산·복제한 디지털 기록량(1.8ZB)은 인류가 문자로 기록한 모든 기록량(50PB)을 이미 훌쩍 넘어섰다. 구글과 같은 검색엔진으로 거의 모든 지식을 손쉽게 찾아낼 수 있게 됐다. 페이스북의 타임라인(Timeline)은 외부의 기억장치를 넘어 기록에 맥락의 가치를 입힌 ‘자서전의 외재화’ 단계로 진입했다. 소크라테스의 예언대로 인간의 기억은 더 큰 파괴의 시대를 겪게 되는 것일까. 

2명 이상의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지식을 함께 공유하는 방식을 분산기억이라고 한다. 정보의 과잉, 그로 인한 기억의 과잉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여기에 연결기억(Networked Memory)을 접목하자. 기록을 모두 외울 필요 없이 ‘누가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만 외우면 된다. ‘누가’(who)는 SNS가 24시간 언제 어디서나 찾아주고 연결시켜 준다.

기록한 사람을 기억하는 노후(know-who)는 SNS와 함께 기억 능력의 재정의를 추동하고 있다. 동시에 노후(know-who)를 의미하는 연결기억은 ‘기록 과잉’에 대면한 인류의 대처법이기도 하다. SNS의 연결망은 시냅스 확장이며 소크라테스에 대한 테크놀로지의 반박이다. SNS 잔칫날인 2012년, 연결기억은 그 위력을 발휘할 듯하다. 올해 선거를 주목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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