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사이에 성관계를 요구할 권리는 있어도, 폭행과 협박 등 강제로 성관계 할 권리 없다.”

서울고등법원 형사9부(재판장 최상열 부장판사, 이하 서울고법)가 지난 9월 22일 ‘부부 간 강간죄’ 항소심을 인정하는 첫 판결을 내렸다.

서울고법은 “강간죄의 객체를 ‘부녀’로 규정하고 있을 뿐 다른 제한을 두고 있지 않는 이상, 법률상 아내가 모든 경우에 당연히 강간죄의 객체에서 제외된다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 4월 정모(40)씨는 음주 상태로 귀가해 흉기로 전치 2주의 상처를 아내에게 입히고, 강제로 성관계를 한 혐의로 기소됐다. 원심에서는 징역 5년을 선고받았지만 이번 항소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의 형을 받게 됐다.

이번 판결에 이어 대법원도 정상적인 혼인상태에서 부부강간의 유죄를 인정할지 여부에 귀추가 주목된다.

대법원은 사실상 혼인관계가 파탄 난 경우 이외에는 부부강간을 오랜 기간 인정하지 않았다.

2009년 외국인 아내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 부산지법은 아내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인정, 유죄를 선고한 이후 부부강간의 유죄 판결 가능성은 점차 커지고 있다.

2000년부터 ‘아내강간’ 문제를 공론화해 온 정춘숙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늦었지만 이번 판결을 환영하며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아내 강간에 대해 법률에 명시하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이를 법에 명시하는 후속 작업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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