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228개 시군구 중 55곳 분만실 없어
수지타산 안 맞아 산부인과 기피 현상
저출산 시대에 아기 낳을 곳이 턱없이 부족하다. 여성들은 “원정 보육도 모자라 이젠 원정출산까지 해야 한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특히 농어촌 지역 분만실 폐쇄가 도시지역으로 확산돼 문제로 지적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산부인과 병·의원 2093개 중 지난 6월 말 현재 분만실을 운영하는 곳은 947개에 불과하다. 전국 228개 시군구 중 분만실이 없는 지자체는 55곳이다. 5곳 중 한 곳 이상의 지역 산모들이 다른 지자체로 원정 출산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경기 과천시와 연천군을 비롯해 경북 11곳, 경남 9곳, 전남 8곳, 전북 7곳, 강원 6곳, 충북 6곳 등에는 분만실이 아예 없다.
전남 영광군에 사는 이정진(31)씨는 “농촌에 분만 병원이 줄어든 후 임신부들이 겪는 불편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씨는 “전치태반을 가진 고위험 임신부였는데 보름 전 둘째딸을 출산했다. 버스로 한 시간 넘게 걸리는 목포와 광주광역시로 진료 받으러 다녔다”며 “새벽에 출혈이 있어 택시를 타거나 15만원 내야 하는 앰뷸런스를 불러 급하게 병원에 간 적도 있다. ‘정말 돈 없으면 농촌에선 편히 아이도 낳을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신현암 춘천여성민우회 대표는 “특히 산모들은 산부인과에서 출산하고 산후조리원에서 몸조리를 해야 하는데 산부인과가 한두 곳 있는 농어촌 지역이라도 산후조리원이 없어 춘천, 원주, 강릉 등 도시로 원정 출산을 나와야 한다”며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출산장려정책이 제대로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정부는 자연분만 보험수가를 지난해 25%, 올해 7월 1일부터 50% 가산했으나 분만실 폐쇄를 막기는 역부족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출산율 감소로 분만 건수가 줄어든 데다 의사 공급도 부족하다”며 “산부인과 의사들이 의료사고 부담을 느끼는 것도 한 요인이다. 일본은 의사 1000명당 산부인과 재판 비율이 9.9명으로 산부인과 의료사고 비율이 가장 높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의료분쟁을 경험한 산부인과가 의원 중 22.6%에 이른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분만 취약지 지원사업과 ‘찾아가는 산부인과’ 서비스를 더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분만 환자가 적은 지방 산부인과의 수가를 더 올려주는 ‘차등수가제’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동석 부회장은 “우리나라 분만 비용은 미국, 일본 등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비교했을 때 크게 낮다”며 “의료 수가가 낮은 데다 일부 진료는 수가에 포함되지 않아 문제”라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300병상 이하에 종합병원 명칭을 붙이면서도 산부인과는 없는 곳이 수두룩하다. 간판은 여성의원인데 내과나 피부미용을 하는 병원들이 많다”며 “분만사고만 있지, 경제적 보상은 주어지지 않다 보니 산과를 없애는 추세다. 의료수가 정책을 획기적으로 바꾸고, 의료사고 위험을 국가가 감당해줘야 한다”고 말했다.