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우리에게 얼마만큼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인가. 사회적 관계망을 촘촘히 엮어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시키고 약화된 이웃 기능을 되살릴 것인가. 논란이 있겠지만 제도권 언론의 지면이나 전파를 빌리지 않고도 각자 발언할 수 있는 점은 놀라운 진보다. 흩어진 지인들을 찾아주는 것 또한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하루에 몇 번씩 고민한다. 트위터에 글을 올릴지 말지, 트위터리안의 글을 언제까지 읽어야 할지를. 또 페이스북을 탈퇴할 것인지 눌러앉을 것인지, 하루에 몇 차례 접속하고 어디까지 반응할 것인지를. 트위터는 그래도 단순하다. 이외수의 글을 지겨워하다가도 예술대학 평가기준에서 취업률이 문제되자 이런 매혹의 글을 남겼으니 버릴수가 없다. “태양으로 담뱃불을 붙이지 못한다고 태양을 무용지물로 볼 것입니까?” 공지영과 진중권의 공방은 얼마나 멋진 게임인가.

이에 비해 페이스북은 그 현란한 기능에도 불구하고 끝없는 확장성 때문에 감당하기에 버겁다.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친구와 다시 이어지는 것은 반갑고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학교를 나와 직장을 다닌다는 사실을 공개하는 순간 촘촘한 포충망을 벗어날 수 없다. 세상의 모든 사람을 연결하려는 욕심, 나아가 지인들끼리 가깝게 지내도록 도우려는 페북의 노력은 눈물겨운가, 지나친가? 

최근에 겪은 일이 생일 해프닝이다. 페북에 가입할 때 개인정보를 노출하지 않으려고 주민번호가 아닌 진짜 생일을 쓴 것이 화근이었다. ‘그날’이 되자 아침부터 이메일과 휴대전화에 생일을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쏟아졌다. 정작 나는 페북을 열지도 않은 시간인데! 처음에는 일일이 댓글을 달아 음력으로 쇤다고 설명하다가 오후가 되면서 포기했다. 그 날짜는 페북이 알려준 것이고, 진짜 내 생일을 모르는 사람에게 축하를 받는 것은 그야말로 소셜한 관계에 불과하며, 이 모든 것은 나와 무관하다고.

저녁쯤 되니 팡파르가 잠잠해졌다. 일과를 끝내고 회사에 남아 책을 읽고 있는데, 후배가  전화를 했다. 학교 앞에서 함께 하숙하며 뒹굴던 시인이었다. “형, 합정동으로 나와! 광헌이 형도 있어. 지금까지 회사에 있는 걸 보니, 뭐, 생일파티도 없나 보네, 히히∼.” 후배는 은밀한 정보를 취득한 듯 의기양양했다. 그에게까지 페북을 탓할 수 없었다. 서둘러 대폿집을 찾아가 스마트폰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술잔을 기울였다.

후배가 말했다. “요게 요물이라. 내가 형 생일을 우째 기억하겠소? 그런데 요놈이 딱 알려주는 기라. 하기야 형 또래들이 페북 하는 사람이 많지 않지? 그러니 순서가 나에게까지 돌아왔겠지. 브라보! 근데 형수는 어디 가셨어?” 우리는 서로의 답변을 들을 겨를도 없이 건배를 외쳐댔다. SNS와 표현의 자유 같은 주제는 어둠과 추위 속에 묻혀버렸다. 우리는 아직도 아날로그의 고요한 밤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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