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빙자간음 위헌 판결

형벌조항에 대해 위헌결정이 내려지면 그동안 해당 법령에 의해 유죄 판결을 받았던 피고인들은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다. 2009년 11월 26일 헌법재판소는 혼인빙자간음죄(형법 제304조)에 대해 위헌 판결을 선고했다. 대한민국 형법 성립 이후 형법 조항에 대한 첫 위헌 판결이었다. 이후 지난 56년 동안 혼인빙자간음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남성들이 속속 재심을 청구했는데 재심 청구 비율은 현장에서 느끼기엔 그다지 높지 않은 것 같다. 아마도 혼인빙자간음이라는 죄명으로 다시 법정에 서는 것이 민망하다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필자는 우연히 몇 차례 재심 청구 사건을 방청하게 됐는데 보통 여성을 속여 돈을 뜯어내고 성관계까지 한 남성들이-혼인빙자간음죄는 주로 사기죄와 같이 기소되는 경우가 많았다-헌법재판소 결정을 근거로 당당한 태도로 무죄를 주장하는 모습은 솔직히 얄밉기 그지없었다.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 법률 조항을 위헌으로 결정했다.

“우리 형법이 혼전 성관계를 처벌 대상으로 하지 않고 있으므로 혼전 성관계의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통상적 유도행위 또한 처벌해야 할 이유가 없다. 여성이 혼전 성관계를 요구하는 상대방 남자와 성관계를 가질 것인가의 여부를 스스로 결정한 후 자신의 결정이 착오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상대방 남성의 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여성 스스로가 자신의 성적자기결정권을 부인하는 행위다. 보호 대상을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로 한정해 여성에 대한 남성 우월적 정조관념에 기초한 가부장적·도덕주의적 성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셈이 된다. 결국 이 사건 법률조항은 남녀평등의 사회를 지향하고 실현해야 할 국가의 헌법적 의무(헌법 제36조 제1항)에 반하는 것이자, 여성을 유아시해 여성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사실상 국가 스스로가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부인하는 것이 된다.”

논리적으로 볼 때 하등의 하자가 없는 판단이고 이성적으로 이 판단이 옳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보호 대상을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로 한정했기에 남성 측에서 피해자에 대해 음행의 상습이 있다는 식으로 몰아붙이는 어이없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거짓말을 해서 성관계라는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파렴치한 이들에게 피해를 입고 법률상담을 하러 오는 여성들을 대할 때면 혼인빙자간음죄에 해당하는 남자들을 더 이상 형벌의 이름으로 단죄할 수 없다는 것이 속상할 때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결국 이 문제는 적극적인 손해배상의 청구와 같은 민사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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