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특례법’) 제6조는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 여자를 간음하거나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사람은 ‘형법’ 제297조(강간) 또는 제298조(강제추행)에서 정한 형으로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장애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기 위한 조항으로 1994년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 당시에는 ‘신체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라고 규정돼 있었다. 지난 1997년 이같이 개정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장애인복지법에 명시된 신체장애 내지 정신장애 등을 가진 장애인을 망라해 장애인의 범위를 확대하는 데 개정 취지가 있다.

형법상 성폭력 관련 범죄는 친고죄이지만 ‘성폭력특례법’ 제6의 장애인 성폭력은 그 범죄행위의 중대성과 피해자가 고소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점 등을 이유로 비친고죄로 규정돼 있다.

그러나 법원이 ‘항거불능’ 요건을 ‘심리적·물리적으로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로 엄격하게 해석하기 때문에 피해자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제대로 보호되고 있지 않다.

법원은 성경험이나 성지식이 높을수록, 지적능력과 학력이 높을수록, 피해자가 저항했을수록 항거불능 상태에 있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정신지체 2급인 19세의 미성년자를 성폭행한 사건에서 법원은 정신지체 2급은 훈련가능 등급이며, 피해자는 일반 학교(정보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버스를 탈 수 있고, 성관계를 갖기 싫어서 거부의사를 표시했고,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성폭행을 당한 적이 여러 차례 있다는 점 등을 들어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판결했다(대구지방법원 안동지원 2005.7.22 선고 2005고합16).

정신지체장애 1급인 17세의 여성 장애인을 성폭행한 사건에서는 ‘피해자는 저능아이기는 하나 7∼8세 정도의 지능은 있었고, 지능이 정상인에 미달하기는 하나 사고능력이나 사리분별력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고, 성적인 자기결정을 할 능력이 있기는 하였으나, 다만 그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었던 데 불과’하기 때문에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대법원 2004. 5. 27. 선고 2004도1449 판결).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도가니’의 배경이 된 인화학교 사건에서도 피해자들이 수화로 싫다는 의사표시를 했고 몸을 비틀어서 저항한다는 의사표시를 했다는 이유로 항거불능이 인정되지 않았다.  

이처럼 법원은 항거불능의 요건을 매우 엄격하게 판단하고 있다. 법원에서 항거불능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성경험과 성지식, 지적능력 등이 떨어지는 성적 자기결정권이 없는 존재라는 것을 주장해야만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를 인정받을 수 있는 모순적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장애인의 경우 성폭력에 대한 인지능력과 대처능력이 미흡해 성폭력에 쉽게 노출된다. 장애인 성폭력 사건은 다수에 의해 장기간 지속적·반복적으로 일어난다는 점에서 불법성이 큰 범죄다. 성폭력특례법 제6조의 항거불능의 상태를 심리적·물리적으로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로 판단하는 것은 이 조항의 입법 취지와 장애인의 특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 조항의 입법 취지인 장애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항거불능’ 요건을 삭제하거나 ‘비장애인과 같은 합리적 또는 진지한 저항이 곤란하거나 불가능한 상태에 있음을 이용’해 간음하거나 사람에 대해 추행을 한 사람은 형법상의 강간 또는 강제추행죄로 처벌하는 방향으로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며 국감장에서 눈물을 흘린 최사문 인화학교 교사를 보면서 눈물을 훔친 건 나뿐이 아닐 것이다. “지금의 사회적인 관심이 일시적인 분노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최 교사의 눈물과 호소가 큰 울림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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