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사회에 실제라고 도저히 믿고 싶지 않은 사건사고가 늘어감에 따라 영화 또한 나날이 끔찍해져가고 있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다룬 ‘살인의 추억’(감독 봉준호·2003), 이형호군 유괴사건을 다룬 ‘그놈 목소리’(감독 박진표·2007) 그리고 유영철이 저지른 서부 지역 연쇄 살인사건을 다룬 ‘추격자’(감독 나홍진·2008)까지 실화를 모티브로 한 범죄 스릴러들은 사회적인 이슈와 흥행을 겸비하며 매번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최근 장안의 화제가 된 공지영 원작의 ‘도가니’(감독 황동혁·2011)는 광주 인화학교 청각장애아들에게 가해진 성폭행 사건의 전모와 진실을 은폐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재현함으로써 삽시간에 우리 사회를 분노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이것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 정의와 상식에 입각해 눈과 귀를 열고 목소리를 내는 관객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시켜 그것에 눈감고 귀 닫고 있는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들 영화 속에서 피해자로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어린이,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선은 생각해볼 여지를 남긴다. 

여대생 실종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의 목격자가 시각장애인 여성이라면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될까? 시각장애인이 사건의 ‘목격자’가 된 스릴러영화인 ‘블라인드’(감독 안상훈·2011)는 우선 여주인공 수아(守我)의 ‘보이지 않는’ 눈이 사건을 해결하는 결정적인 단서라는 점에서 장애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여기서 주인공의 장애는 스릴러라는 장르의 특성을 활용하는 수단을 넘어서 보이지만 보지 않는 사회와 대비되어 신체의 장애가 있음에도 스스로를 지켜가며 ‘보이지 않는’ 눈으로 사물의 핵심과 사건의 본질을 볼 수 있는 상황의 아이러니를 발생시킨다.

더구나 초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장애를 극복하는 특별한 인물이 아니라 촉망받는 경찰학교 학생이었지만 교통사고로 시력을 잃고 그저 장애인 중 한 사람으로 살아가던 수아가 실제 사건을 겪으면서 자신이 원래 있었고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시각장애인 여성, 사회적인 약자, 부족한 사람들이 서로 힘을 합쳐 상황을 극복하는 이야기는 살 만한 세상에 대해 꿈꿀 수 있게 하면서 세상살이에 분명 위로와 긍정적 자극이 되리라 믿는다. 

이렇게 애당초 ‘장애’에 대한 관점을 달리하면서 만들었기 때문인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은 공간에서 함께 영화를 볼 권리를 추구하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영화로서 새로운 버전으로 만들어진 영화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해설 가이드와 청각장애인을 위한 화면 해설 자막을 발견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인다.

경계 없는 영화, 장애로부터 자유로운 영화 만들기는 법적·제도적·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지만 우리 사회의 다양성과 관객으로서의 권리의식을 새삼 상기시킨다. 아직은 시작이지만 배리어 프리 영화들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커져가게 되면 ‘보이지 않는’ 눈으로 사건의 목격자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세상의 편견을 넘어 모두 함께 영화 보기에 대한 꿈을 꿀 수도 있을 것이다. 그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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