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한강의 기적’은 성평등 사회에서 찾아야

지난달 22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발생한 살인 테러 행위가 전 세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번 사건과 관련된 기사를 읽으면서 필자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테러범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이 이러한 잔인한 테러 행위를 자행한 목적을 기술하면서 한국이라는 나라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의 선망 대상이었던 북유럽 국가, 그 중에서도 노벨상의 나라인 노르웨이라는 국가에서 어느 한 테러범이 지독히도 본받고 싶어하는 나라로 우리나라를 언명했던 것이다. 그는 한국과 더불어 일본도 함께 추켜세우고 있다. 그가 범행 전 친구에게 보낸 1518쪽에 이르는 문서에는 “한국과 일본은 1950년대에 가졌던 고전적이고 보수적인 원칙들을 잘 대표하고 있다. 과학적, 경제적으로도 발전했고 (중략) 강간과 살인의 공포 없이도 살 수 있는 가장 평화로운 사회”라고 표현돼 있다. ‘과학적 · 경제적으로 발전했고, 강간과 살인의 공포 없이도 살 수 있는 가장 평화로운 사회’라는 후반부의 말만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북유럽 국가에선 거의 자취를 감춰버린 1950년대의 고전적이고 보수적인 원칙이 아직도 잘 통용되고 있는 나라라는 말은 다름 아닌 가부장적 사고방식과 관행을 의미한다. 국가의 임금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고 복종으로 섬겨야 하듯 집안의 가장에게도 절대적인 순종과 효로 섬겨온 조선시대는 가부장적 사고방식이 자라기에 더할 나위 없는 좋은 토양이었을 것이다. 일본 식민통치 때 이루어진 일방적인 강요와 복종의 시대, 그리고 잘 살아 보자는 민중의 바람을 떠안으면서 전체주의적 방식으로 산업 발전을 견인해 왔던 유신 시대도 어찌 보면 가부장적 사고방식과 관행이 서식하는데 좋은 풍토였던 것 같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단군의 자손이라는 단일민족에 대한 정체성과 자부심 또한 강한 그야말로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한 가부장적 사회 풍토였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단일민족 담론도 여성 결혼이민자와 외국인 증가에 의해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 한국에 다문화 가정이 증가하고 교과서에서 단일민족에 대한 기술이 사라지자 우리나라에도 이주여성들에 의한 진정한 다문화가 정착하고 가부장제 사회가 변화되는 혁명적 사건이 될 것 같은 기대감도 한 때는 있었다. 하지만 이주여성들의 다문화를 수용하기보다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한 한국 사회로의 동화정책은 오히려 가부장제의 관행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인 여성 결혼 이민자들의 경우 외모적으로만 보면 한국인과의 구별이 어려운 중국 조선족, 필리핀, 베트남, 몽골 등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이주 여성을 향한 한국 사회로의 동화 정책이 얼마나 치밀하고 치졸한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북유럽 노르웨이라는 나라의 한 테러리스트에 의해 현재의 우리나라가 1950년대의 북유럽의 의식수준(가부장적 사고와 행동방식)으로 비쳐졌다는 사실에는 부끄럽지만 겸허하게, 그리고 진정한 용기를 가지고 마주쳐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지금은 한국의 진정한 기적은 그동안 우리가 무엇을 얼마만큼 성취했는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하면 한국의 진정한 기적이 일어날지, 아닐지는 대다수 남성들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과거의 가부장적인 사회로 회귀할 것인지, 아니면 성평등한 미래 사회를 지향하는 비전을 선택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 우리나라에 진정한 기적이 일어나려면 진정성 있는 남녀 파트너십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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