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서울시장 선거운동 과정의 하이라이트는 ‘안철수 교수의 편지’였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선거운동 막바지에 안철수 교수는 박원순 후보의 사무실을 찾아가 편지 한 통을 건넸다. 내가 이것을 주목한 것은 이 일이 선거 결과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안 교수가 보인 소통 방법의 신선함 때문이었다.

안 교수가 가지고 간 ‘편지’는 단순한 선거 공학적 ‘소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정치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알려주는 시대적 코드였다. 편지에 숨어 있는 암호는 ‘공감의 정치’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안 교수는 우리나라 최첨단 디지털 문화의 표상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가 소통의 수단으로 택한 것은 가장 아날로그적이고 가장 고전적인 매체인 편지였다. 겉으로만 보면 대단한 패러독스다.

그가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이용하지 않고 편지를 선택한 까닭은 무엇일까? 편지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공감의 힘 때문이 아니었을까라고 나는 생각한다. 정감 어린 가을편지라는 매체의 형식 때문에 안 교수의 메시지는 더욱 큰 영향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다.

편지의 내용도 역시 공감의 코드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었다. 안 교수는 결코 박원순 후보를 ‘강추’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흑인 인권운동의 상징인 로자 파크스 이야기를 꺼내며 흑인들에게 법적 참정권이 주어졌지만 그들이 백인들과 버스를 함께 타게 된 것은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뒤였고 그것도 흑인들의 ‘행동’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참여’의 중요성을 환기하는 얘기였다. 그리고 그는 원칙과 상식, 미래라는 가치가 선택의 기준이 돼야 한다고 차분하게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한 번도 박 후보가 아니면 서울의 미래가 없다라든지 어떤 후보가 서울시장이 되면 서울이 망할 것이라든지 그런 강변을 한 적이 없다. 그는 ‘함께 생각할 거리’를 슬며시 던져주고 자신의 대학 연구실로 표표히 돌아갔을 뿐이다. 안 교수는 선동이 아니라 잔잔하게, 공감을 구하는 방식으로 시민들에게 말했다.

안 교수에게 이런 일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디지털 시대에는 오히려 감성에너지, 감성경영, 감성리더십이 중요하다는 점을 그는 일찍이 강조했다. 연구소를 경영하던 시절, 그는 생일을 맞이한 직원들의 책상에 직접 풍선을 매달았다고 한다. 안 교수의 정치적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공감’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코드를 읽고 그것을 실행하는 안 교수의 능력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공감의 능력은 21세기 정치의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그것은 나눔, 배려, 상생, 돌봄, 살림, 조화, 균형, 협력, 연대, 소통, 화합, 이해 등과 함께 여성주의 가치의 핵심이기도 하다. 안철수의 가을편지는, 목청을 돋우고, 부수고, 이분법으로 몰아붙이는 낡은 정치의 시대가  사라지고 있으며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하나의 징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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