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라는 직업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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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결혼과 이혼을 주제로 한 TV프로그램이나 드라마 속 아내들과는 너무 다르다. TV속 아내들은 남편의 불륜 앞에서 모두 똑같이 행동한다. 상대방 여자를 찾아가서 머리를 뜯고 얼굴에 물을 끼얹는다. 남편에게는 복수를 다짐하며 돌아선다. 이런 모습들을 비판 없이 받아들인 이라면 극단 여인극장이 올린 ‘아내라는 직업의 여인’은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다. 외과의사인 남편 쟌과 절친한 친구 마리의 불륜을 알게 된 주인공 콘스탄스의 대처는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마리의 남편 몰티모어가 자신의 침대에서 쟌의 이름이 새겨진 담뱃갑을 발견하고 콘스탄스의 집으로 쳐들어온다. 이때 콘스탄스는 놀라기보다 그 담뱃갑이 자기 것이다 라며 사건을 무마시킨다. 그 후 그녀는 일을 해서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기 시작한다. 1년 후, 콘스탄스는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홀로 이탈리아 여행을 떠난다. 콘스탄스의 행동은 다층적인 의미를 전달한다. 첫째로 여성의 경제적 독립이다. 그녀는 “의사의 부인이라는 사회적 지위를 얻고 원하는 음식과 옷을 마음껏 먹고 입을 수 있는 대신 자신의 정절을 남편에게 주었다,”라고 말한다. 또 “불륜에 대해 자신은 화낼 권리가 없다,”라고 한다. “자신을 더 이상 원하지 않는 남편은 사회적인 체면을 위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을 다해주었다.”라며 “결국 의식주를 받고 자신을 판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는 잃었던 권리를 찾고 동등한 부부관계가 되기 위해 밥값과 집세를 남편에게 지불한다. 물론 15년차 주부가 갑자기 괜찮은 일자리를 갖는다는 것이 현실감이 떨어지고 가족을 위한 그녀의 희생이 계산되지 않았다는 점이 걸리기는 하지만 경제적 독립이 동등한 관계의 시발점이라는 메시지는 호소력있다. 콘스탄스 행동이 말하는 두 번째 의미는 결혼은 현실이라는 것이다. 콘스탄스는 함께 춤추던 남편이 다른 여자를 보았을 때를 기억한다. “그 때 나는 안심했고 더 이상 남편을 이전처럼 열렬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고백한다. 거기다 “마리와 함께일 때의 당신은 활기차고 다루기 쉬운 사람이었다.”라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말까지 한다. 많은 TV 속 아내들이 곪고 있는 속을 외면하고 불륜이라는 현상에만 집착하는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콘스탄스는 문제에 대한 정면승부로 현실을 뚫고 나간다. 이런 면에서 콘스탄스의 친구이자 쟌의 불륜상대인 마리가 콘스탄스를 보고 “감정없는 수도승 같다.”라는 말이 이해되기도 한다. 그녀는 이성에게 어필하는 여성이라기보다 깊이 생각하기를 즐기는 여성인 것이다. 여기서 연극이 주는 세 번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콘스탄스는 마리와 같이 정열적이고 이성에게 쉽게 빠지는 성격이 아니다. 오히려 정열은 식었지만 여전히 남편을 아끼는 변함없는 모습을 보인다. 그녀는 이런 자신의 모습을 소중히 생각한다. 남을 부러워하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이다. 이런 그녀이기에 결혼 생활을 직시할 수 있었을 줄도 모른다. 반면 그녀는 정열을 식었지만 남편을 여전히 아낀다. 변함없는 그녀의 성격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이런 모습을 소중히 생각한다고 말한다. 이런 그녀이기에 성장을 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연극은 씁쓸할 정도로 결혼 생활의 현실을 보여준다. 콘스탄스는 그런 현실에 순종하거나 분노만 하기보다 유연하고 현명하게 대처한다. 경제적 독립으로 평등한 관계를 만들고 현실과 자신에 대한 성찰로 정신적 독립과 남편을 아직도 아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연출 문고헌씨는 “결혼은 연예가 아니다 라고 생각한다. 서로에게 맞추어야 가능한 것이다.”라며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이 있다. 결혼이라는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감정적인 대응보다 지혜와 현명함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여성의 경제적 독립도 필요한 것이다. 중년 여성들뿐 아니라 결혼을 생각하는 젊은 연인들도 많이 보러왔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진지한 주제를 경쾌한 템포의 코미디 속에 녹아낸 것도 인상 깊다. 오랜만에 돌아온 송채환씨와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를 보는 것도 즐거움이다. 연극은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9월 18일까지 공연한다. 공연문의 02-3672-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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