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다 같은 여성이라는 걸 알았어요”

어제 저녁에 혜란씨와 만나자고 했다. 일을 보고 들어와 냉장고에서 먹을 것을 꺼내는 중이라고 사양하는 걸 한사코 나오라고 했다.

그는 우리 집 근처에 산다. 지하철로는 한 정거장 거리니까 얼마든지 걸어 다닐 수 있는 곳이다. 그는 혼자 살고 나도 혼자 저녁을 먹어야 될 처지여서 함께 식사하고 싶었다. 지하철 4번 출구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부지런히 걸었다. 발길은 경보 수준으로 부지런한데, 마음은 그보다 더 빠르게 움직였다. 혜란씨는 탈북자, 북한이탈 주민, 새터민, 이런 이름으로 불리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런데 내 마음은 과거의 어디에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새로운 이름 이전에 붙여졌던 익숙한 의미들, 북한 공산당, 빨갱이, 연좌제, 간첩 그리고 반공법 등. 내 성장기 내내 북한과 연루된 사람들의 범죄가 뉴스로 보도되었고 그런 뉴스들은 공포감을 한껏 키워놓았다. 성장과 함께 생긴 내 불안신경증의 상당 부분은 그런 사회적 간접체험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혜란씨가 우리 동네 근처에 산다는 걸 알게 된 건 합창을 함께 하면서다. 우리는 여성인권을 지원하는 사람들, 줄여서 ‘여인지사’라 불리는 단체가 주선한 남북여성합창단에서 함께 노래를 불렀다. 몇 달 동안 격주로 만나 소프라노, 메조, 알토 파트로 나눠 ‘하모니’를 이룬 것이다.

내가 남달리 호기심이 강한 건 직업 탓이기도 하고 그런 탓에 소설가라는 직업을 가졌을지 모른다. 하여튼 여인지사의 일은 흥미로웠다. 탈북 여성들을 만난다는 건 흥분되는 일이었다. 음표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할머니에 음치라는 것도 잊었다.

처음엔 서로 어색했다. 북한 여성들은 그들끼리 만나고 이야기해서 좀체 그들을 사귈 수 없었다. 내가 가까이 가려 하면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이런 어색함, 경계는 우리의 만나는 횟수가 늘고 또 함께 밥을 먹고 아리랑을 불러 하모니를 이룰 때 물이 섞이듯 하나가 되기 시작했다. 

합창은 호흡을 맞추는 일이다. 반주자의 피아노에 맞춰, 지휘자의 손끝과 몸짓과 표정에 맞춰, 그리고 내 목소리를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맞춰 하나의 울림을 내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호흡을 맞추는 일은 거의 명상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아 기를 때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젖을 빨며 이맛전에 땀을 흘리는 아기를 내려다볼 때 어머니와 아이가 맞추는 호흡의 일체감은 그 절정이다. 이런 절정의 경험을 통해 사람은 성숙해질 것이다. 호흡을 맞추는 일은 햇볕을 쬐는 일과 같으니까. 사람들이 연애를 하려고 애쓰는 것도 이를테면 생명이 햇볕을 쬐려는 본능이지 않을까.

마침내 우리는 같은 옷을 맞춰 입고 어느 방송국의 합창대회에도 나가고 어떤 종교단체의 행사에 찬조출연도 했다. 합창단의 북한 여성은 “문화가 다르다는 게 아무것도 아니네요, 우린 다 같은 여성이라는 걸 알았다”는 의미의 말을 했다.

노래를 부르며, 미숙한 노래 실력에 깔깔대고 그 수준을 연습으로 높여나가며 우리는 ‘남북의 문화 차이’를 극복하고 있었다.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일부러 내 집단 무의식의 하나인 빨갱이 따위의 의미에 시달릴 필요도, 그것을 극복하려고 다른 의식을 깨울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정(情)드는 게 중요하고 우리에겐 그것이 필요한 시간이라는 걸 알았다. 북한체제에 존재가 골병든 그들을 위무하는 일, 그들을 우리와 하나로 받아들이고 정서적으로 일체감을 가지는 일, 우리 앞에 놓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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