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르코의 마법물감 / 벨라 발라즈 글 | 사계절 > 칼마르 페르코라는 소년이 있다. 아빠는 일찍 돌아가셨고 엄마는 가난한 세탁부이다. 페르코는 늘 엄마 대신 먼 곳을 걸어다니며 밤늦게까지 세탁물을 배달해야 한다. 그래서 숙제할 시간이 없다. 페르코는 학교에 가면 숙제를 해오지 않은 벌로 ‘게으름뱅이 자리’에 앉아야 한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으면 페르코는 결손가정에 학교생활에서도 적응을 못하는 아이다. 우울하고 어두운 이야기가 전개 될 것이라고 예측하게 된다. 초등학교 3-4학년 시기의 아이들이 읽는 생활동화에는 왕따를 당하거나 친구가 없는, 공부를 힘들어 하거나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들에 관한 내용이 많다. 이런 동화의 주인공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상황을 극복하기 어려워한다. 그러다보니 주변사람들이 주인공을 이해하게 되고 도움을 주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다. 그렇지만 헝가리를 대표하는 작가 벨라 발라즈의 ‘페르코의 마법물감’의 내용은 무척 다르다. 소망이 행동을 만든다. 페르코는 자신이 사흘 내내 게으름뱅이 자리에 앉은 것을 여자아이들이 알 것이라고 생각하니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사실 자신의 형편에 대해 선생님에게 변명하지 않아서 그렇지 페르코는 게으름뱅이는 아니다. 그런데도 부끄러워하는 것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본래의 모습을 이해받고 싶다는 페르코의 소망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소망은 페르코를 움직이게 한다. 그림물감은 없지만 페르코는 자신이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페르코는 같은 반 칼리에게 그림물감을 빌려주면 대신 그림을 그려주겠다고 제안한다. 페르코는 그림을 그리는 행동을 통해 자신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런데 파란색이 사라지고 페르코는 하늘을 그릴 수 없어 그림을 완성하지 못한다. 참하늘빛의 마법 페르코는 이상한 수위 아저씨의 말을 듣고 ‘참하늘빛’ 꽃으로 파란 물감을 만든다. 그리고 참하늘빛 물감으로 그림을 완성한다. 이때부터 신비롭고 환상적인 일들이 일어난다. 그림속의 하늘은 시간이 지나자 해가 지더니 밤이 되고, 별이 떠오른다. 그리고 달까지 떠오른다. 페르코는 그림속 하늘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그림을 보게 된 같은 반 여자아이 주지는 페르코가 그린 그림을 보면서 감탄한다. “정말 근사해, 무지무지 멋져.” 마음에 드는 주지와 마음에 들지 않는 칼리, 이렇게 물감의 비밀을 알게 된 칼리와 주지는 페르코와 비밀친구가 된다. 페르코는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아진다. 평소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하고, 누구의 부러움도 사지 못했던 페르코가 칼리가 부러워하는 참하늘빛 물감을 가졌고, 주지는 자신이 그린 그림을 아주 소중하게 간직하게 된 것이다. 환상과 현실이 겹치고 그림을 그릴 종이가 없는 페르코는 궤짝의 뚜껑 안쪽에 하늘을 그린다. 그리고 궤짝 안에 누워 자신이 그린 하늘을 바라본다. 남쪽 하늘에 비구름이 드리우고 서쪽 하늘에는 오후의 햇살이 반짝여서 일곱 빛깔 아름다운 작은 무지개가 궤짝 뚜껑의 하늘에 걸려있는 것을 넋을 놓고 바라본다. 페르코가 궤짝 안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 일꾼들이 낡은 궤짝을 마차에 싣고 시골집 안마당에 내려놓는다. 페르코는 궤짝에서 나오려다가 뚜껑을 거꾸로 닫고, 바닥에 놓은 페르코의 하늘 그림은 물웅덩이처럼 보인다. 일꾼들은 물웅덩이를 뛰어넘어 그대로 멀어져 간다. 숲 속의 새들도 궤짝 뚜껑의 작은 하늘을 물웅덩이로 착각하고 물을 먹으러 온다. 페르코의 그림이 자연스럽게 진짜처럼 여겨지는 순간들이다. 페르코는 밤늦도록 다림질을 하는 엄마가 있는 집이 그리워진다. 엄마의 볼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다리미에 떨어지면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눈 깜짝 할 사이에 증발해 버리던 장면이 생각난다. 사람들의 환대 다음 날, 잠에서 깨어난 페르코는 궤짝의 뚜껑을 뗏목처럼 타고 강물 위를 유유히 떠내려간다. 궤짝의 작은 하늘은 강물처럼 보여서 마치 페르코가 강물 위를 서서 걷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한다. 사람들이 어린 성자가 나타났다고 강가로 모여든다. 그리고 서로 페르코를 자신들의 교회나 집으로 모셔가려 한다. 많은 사람들이 페르코를 바라보고, 페르코를 보려고 모여든 것이다. 처음에 어리둥절하던 페르코는 왜 이런 소동이 벌어졌는지 깨닫고 웃음을 터뜨린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사람들이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페르코는 먹을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먹을 것과 초콜릿 봉봉을 가득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는 스스로의 힘으로 성장한다. 신비한 참하늘빛 물감은 모두 사라진다. 궤짝의 참하늘빛은 물결에 씻겨나갔다. 다만 페르코의 반바지에 튀긴 작디작은 마지막 조각만이 남아있다. 페르코는 3년 동안 참하늘빛이 남아있는 반바지만 입고 다닌다. 같은 반 아이들 가운데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아이는 페르코밖에 없다. 주지의 친구들이 페르코를 쳐다보며 속닥거리고 킥킥거린다. 주지가 페르코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같이 산책을 하고 싶다면 더 이상 반바지를 입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페르코는 주지를 바라본다. 그리고 반바지에 남아 있는 참하늘빛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푸른빛을 발견한다. 일요일 오후, 페르코는 어린이용 반바지와 영원히 작별하고 처음으로 긴 바지를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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